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열세 번째로 <초인>의 서은영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초인>의 대형 포스터가 걸렸던 부산 해운대 해변. 2015년 당시 모습.
영화 <초인>의 대형 포스터가 걸렸던 부산 해운대 해변. 2015년 당시 모습.서은영 제공

난 5년간의 회사생활을 때려치우고 영화를 하겠다며 무작정 학교에 들어갔다. 동기들 중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한명 있었다. 내 스스로는 열심히 다녔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노력해야 했다. 이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집중력 하나는 참 좋은데, 영화는 열심히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잘 한다는 말도 무의미하다.

몇 개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제에도 계속 떨어지고 내 자존심과 자존감도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치열한 대기업 면접도 뚫은 나다. 영화제 몇 번 떨어졌다고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난 단편영화 스타일이 아닌가봐"였다. 장편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시나리오를 써서 받은 제작지원금과 안 쓰고 모아놓은 퇴직금, 가족들이 빌려준 돈을 밑천삼아 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생애 첫 장편영화

 영화 <초인>의 한 장면.
영화 <초인>의 한 장면.서은영

폭풍 같은 감정과 불타는 투지와는 다르게 내가 만든 건 청춘로맨스 영화였다. 이번엔 꼭 부산에 가야 된다. 난 이제 나이도 많고, 결혼도 했으며, 여자였다. 만일 무언가를 또 이루지 못 한다면 이번엔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 같았다. 남편과 술을 마시며 과거 부산에서의 추억을 안주삼아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로 향하기를 바랐다.

"부산, 떨어지면 어떨 것 같아?"
"글쎄..."

그리고 2015년 8월 7일. "서은영 감독님이시죠?" 내 이름을 부르는 달달한 목소리의 영화제 직원은 날 부산으로 초대했다. 그 날, 믹싱기사님과 녹음하러 온 여배우, 응원 차 들린 편집 기사님과 함께 우리 여자 넷은 충무로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20년 동안 부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을 가득 품에 안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동안 점차 달라진 건 나였다. 나는 영화제를 즐기는 관객에서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으로 변해있었다. 드디어 내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퇴사한 후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는데, 부산에서는 신나게 놀 수 있었다.

부산이 대체 뭐길래

누군가는 "그 영화제가 뭔데 왜 이리도 유난들이야"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제는 시스템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 그 어떤 아는 사람도 없는 사람, 투자사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나 같은 평범한 영화인들에겐 또 다른 기회의 상징이다.

여전히 남편과 술을 마신다. 올해 부산에 대한 우려와 걱정, 곧 개봉할 영화와 다음 영화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안주삼아 씹던 그가 그랬다.

"우리가 작년이 아닌 올 해, 부산에 내려고 준비했다면 어떨 것 같아?"
"글쎄..."

전 세계 수많은 영화인들이 자신의 영화를 갖고 부산을 방문하길 원한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은 그런 부산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동시에 그 역시 자신의 영화가 틀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부산은 전국의 영화인들, 영화학도의 마음에 다양한 형태의 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꿈이 부서지지 않도록, 우리가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부산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영화로 단 한번이라도 위안을 얻었던 사람들 모두 부산을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서은영 감독은 누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서은영 감독은 단편 영화 <장마>(2013), <살인의 시작>(2014), <알바천국><2014> 등을 발표해왔다.

첫 장편 영화 <초인>으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진출했다. 이 작품은 당시 영화제에서 대명컬쳐웨이브상을 받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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