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이숭용달릴 때면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둔한 몸.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현대 유니콘스
1996년, 현대가 태평양으로부터 돌핀스를 인수해 유니콘스로 새 출발을 하면서 그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달릴 때면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둔한 몸이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대며 중견수 수비를 감당했고, 타선에서는 동갑내기 권준헌과 함께 '형님' 김경기 앞뒤로 늘어서 최소한 시각적으로는 '8개 구단 최고'를 넘어 '메이저리그 급' 중량감을 과시하는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하기도 했다. (김경기, 이숭용, 권준헌은 모두 185cm의 거한들이다.)
2000년부터는 SK로 옮겨간 김경기로부터 1루수 자리를 물려받았고, 해마다 오고 갔던 외국인선수, 혹은 심재학, 심정수, 박경완 등 거포들과 짝을 이루어 중심타선을 지켜갔다. 그래서 현대의 첫 해였던 1996년 .280의 타율에 12개의 홈런을 날리며 주전에 자리를 잡은 이래, 현대의 마지막 해였던 지난 2007년 .301의 타율을 기록하기까지, 이숭용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거의 전 경기를 출장하며 2할 대 후반의 타율로 '변수'가 많았던 현대 타선의 '상수' 역할을 했다.
꾸준한 활약과 사나이의 기질. 연차가 쌓이자 자연히 그는 선수단의 리더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는 또 자연스럽게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야구팀에서 주장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큰 팀이 이기는' 경기라고 할 만큼 선수들의 뜻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경기가 야구인데다가, 아무래도 선 자리가 다른 코칭스태프가 할 수 없는 고참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동료애와 더불어 복잡한 목소리 사이를 잇고 맺는 판단력이 채워지지 않으면, 일 년 내내 함께 먹고 자다시피 하는 수십 명의 사내들은 흔히 패거리나 파벌 따위의 수렁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숭용은 역대 최고의 주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지켜주어야 할 것과 고쳐주어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선배였고, 얄팍한 임기응변 대신 진정성 있는 뚝심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가 팀의 주장을 맡은 2003년과 2004년에 유니콘스는 연속 우승에 성공했고, 그 우여곡절을 겪어가면서도 선수단이 8년째 남다른 인연도 없는 임수혁 선수 돕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한 것 역시 그의 힘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이숭용의 역할을 보아온 이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캡틴'이었다.
유니콘스, 그리고 히어로즈...연고지 인천을 떠난 2000년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프로야구계의 미아가 되어버렸다. 7년 동안이나 1차 지명을 할 수 없었고, 임시 홈구장으로 쓰던 수원구장은 대개 원정 팀 관중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곤 했다. 그리고 지난겨울, 끝내 역사상 두 번째로 해체된 야구단의 비운을 맛보아야 하기도 했다.
부산 원정이라도 가서 서러운 일 당한 날이면 '다음 홈경기 때 보자'고 벼를 언덕조차 없었던 그 일곱 해. 그리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해체와 집단실직의 운명 앞에서 발버둥 치며 눈물 뿌렸던 지난 가을과 겨울 사이의 시간들. 그 사이에 다시 세 번이나 우승을 이루어냈던 것은 그만 두더라도, 그 거칠고 막막한 시간을 지나면서도 끝내 무너지는 모습 보이지 않아준 것만으로도, 유니콘스 선수단은 참 대단했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이숭용도 참 훌륭했다.
공 하나의 움직임을 따라 수십억의 돈이 오가는 그라운드. 그리고 가장 원시적인 맨몸으로 부딪혀 힘을 겨루며, 때로는 한방을 쓰는 동료의 부상을 내심 기뻐해야 하는 그곳을 어떤 이는 '정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자'를 만나기는 쉬워도 '남자'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어쩌면 가장 강하지도 못했고, 가장 화려하지도 못했지만 이숭용이라는 이름이 여러 가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유니콘스가 12년간의 팀의 역사에서 네 번이나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정민태와 박진만이 있었기 때문이고, 쿨바, 퀸란, 브룸바 같은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사라진 팀 유니콘스를 기억할 때, 그들의 이름보다 더 깊은 떨림을, 이숭용이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함께 웃은 기억보다,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견뎌낸 시간이 더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현대 유니콘스유니콘스 우승의 주역은 정민태, 박진만, 그리고 좋은 외국인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팀 유니콘스를 떠올리며 이숭용이라는 이름에서 더 깊은 울림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한국야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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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