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이 글은 세 번째로, <프로젝트 패기> 이근우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이근우 감독이 연출한 <프로젝트 패기>의 포스터.

이근우 감독이 연출한 <프로젝트 패기>의 포스터.ⓒ 이근우


2015년 봄이 움트기 직전인 어느 겨울, 나는 문구점에서 링 제본한 시나리오 한권을 달랑 든 채로 홀로 사람들을 줄기차게 만나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을 만날 수는 있었다. 1999년 <신혼여행>이란 작품의 스크립터로 영화를 시작해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감독: 신동일)와 <의뢰인>(감독: 손영성)의 조감독을 거쳐, 2012년엔 무려 공효진과 하정우가 신인배우들과 577km 거리의 국토대장정을 하는 < 577 프로젝트 >란 작품을 연출했다. 한눈팔지 않고 어떻게든 업계에서 버티고 버틴 끝에 그래도 필요한 사람들을 소개받을 정도의 네트워크는 형성되어 있었다.

숱한 거절과 거절보다 더욱 쓰린 무응답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다. 영화를 시작한 이래로 순탄한 적은 없었다. 시나리오 공모전엔 늘 낙방했고(20대에 10번 넘게 떨어진 이후론 떨어진 숫자를 세지 않게 됐다), 제작지원 프로그램엔 당연하게 예선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관심 가져주는 제작사를 만나 아이템을 개발하고 정식으로 극영화를 만들기 위한 기회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일 년 후쯤엔 늘 제자리였다. 실패를 밥 먹듯 하다보니 익숙해질 법도 하련만, 그래도 실패할 때면 마치 새 살에 상처가 난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문득 막막했다. 이대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관두든 계속 가든  결판을 낼 시점이라 처음으로 마음을 먹었다(안 그래도 무딘 나인데 좋아하는 일이라며 취해있다 보니 더 무뎠었나보다).

결판을 낼 시점

 <프로젝트 패기>에서 하시용 역을 연기한 박종환. 영화 속 뮤직비디오 장면의 몸 개그를 위해 현장에서 그는 늘 탈진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프로젝트 패기>에서 하시용 역을 연기한 박종환. 영화 속 뮤직비디오 장면의 몸 개그를 위해 현장에서 그는 늘 탈진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이근우


처음엔 부모님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그러면 영화를 계속할 수 있어요.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하셨지만 마지막 한번만 크게 손을 벌릴게요."

다음은 시집 간 두 여동생(과 매제)이었다.

"오빠가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야. 너희를 투자자로 모실게."

그리고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각광을 받으며 부상하고 있던 배우 박종환을 만났다.

"종환씨. 초면인데, 밥 먹고 우리 노래방 한번 가죠. 이 작품이 음악영화에요. 주인공이 보컬트레이너에다가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는 뮤지션이니 노래를 만약 기술적으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못하신다면 그건 관객 분들한테 거짓이 되잖아요. 실례를 무릅쓰고 확인할게요. 아, 깜박 잊고 말 못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겁니다."

< 577 프로젝트 >로 인연을 쌓은, 아침드라마계의 장동건으로 추앙받는 배우 이지훈과도 다시 호프를 기울였다.

"지훈아. 내가 너랑 언젠간 하겠다던 작품이 바로 이거야. 주인공 둘 다 뮤지션이고 네가 연기할 '도밍게즈 남'은 멕시코의 일출을 담아 스페니쉬 기타를 연주하는 그런 뜨거운 영혼이야. 일단 중고나라에서 네 기타부터 사줄게. 아, 내가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 내겠다고 그 말은 했지?"

구급차 천장 보며 생각했다... 이러다 부산 못 가면 어떡하지?

 <프로젝트 패기>에서 도밍게즈 남 역을 맡은 이지훈. 역할을 위해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착용했다.  역시 그는 콧수염 없을 때가 훈남이다.

<프로젝트 패기>에서 도밍게즈 남 역을 맡은 이지훈. 역할을 위해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착용했다. 역시 그는 콧수염 없을 때가 훈남이다.ⓒ 이근우


돌이켜보면 아찔하다. 뻔뻔함의 극이라고나 할까. 사실 난 부산국제영화제와 특별날 인연이랄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작품이 초청을 받아 ID배지를 받은 적은 한번 있다.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게 전부다.

내 유일한 단편 영화가 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처 선정되지 못하고 탈락한 바 있다. 이게 팩트다. 딱히 내려갈 이유는 없었지만 딴에는 영화인이랍시고 먹고 마시며 바닷가를 거닌 적은 있다. 그게 현상이다. 심야상영을 포함 20여 편의 영화를 몰아 보다가 쌍코피를 쏟은 적은 있다. 쌍코피를 쏟는 내 자신이 왠지 뿌듯했다. 그게 허세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영화제 기간에 부산에 못 갈 때면 괜히 침울해지고 언젠간 내 영화로 꼭 레드카펫을 밟겠노라 다짐했다. 그게 꿈이다.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동안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려야했다.

