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스태프로 일했을 당시 ID카드, 그리고 3년 뒤 감독으로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ID카드다.
이유빈 제공
여기서 영화 같은 반전은 그로부터 삼년 후, 2013년에 내가 만든 작품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는 거다. 스태프로 일할 때 직접 준비했던 <비전의 밤> 시상식 무대를, 내가 만든 영화로 수상자가 되어 올라가게 되리라고는, 2010년의 '나라 잃은 이유빈'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반전은 영화제에서 일을 하며 영화를 다시 만들기로 결심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영화를 들고 영화제를 찾은 감독들에 자극을 받아 그 결심을 한 건 아니란 거다.
그냥, 영화제 일이란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영화제 기간 내엔 말도 안되게 바빠서 '나도 다음엔 내 영화를…' 그런 잡생각(?)을 할 여유조차 안 생겼다.
회사원처럼 내일 출근할 곳이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웬걸, 상사의 스트레스에, 야근에, 잔업에… (폭로는 아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거다.
이렇듯 영화제 일을 하며 얻은 엄청난 깨달음은 내가 영화를 해서 힘든 것이 아니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게 사는 거였구나. 그렇게 한 번 우물을 벗어나 보니, 영화 만드는 일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은 편해졌던 것 같다.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는 부산영화제의 추억은 이렇듯 다른 감독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내 사진첩 속의 부산은 2010년에도, 2013년에도 여전히 화창하기만 한데, 지금은 미세먼지 아주 나쁨 단계에 접어든 하늘같다. 생각만 해도 숨통이 콱 막히고 외출할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얼마 남지 않은 영화제가 다시금 화창하게 개길 바라는 이 글은 나란 사람의 추억팔이를 가장한 연대의 글이다.
아직 여리고 작은 목소리라 벽돌 하나의 역할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일부가 되어본다.
지치지 않고 버텨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셔틀콕>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트로피와 꽃다발.
이유빈 제공
이유빈 감독은 누구? |
이유빈 감독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영상학과 과정을 마쳤다. 단편 <마이좀비보이>(2006)로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상업영화 <회사원>(2012)의 스크립터를 맡기도 했다.
이후 첫 장편 데뷔작 <셔틀콕>으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됐다. 당시 영화는 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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