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일곱 번째로, <물고기>의 박홍민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해운대 해변가에 걸렸던 영화 <혼자>의 포스터. 지난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찍은 사진.

해운대 해변가에 걸렸던 영화 <혼자>의 포스터. 지난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찍은 사진.ⓒ 박홍민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물고기>, <혼자>라는 장편 영화를 연출한 박홍민이라고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억에 대하여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보니 참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2011년도 <물고기>라는 첫 장편 영화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전 총 7편의 단편을 찍었지만 단 한 번도 국내 단편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때는 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영화를 찍음으로써 제 고민이나 감정을 표현해왔고 영화를 통한 표현방식이 익숙하다고 생각하는데, 저의 전달 방식이 관객과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BIFF에서 전화가 왔다

2008년도, 진도 씻김굿에 관심을 가진 후부터 자주 진도를 왕래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작사에 소속되거나 투자를 받은 상황도 아니었지만 제가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을 영화로 꼭 찍고 싶었기에 혼자 스케줄표를 만들고, 헌팅 다니고, 아는 동생과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등 열심히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제작 예산이 없는 관계로 지지부진하며 2년이 흘러버렸고, 영화 <물고기>의 PD이자 촬영감독님이신 최성원 감독님이 옆에서 저의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시다가 여러 도움을 주시고 의지를 보여주셔서 적은 비용이지만 투자를 받고 <물고기>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3D로 촬영을 했기에 촬영 이후 1년간 3D 작업과 종합 편집, 디지털 후반작업 등을 직접 공부해가며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스태프 분들이 이 영화에 참여했는데 어디에도 소개되지 못할까봐 공포감과 책임감 등의 감정을 널뛰듯 느껴가며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이셨던 전찬일 프로그래머님의 전화가 왔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영화제이고 심지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라고 하는데 그런 영화제에 제가 초청되다니요. 전화를 끊자마자 혼자 방에서 큰 소리를 질러댔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간 부산국제영화제는 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박정범 형님(영화 <무산일기> <산다>의 연출)을 만났고, 이광국 형님(영화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의 연출)을 만났습니다. 여러 감독 분들과 영화인들을 만났고 영화하는 친구와 동생들을 만났습니다. <물고기>를 통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벤쿠버국제영화제 등 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간절히 바라던 영화 관객 분들을 부산에서 만났습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시민평론가 상을 받고 뒤풀이 자리에 갔는데 제게 다가오셔서 "또 꼭 좋은 영화 찍으셔서 부산에 오셨으면 한다"는 한 시민평론가분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믿음

 영화 <혼자>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송유현, 박홍민 감독, 배우 이주원. 가운데 아이는 김성욱.

영화 <혼자>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송유현, 박홍민 감독, 배우 이주원. 가운데 아이는 김성욱.ⓒ 박홍민 제공


물론 영화제는 어떻게 보면 판타지입니다. 찰나의 꿈입니다. 영화제를 통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뿐입니다. <물고기>는 3D영화이지만 결국 3D가 아닌 2D로 개봉하며 실패를 했고, 저는 몇 년간 수익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한동안 방에서만 지냈습니다. 제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위해 취재하고 열심히 글을 쓰며 2년을 보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투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고 그럴수록 점점 더 위축돼 갔습니다. 영화 작업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러다가는 평생 영화를 찍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글을 쓰려면 주변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힘들다보니까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져 있었고 어떠한 이야기도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썼던 글들도 진정성이 없어 보이고 주변을 이용해 글을 쓴 것만 같아서 제 자신에 대한 의문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광국 형님이 힘든 상황에서도 <꿈보다 해몽>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정범 형님과 광국 형님, 그리고 함께 해준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힘을 내어 제작사를 차렸습니다. 제 물건들을 팔고 돈을 빌려 아주 작은 예산의 두 번째 장편영화 <혼자>를 연출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심과 사력을 다해 연출하면 전 작품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작품도 알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만들었을 때도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어떠한 관련이 없었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전작이나 특별한 경력도 전혀 없었는데도 초청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만 좋다면 어떠한 편견 없이 공정하게 심사를 하여 초청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혼자>가 초청되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또 시민평론가 상을 받았고, 또한 주연배우이신 이주원 배우님은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습니다. 너무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났고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시민평론가분은 "다음 작품은 또 언제 찍으실 거냐"며 응원해주셨습니다. 왠지 제 작품을 계속 지켜봐주고 꾸준히 관심 가져주신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영화를 또 찍고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그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서울독립영화제도 가게 되었으며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또 초청이 되었고,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새인트 폴 국제영화제도 초청되었습니다. 그 외 여러 영화제에서도 초청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저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더욱 영화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많은 영화인분들을 만났고,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시민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동력을 얻어 두 번째 작품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지만, 다음 작품도 연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요즘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듯합니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꼭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원칙이 잘 지켜져야 빽도 없고, 영화제와 관계있는 지점도 없고, 남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영화만 잘 만들면 초청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제가 어떤 의도나 관계성에 의해 초청이 결정된다고 느껴진다면, 그 틀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감독은 어차피 떨어질 것이니 영화제에 내지 않겠지요.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초청된 감독들에게도 명예롭지 않을 겁니다.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는 쉽고 간단한 전제가 잘 지켜진다면, 영화를 만드는 누구든지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를 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단순히 크고 화려하기만 한 영화제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큰 품으로 안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그들이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때론 어떤 감독과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래서 그 감독이 설령 싫더라도, 그 사람의 창작 활동을 지지해주며 다양한 시선에 관심을 가져주는 그런 영화인들과 함께 하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성장해가는 영화제의 모습을 꿈꿔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부산국제영화제의 모습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박홍민 감독은 누구?

1982년생인 박홍민 감독은 영화 <물고기>(2011)와 <혼자>(2015)로 두 차례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두 차례 모두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특유의 상상력과 기존 문법을 벗어난 연출로 세계 여러 국제영화제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영화인이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