▲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영화 <소셜포비아> 주역들과 함께. 배우 류준열, 홍하늘 PD, 홍석재 감독, 배우 김용준(좌측부터).
홍석재 제공
시간이 흘러 첫 장편영화로 부산을 가게 된 날, 모든 것들이 조금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그 감독이 왜 그런 표정으로 그렇게 떨린 목소리로 자신의 기쁨을 말했는지 잘 알게 되었다. 나도 그런 표정, 그런 목소리로 열흘 내내 신나있었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20대 초중반을 돌이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들은 온통 부산의 남포동 뒷골목과 해운대 앞 백사장에 몰려있다. 새벽까지 마신 술에 절어서 아침 영화를 기어코 보겠다고 극장에에 들어갔다가 숙면을 취하고, 뜨끈한 돼지국밥에 해장한 뒤 백사장을 걸으며 꿈결에 본 것 같은 영화의 조각들을 다시 맞췄다. 영화와 술,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이뤄서 우리를 아주 잠시지만 영화의 천국으로 끌어올린다. 신기한 건 그렇게 부산에서 본 영화들이 가장 강렬히 뇌리에 남아있다는 거다.
그건 분명 영화제가 가진 비 일상성 때문이다. 주말 극장가에 나와서 '땡기는'(보는) 영화들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끝나버린다. 꽉 찬 승강기 속에서 우리는 영화를 떠나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제가 좋은 건 극장을 나와도 그곳이 여전히 영화라는 사실이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비유가 아니기도 하다. 열흘의 꿈속에서 극장 안과 밖은 모두 영화로 가득 차 있고 오직 영화만 존재한다.
꿈속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해선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 우리가 겁내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과 억지로 얽히기도 한다. 꿈은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준다. 그건 꿈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검열당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 영화도,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내주고 멋진 이유는 이곳이 꿈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되지 않은, 통제되지 않은, 새롭고 낯설고 서툴기까지 하고, 어쩌면 우리를 불쾌하고 무섭게 만들 수도 있는 영화들이, 영화제라는 장막 안에서 온전한 형태로 상영되기 때문이다. 만약 내 뜻대로 꿀 수 있는 꿈이 있다면 그것만큼 시시한 게 어디 있을까? 만약 누군가의 뜻대로 내 꿈이 꾸어진다면 그것만큼 무시무시한 게 어디 있을까?
영화제는 부산을 만나 완벽해졌다
▲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영화의 바다로...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두고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인근 수영2교에 영화제를 알리는 'BIFF'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유성호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한 상징적 공간이다. 모두가, 정말 영화와 관계된 우리들 모두가 한곳에 모이는 공간은 부산국제영화제뿐이다. 우리라는 모호한 지칭이 실체를 가지려면 확인을 해야 한다. 다들 어떤 표정, 어떤 얼굴로 설레고 또 실망하며 극장을 들어서고 나오는지를 본다.
영화제에 온다는 건 영화를 본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영화를 보러온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본다는 뜻도 된다. 영화제란 그런 의미에서 광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은 축제다. 하늘과 갈매기와 바다 그리고 모래사장이 영화와 어울린다는 걸 부산국제영화제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부산은 그 모든 걸 줄 수 있는 도시이고, 영화제는 부산을 만나 완벽해졌다. 부산국제영화제에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부산국제영화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저 축제 기운을 만끽하고 추억 하나 얻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영화제는 새로운 영화, 아직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 영화를 연결시켜준다. 우연히 만난 좋은 영화가 기회가 된다. 새롭게 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모든 관계와 시간들이 쌓여있는 총합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이것은 실체적인 영토이다. 우리가 속해있고 우리가 지켜야하는 우리의 공간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외부의 논리로, 정치권의 개입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검열당한다면, 그 순간 이곳은 더 이상 광장도 축제도 아니게 된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힘을 준건지 모르겠다. 옆에 늘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멀어지고 떠나는 일을 겪고 보면, 시간과 관계가 쌓아올린 것들이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 알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가 21년이란 시간을 통해 쌓아오고 친해져온 그 부산국제영화제는 사라질 수도 있다. 부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지지하고 또 응원한다.
무엇보다도 '부산국제영화제'라는 꿈 안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앞으로도 자유롭기 바란다.
홍석재 감독은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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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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