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여섯 번째로, <현기증>의 이돈구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모습.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모습.ⓒ 이돈구 제공


저에게 부산국제영화제란, 기적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과장 없이 진심으로 기적적인 순간을 제게 안겨준 영화제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연기전공이라 특별히 연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와 연출 공부를 시작했는데 사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다수의 단편영화를 찍었지만 번번이 영화제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큰 결심 끝에 장편영화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장 통장에 있는 돈과 친구에게 빌린 200만원을 합쳐 마련한 300만원으로 촬영을 마무리 지었는데, 당시 제 목표는 부산국제영화제였습니다. 그거 하나 바라보고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두 번의 기적

 영화 <가시꽃>(왼쪽)과 <현기증>의 포스터.

영화 <가시꽃>(왼쪽)과 <현기증>의 포스터.ⓒ 이돈구 제공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로 도와준 친구들에겐 "부산영화제에 갈 수 있으니까 날 믿어!"라고 해놓고는, 밤마다 내 성급함을 후회하며 잠이 든 기억이 있습니다. 8월에 1회 차, 9월에 5회 차, 그리고 12월에 4회 차를 찍었는데, 중간에 3개월이라는 공백을 묵묵히 기다려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실망을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2012년 1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영화제는 저에게 다양한 소통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 같은 신인감독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후로 다양한 영화제에 참석하면서 곧바로 차기작을 찍을 수 있는 큰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바꿔준, 그리고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 힘을 안겨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영화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차기작은 <현기증>이라는 영화인데 저예산이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제작과정을 '제대로' 처음 경험해본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장에는 각자 파트가 있는 스태프들과 브라운관 속에서만 봐왔던 배우들과의 작업(김영애, 송일국, 도지원 등이 <현기증>에 출연했다-편집자 주)이라 들뜨면서도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재가 너무 불편해서 여러가지 위험요소가 보이는 상황이라 개봉에 적잖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후반 작업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나던 차에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부문에 초청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 탄력을 받아 영화제가 끝나고 1달 후 국내 개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이 기적일 수 있는 이유

영화를 만드시는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두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며 촬영해왔습니다. 두 편 다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영화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건 영화를 만드는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큰 시련일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선하고 좋은 영화들이 선보여지고, 또 많은 영화인들 역시 소개되고 보상받는 자리를 만듦에 충실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영화가 어떤 색깔을 지녔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아시아영화제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전 그런 영화제에 초청받은 사실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들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는 영화제로 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돈구 감독은 누구?

이돈구 감독은 1984년생으로 2012년 영화 <가시꽃>의 연출을 맡으며 데뷔했다.

단돈 294만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가시꽃>은 같은 해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진출했다.

두 번째 장편 영화 <현기증>(2014) 역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진출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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