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한 장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상영 당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청년필름
저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첫해에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줄 서서 표를 예매하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에 서너 편은 기본이었죠. 밥을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지만 밥보다 영화가 먼저였습니다. 부산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죠. 첫해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꿈을 키웠습니다. 언젠가 제가 제작한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요.
부산국제영화제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의 노력에 정부와 부산시,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뜻을 모아 지원하고 응원한 결과였습니다. 대통령이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졌고, 그 원칙은 영화제를 키워내는 바탕 되었습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행복했으며, 부산 시민들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해피 투게더>, <크래쉬> 같은 영화들이 검열 문제로 한정 상영되기도 했고, 북한 영화를 상영할 때도 비슷한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협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았고, 영화제의 심의 조항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문제'를 협의를 통해 해결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외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저에게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청년필름이 제작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입니다. 영화 일을 시작한지 10년 만이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제는 뉴커런츠상까지 안겨주었습니다. 한 눈 팔지 않고 10년을 달려 온 저와 청년필름 식구들에게 주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자기 색깔이 분명했지만 상업적인 흥행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던 영화들을 만들어왔던 우리들에게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영화를 만들라"는 지지였습니다.
그 뒤로 <귀여워>, <후회하지 않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은하해방전선> 등 많은 영화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또 우리는, 큰 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저에게 또 다른 선물을 주었습니다. 감독이 되어보겠다고 만든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입니다. 관객으로 시작된 인연이 제작자로 또 감독으로 이어졌습니다. 감독의 꿈을 응원해준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에 단편을 또 연출할 수 있었고, 장편 데뷔작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던 부산국제영화제와 저의 인연에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2014년에 시작된 일입니다.
먹구름
▲지난 3월 24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감독들이 기자회견을 가졌을 당시 사진. 현장엔 김동원, 김조광수, 박석영, 이송희일, 부지영, 이수진 감독 등이 자리했다. 총 148명의 영화 감독들이 부산영화제를 지키고 싶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성하훈
영화 <다이빙 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압력에서 출발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원 예산을 줄이더니 결국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고발, 해임(재위촉하지 않은 형식이었지만 명백한 해임입니다)하고 여전히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은 무너졌습니다. 오히려 "지원한 만큼 간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화제가 만들어진 1996년보다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1996년 첫 해부터 2015년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관객으로 제작자로 감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해 왔는데, 올해는 못 가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예산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내 것처럼 좌지우지 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부산시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저는, 우리 영화인들은, 부산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구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하는 저와 영화인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제 영화 인생을 받쳐준 건 부산국제영화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작한 영화 11편과 감독한 영화 3편(단편 2편 포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관객들로부터 받은 질타와 응원이 큰 힘이 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해외 여러 나라의 관객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부산국제영화제인데, 올해엔 그곳에 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던 국민들이 1996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해주었듯, 2016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문민정부가 있었다면 2016년에는 여소야대 국회가 있으니까요!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김조광수 감독은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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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⑮ 홍석재] 영화제는 꿈! 꿈은 결코 당신 마음대로 꿀 수 없다 [16 정윤석] 서병수 시장님, 성수대교 참사 유가족이 제게 묻더군요[17 민용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를 기어코 베려 한다면[18 김동명] 거짓말 같은... 결단코, 부산국제영화제[19 이용승] 정치야, 축제에서 꺼져주면 안될까?[20 김진열] 평범한 시민들이 BIFF를 걱정하기 시작했다[21 안선경]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이겼습니다[22 김용조] 서 시장님, 전 자격 없는 영화인인가요[23 양익준] 씨발 진짜... 욕을 빼고 글을 쓸 수가 없다*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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