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이 글은 그 두번째로, <소통과 거짓말>의 이승원 감독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자격' 이란 단어가 날 자꾸 망설이게 만든다. 부산영화제사태에서 최고 화제로 떠올랐던 '자격논란'(서병수 부산시장이 올해 새롭게 선임된 부산영화제 자문위원들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비난해 물의를 빚었다-편집자 주)은 그렇다 치자. 나야말로 진심 부산영화제를 위해 뭔가 나서서 혹은 대표해서 작은 소회라도 밝힐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소심한 물음이다.

나야말로 뒤늦게, 아주 뒤늦게, 그것도 깜짝하고 지나갈 시간에 영화 한 편을 만들어놓고,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영화인인 마냥 수많은 영화인들 사이에 껴서 제20회 부산영화제를 즐겼었다. 그래서 평생 책이라곤 유일하게 지금까지 읽고 있는 <씨네21>에 내 이름도 올려보고, 유명한 감독님들 배우님들 손도 한번 잡아보고, 앞으로 대성할 감독인 마냥 으스대며 그 가을밤 10일간의 잔치를 부산에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함께 했더랬다.

부산은 유난히도 맑았으며, 뜨거웠고, 소주가 맛있었다. 또한 관객은 솔직했으며, 영화의 전당은 거대하고 엄숙하며 경이로웠다. 이 모든 것이 지난 20년 동안 내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저력이었다. 그리고 관대함이었다. 부산영화제는 영화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목이 말라 달려드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오아시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이 영화제 시작을 알리고 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지난해 10월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이 영화제 시작을 알리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영화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목이 말라 달려드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에 울타리가 쳐지고, 물 값이 매겨지고 있다.ⓒ 유성호


난 사실 꿈조차 꾸지 않았었다. 그게 20년 동안 한 번도 부산에 놀러와 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부산영화제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저 멀리 있는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 오히려 재미삼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비장한 마음 없이 영화를 부산에 보냈고, 우린 일주일 만에 그 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와 PD는 펑펑 울었다. "(영화제 출품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계속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그 문턱은 내 피해의식만큼 높지 않았으며, 거창하거나 세련된 답을 원하지도 않았다. 부산영화제는 영화에 담긴 진심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을 해줄 뿐이었다. 정말 이 영화제는 누구에게나 갈망하는 모든 이들이 마음껏 마시고 쉬어갈수 있는 오아시스가 분명했다.

하지만 요즘 들려오는 여러 소리에 우려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맘껏 나누고 즐기던 오아시스에 울타리가 쳐지고, 물 값이 매겨지고, 심지어 생각이 다르면 입장조차 못하는 그런 곳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오아시스에 주인이 없듯이 예술에도 주인은 없다. 오아시스의 주인은 지나가는 목마른 모든 사람들일 것이며, 예술의 주인도 그것을 즐기기 위해 오는 다양한 사람들일 것이다.

자격

 지난해 10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해운대 해변가에 세워진 영화 <소통과 거짓말> 포스터 앞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맨 오른쪽이 이승원 감독이다.

지난해 10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해운대 해변가에 세워진 영화 <소통과 거짓말> 포스터 앞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맨 오른쪽이 이승원 감독이다.ⓒ 이승원 제공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속 존 키팅(로빈 윌리암스 분) 선생이 말했다. "돈, 집, 공장, 옷, 자동차와 같은 물품들이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이라면 예술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 즉 사랑과 기쁨, 증오, 외로움, 환희 등은 내 삶의 이유"라고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이는 모든 삶의 이유들을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자격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영화가 끝나고 "심장이 뛴다"며 "어떻게 이런 저질 영화를 만들 수 있냐"고 손을 바르르 떨며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해주신 50대 동창 모임 아주머님들. 지하 주차장에서 매일 먼지를 마시며 그날 나갈 일간지들을 정리하고 있던 자원봉사자님들. 자신도 꼭 자기 영화를 들고 이곳에 오고 싶다던 대학생들. "내 동료들의 꿈은 이곳 부산영화제에 오는 것"이라 말했던 중동 지방 출신의 한 감독님까지.

부산영화제를 이끌 그 '자격'이란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바로 이러한 사람들, 우리보다 더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아시아의 영화인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부산영화제의 진정한 오아시스를 꿈꾸며… 감독 이승원.

이승원 감독은 누구?

이승원 감독은 올해로 마흔인 신진 영화인이다.

2004년 영화 <모순>의 연출을 맡으며 데뷔했고, 지난해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았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선우(고경표 분) 엄마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의 남편이기도 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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