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열네 번째로 <거인>의 김태용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거인>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현장.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거인>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현장.ⓒ 김태용 제공


문득, 작년 1월 로테르담영화제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거인>이 부산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후 첫 해외 영화제라 마음이 여러모로 설레고 떨렸다.

로테르담에서 첫 상영을 위해 극장 로비를 찾았는데 영화제 프로그래머 및 관계자들이 꽤나 걱정 어린 눈빛으로 대면하였다. "BIFF는 좀 어때요? 괜찮아요?" 첫 데뷔작으로 첫 해외 영화제에 초청된 신인 감독에게 처음 건넨 인사가 격한 축하와 격려가 아닌 부산 영화제에 대한 걱정이라니. 그때 부산 영화제 사태가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실감했다.

솔직히 걱정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후로 영화제 내내 감독들이나 현지 영화인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가득하였다. 함께 자리해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도 속으로는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인사와 관계자들, 관객들까지 지켜보고 있는데 그 사태가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왔고, 제20회 영화제가 열렸다. 나는 아시아 감독들의 차기작을 지원하는 APM(아시아 프로젝트 마켓)에 새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어김없이 부산을 방문했고, 수상했다. 덕분에 차기작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거인>이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할 때 직접 시상해 주셨던 강수연 선배님은 공동집행위원장의 자격으로 APM 시상식장을 찾아주셨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날 꼭 안아주시며 응원해주셨다. "부산을 통해 신인 감독이 하나 탄생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동적이셨다"고.

<거인>으로 당시 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수상자가 된 최우식은 부산영화제 수상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여 이듬해 신인상을 휩쓸었고, 한국영화의 중요한 허리로 성장하였다. 배우 우식과 20회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만나 해운대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영화제에 대한 진심어린 고마움으로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이빙벨>을 시초로 피어올랐던 파국의 불씨가 한순간의 성장통에 불과했다고 믿었다.

걱정을 안고 부산을 방문했던 여러 나라의 영화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강한 지지와 연대의 힘으로 어느 해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영화제를 치러냈으니까.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서병수 시장을 비롯해 이 사태에 관계되어 있는 시청 관계자들이 이런 얘기를 듣고 있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사태 보고는 되고 있을까? 전 세계에서 전해지는 시정에 대한 비판과 영화제에 대한 많은 응원들. 감독, 제작자들을 비롯해 충무로 영화인들이 호소하는 부산 영화제의 위치와 중요성. 정말 듣고는 있을까?

어차피 시민의 투표로 유지되는 권력인지라 단순히 "영화 하는 사람들은 원래 저래 호들갑인가"라고 집무실 한 구석에 영화제 사태를 박아두고 관심조차 끊은 건 아닌지, 사태 이후 일련의 소통 과정에선 도통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제가 열리는 시기에 거대한 한류 행사(원아시아 페스티벌)를 같은 장소에서 유치하려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산영화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것이다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앞에서 배우 최우식(좌)과 함께.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앞에서 배우 최우식(좌)과 함께.ⓒ 김태용 제공


부산영화제는 단순히 영화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보냈다. 우연히 호기심에 찾았던 2003년 부산영화제에서 본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통해 막연하게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의 꿈을 응원해주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지원과 격려로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를 따로 공부할 수 있었고, 영화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2004년 부산영화제 때가 생각난다. 교내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선생님들끼리 (당시엔) 'PIFF 원정대'를 꾸려 나는 볼만한 영화를 선생님들께 추천드렸고, 선생님들은 각자 스케줄을 맞춰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녔다. 수업을 마치고 상영시간까지 빠듯했지만 007작전 맞먹을 정도로 숨 막히는 속도로 부산극장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를 보게 되었는데, 극장에 모인 천 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 숨죽여 가며 영화를 체험하는 순간, 나와 선생님들은 감동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며 "선생님, 꼭 10년 안에 제 영화를 가지고 부산에 올게요"라고 했던 다짐을 지켰다. 딱 10년 되던 2014년에 장편 데뷔작 <거인>을 가지고 부산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그 다짐을 잊지 않고 극장을 찾아오셔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부산영화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다. 물론 행사를 후원하고 집행하는 시 관계자들도 '우리'에 포함된다. 단순히 뿌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집'이 사라지게 생겼다. 한번만이라도 영화인들에게, 시민들에게 그리고 부산시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주시길.

내 가족과 친구들이 항상 통화 끝머리에 맺는말이 있다. "영화제 때는 꼭 내리 올끼제?" 이 말을 부디 내년에도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김태용 감독은 누구?


1987년생인 김태용 감독은 단편 <얼어붙은 땅>(2010)으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후 <밤벌레>(2012), <도시의 밤>(2012)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거인>(2014)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의 초청을 받았고,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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