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아홉 번째로 <꿈보다 해몽>의 이광국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로맨스 조>를 보고 저를 찾아와 악수를 청하시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선물 해줘서 감사하다" 라고 인사를 해주셨던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입니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로맨스 조>를 보고 저를 찾아와 악수를 청하시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선물 해줘서 감사하다" 라고 인사를 해주셨던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입니다.ⓒ 이광국 제공


20년 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어느 황량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제대를 하면 꼭 영화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1년여 남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22살의 육군 상병이었다.
그 해(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태어났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고,
스무 살을 넘긴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이 아프다.

2011년 <로맨스 조> 라는 첫 장편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온갖 고생 끝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상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쉽게 제작되는 영화는 한 편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처음 내 영화를 상영하던 날.
관객들 틈에서 열심히 반응을 살피던 기억과 무사히 상영이 끝나던 순간의 아쉬움. 
긴 시간동안 당신 자식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길 바라시던 부모님 앞에서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숨기며 나누었던 관객들과의 대화.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순간의 감흥은 쉽게 사라지지, 아니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만드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하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불린다.
좋은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의 구분 말고 왜 다른 구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투박하고 모자라지만,
내 영화가 천 만 영화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내 배우들이 천 만 배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영화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기를 꿈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국내외의 이런 감독들에게, 좋은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더 없이 행복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자본의 논리로는 갈 곳 없는 영화들을 발굴하고 응원하며,
그 영화들이 국적도 언어도 다른 세상으로 날아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구 정반대편 아르헨티나의 할아버지에게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게 해주었다.
나와는 다른 시간의 축 위에 있는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기억 안에 내 영화가, 내 기억 안에 그 인사는 영원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번도 이런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몇몇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영화제를 흔들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그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히 그들에게 부탁의 메시지를 남긴다.

 5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의 부산시 국정감사에서 서병수 시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지난해 10월 5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의 부산시 국정감사에서 서병수 시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정민규


" 많이 불안하시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당신들은 계속 잘 살 겁니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우신가요.
  잘 살고 계시잖아요.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창작의 자유가 왜 중요한지 잘 아시잖아요.
  부산시민들, 아니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합니다.
  세계화 좋아하시잖아요. 그런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투적인 말들 잘 아시잖아요.
  창피해 죽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많이 외롭다고, 그래서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러시는 거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이러지 마시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셔서 좋은 영화 한 편 같이 봅시다.
  그 깊은 외로움을 다 덜어드리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남긴다.

" 보잘 것 없지만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이광국 올림

이광국 감독은 누구?

1975년생인 이광국 감독은 장편 <로맨스 조>로 데뷔했다. 그전까지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존재감을 알려왔다.

<로맨스 조>로 그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 평론가 상을 받았다. 또한 2014년에 발표한 <꿈보다 해몽>으로 역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 상을 받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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