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다섯 번째로, <스틸 플라워>의 박석영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스틸 플라워>의 배우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이 주인공 하담 역의 정하담.

<스틸 플라워>의 배우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이 주인공 하담 역의 정하담, 왼쪽은 배우 김태희.ⓒ 박석영 제공


저는 영화 <스틸 플라워>의 감독 박석영입니다.

<스틸 플라워>는 저의 첫 영화였던 <들꽃>으로 제19회 부산 국제영화제에 갔던 해, 폐막식 날 상상했던 한 장면을 씨앗으로 피어난 영화입니다. 부산의 바닷가에서 순간 떠오른 '직장에서 쫓겨나는 한 소녀'의 이미지가 저를 사로잡았고, 저에게는 낯선 공간인 부산에서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던 저는 무작정 부산지역에 거주하는 영화학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부산지역에 연고를 둔 스태프들은 함께 주인공 하담 역의 의상과 소품을 구하러 도깨비 시장을 한주 내내 돌아다니고, 캐리어 하나, 신발 하나를 찾기 위해 국제시장을 몇 번이나 찾고, 적당한 촬영장소를 구하기 위해 배산, 연산, 송정의 너무나 특별한 공간들을 밤낮 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치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 가게를 내어주시고 밤이면 출출한 저희에게 전을 부쳐주시던 전집 사장님, 어색해 하시면서도 출연을 허락해주신 세탁소 아저씨, 촬영이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시던 횟집 부부, 그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밤늦게까지 엑스트라를 자청한 젊은 예술인들까지. -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부산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독으로서 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스틸 플라워>는 부산 스태프들, 부산 시민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하게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틸 플라워>를 상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배우들도 그들의 진심을 다한 연기를 세상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영화하는 일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스틸 플라워> 포스터 속 정하담.

영화 <스틸 플라워>의 포스터.ⓒ 인디스토리


저는 다음 영화 <재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틸 플라워> 하담이 열 살이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역들 오디션을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정직한 연기에 하루하루가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또 슬픈 것도 있습니다. 울라면 울어야 한다. 춤추라면 춤춰야한다 웃으라면 웃어야한다. 이같이 자유로운 상상을 잘라내는 연기교육에 아이들은 이미 자신이 어떻게 웃고 우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성인 연기자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기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무섭고 안쓰럽습니다.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스스로 너무나 아름다운 순간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전 그 아이가 춤추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춤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춤추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순간들. 그 자체가 아름다운 영화였고, 진실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더군요.

너의 그 한마디 말도
쓸쓸한 그 눈빛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노래 '너의 의미' 중)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고, 재능과 노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다름을 아름답게 보는 시선과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숭고한 원칙 안에서만 지켜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시선과 원칙이 인간의 품격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산시가 품격도 예의도 보이지 않는 지금. 오히려 부산시민 전부의 의견을 사유화하고 획일화시켜내는 모습을 보며, 비단 문화예술에 대한 몰이해나 창작의 자유에 대한 비헌법적 태도를 떠나, 근본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하고 헌신해왔던 부산시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낍니다.

물론 저는 믿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워주신 부산시민들이 결국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을 지켜낼 것입니다. 영화의 자유를 지켜주세요. 부산국제영화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세요.

박석영 감독은 누구?

1973년생인 박석영 감독은 <들꽃>(2014)의 연출을 맡으며 데뷔했다. <들꽃>과 그 이후 연출한 <스틸 플라워>를 통해 제19회,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들꽃> <스틸 플라워> 그리고 현재 제작 중인 영화 <재꽃>이 바로 박석영 감독이 기획안 '꽃 3부작' 시리즈다. 세 편의 영화로 박 감독은 인간 존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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