'만약 부산에 못 가면 어떡하지?'

후반작업 중에 갑자기 몸에 마비가 와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목 아래로 움직여지지 않는 와중에도 구급차 천장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러다 부산에 못 내면 어떡하지?'

이번이 마지막임을 각오했다고 해도 그건 철저히 내 사정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와 눈을 보며 이미 약속하지 않았나. 어느새 영화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내가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으로 접어들었다. 이건 영화 이전의 문제며, 만약 내가 영화를 다신 못하게 되면 그 이유는 내가 영화로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실 되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깊어질 때면 너무나 끔찍했다.

편집실에서 갓 구운 따끈한 가편집 상태의 DVD를 들고 접수 마감 마지막 날 부산행 KTX를 탔다. 부산은 너무도 당연하게 거기에 있었다. DVD를 접수하고 며칠 동안은 생애 가장 강력한 허탈감? 안도감? 상실감? 좌절감? 불안감? 암튼 그런 요상한 감정으로 온통 범벅이 된 채 그렇게 살았다.

페이크다큐멘터리 형식에, 병맛 코미디에, 거기다 음악영화까지 표방하고 나선 전혀 '스탠다드' 하지 못한 이 작품이 영화제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제도나 시스템과는 가장 먼 그늘에서 꾸역꾸역 태어난 이 작품이 영화제라는 울타리 안으로 포용될 수 있을까? 태어나 일면식도 없는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란 인물이 과연 이 작품을 좋게 봐줄까? 아니, 내가 전한 DVD를 봐주기나 할까?

결과적으론 통했다. 더 훌륭한 신청 작품들이 아마도 부지기수로 많았으리라 생각해본다.

나는 묻지 않았다, 또 묻지 않을 것이다, 지지하니까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당시 <프로젝트 패기> 출연배우들과 함께. 역시 배우들이라 카메라 앞이 자연스럽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당시 <프로젝트 패기> 출연배우들과 함께. 역시 배우들이라 카메라 앞이 자연스럽다. 왼쪽에서 세번째 어색한 표정이 나다.ⓒ 이근우


<프로젝트 패기>는 감히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진심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기 때문에 어디에든 그 상대치를 놓고 보더라도 적어도 뒤질 정도는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다. (물론 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그 실체 없는 진심이란 걸 읽고 선정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나는 모른다. 부산에서 그 분과 만났을 때에도 왜 이 작품을 뽑았느냐 묻지 않았다. 왠지 그런 건 멋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내키는 대로 믿고 싶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가 영화인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좀 더 연장하게끔 해주었다. 현 상황으로선 일단 다행이라 생각한다(고상한척 하지 않고 말한다면, 씨X! X나 다행이다).

아! 어떻든 구사일생으로 연명하는 지금 곰곰이 되짚어 보건데 배우 박종환은 내가 한창 불안해하던 시점에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노래방의 첫 만남 다음날 시나리오를 집에서 찬찬히 읽고,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이 영화를 하기로 결정해서 전화했다"고.

이종열 촬영감독님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작은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명분이 된다"고. 김우일 편집감독님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니까 한다"고. 이 작품을 계기로 처음 만난 미누 음악감독님도 이런 말을 하긴 했었다. "시나리오가 이해가 되고,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다"고.

어쩌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겠단 말로 저들을 설득시켰다고 믿는 건 말도 안 되는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나에게 계기이자 동력이 되어준 부산국제영화제가 나날이 더욱 번창하는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영화제에서 (평소 내 가치관과는 다른) 뜻밖의 작품을 만나게 되라도 나는 프로그래머에게 왜 그 작품을 뽑았느냐고 따져 묻지 않을 것이다. 내 작품이 뽑혔을 때도 안 물었는데, 그런 건 묻고 싶지 않다. 전혀 멋있지 않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영화들을 보고 싶고, 내가 미처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보고 싶고, 내가 인지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흐름들을 영화제를 통해 재발견 또는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언제나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함께 하고 싶다. BIFF를 지지한다.

이근우 감독은 누구?

이근우 감독은 1977년생으로 본문에서 직접 밝힌 대로 <신혼여행>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영화 <의뢰인> 등의 조감독을 거쳐 버라이어티 다큐멘터리 <577 프로젝트>을 통해 연출 데뷔한다. 이후 <프로젝트 패기>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했다.

하정우, 공효진을 비롯해 다수의 조연, 단역 배우와 폭넓은 관계망을 유지하고 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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