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과 임호균부산야구의 상징 최동원과 인천야구의 상징 임호균, 그들은 84년 롯데가 일군 기적의 주연과 조연이었다.
롯데 자이언츠
그렇게 최동원은 부실한 팀을 한 어깨로 끌고 나가는 선봉장이었고, 무수한 공백을 한 몸으로 막아내는 수문장이었기에, 그에게 '에이스'를 넘어 '수퍼 에이스'라는 찬사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속홈런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 타자가 뻔히 알고 기다리는 길목으로 승부구를 우겨넣어 3구 삼진을 노리는, 그리고 홈런을 맞은 다음 타석에서는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로 더 강한 공을 던져 오기와 배짱을 겨루는 격렬한 승부사였던 그는 고작 '수퍼 에이스'라는 이름이 주는 든든함과 단단함에 머물지 않는 매력을 가진 투수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투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항상 한 호흡 멈칫하게 된다. 선동열과 최동원이라는 이름 두 개가 동시에 튀어나와 같은 극의 자석처럼 부대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프로야구의 시대로 한정 짓자면, 한국에서 선동열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투수는 최동원을 포함해 아무도 없다. 다승으로든 평균자책점으로든. 그리고 선발투수로든 마무리투수로든, 그는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압도적으로 승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 가장 절박한 순간의 마운드를 놓고 고민해본다면, 나 역시 최선의 선택은 최동원이 아니라 선동열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 박살을 내고 가루를 만들어버리든, 하얀 재가 되어 사라지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신념과 자존심의 승부라면, 어제 경기에서 15이닝쯤 완투한 피로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있을망정 다시 한 번 최동원을 불러내 함께 몸을 던져보고도 싶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전형적인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걸어야 할 것을 걸고 노려야 할 것을 노려 확실하고 깔끔하게 완전연소시켜버리는 처절한 승부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선동열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 조금 더 소모된 어깨, 그리고 훨씬 허약한 전력의 팀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뛰었던 선수였고, 그런 이유로 수많은 팬들의 애틋함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좀 더 어린 나이, 싱싱한 어깨, 강한 팀이 주어졌다고 해서 선동열보다 나은 성적을 냈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아니, 그런 상상 자체가 구차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