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타법야구 선수보다는 투해머 선수에게 어울릴 법한 그 자세를, 나의 눈과 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타격자세인지, 타격이 끝난 뒤에 이어지는 세리머니인지….
삼성 라이온즈
'괴물'은 수명이 짧다. 곧 그것은 잘못 비쳐진 그림자임이 드러나 한바탕 우스꽝스런 소동으로만 기억되거나, 새로이 발견된 생명체로서 기존의 인식체계 속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야구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소한 힘과 기술을 무기로 야구 판을 한 번 뒤흔들어놓은 괴물들은 그 생소함이 분석되고 익어갈 무렵 소멸되거나, 그저 '강하다' 정도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보통 선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프로무대로 올라와 LG 트윈스의 4번까지 치며 한바탕 야구판을 뒤흔들었던 조현이 그랬다. 그는 신일고 3학년 시절 '단타보다 홈런이 더 많은 타자'라는 악명을 떨치던 선수였고, '밀어내기 고의사구'라는 진풍경도 몇 차례 연출했던 무지막지한 타자였다. 1994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4타수에 홈런 세 개와 2루타 한 개를 때려내며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던 장면은 그 '역대 고교야구 최고 타자' 전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위력은 프로무대로까지 이어져 압도적인 손목 힘으로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내지 못한 타구마저 펜스 너머로 날려 보내며 전반기에만 3할대 타율과 9홈런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극단적이고 융통성 없는 어퍼 스윙'이라는 비밀이 간단히 간파당한 뒤로는 '높은 공만 던지면 우스운 폼으로 헛스윙하는 선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고, 그는 후반기부터 곧장 내리막을 걸으며 괴물소동은 곧 수습되고 말았다.
특히 프로에 갓 들어온 아마추어 무대의 파워히터들이 그렇다. '크게 휘두르는' 습성 상 그들은 강점만큼이나 많은 약점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프로무대의 노련한 선배들에게 일단 분석되기 시작하고 늘어나는 삼진 수가 줄어드는 홈런 수를 압도하게 되면 '강함에 대한 자기 확신'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은 달랐다. 그는 데뷔 초기 '도끼질을 하는 듯한' 격한 스윙으로 숱한 장외홈런을 만들어내며 투수들을 얼어붙게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큰 스윙의 허점을 찾아 기웃거리는 유인구를 비웃으며 항상 삼진보다 훨씬 많은 사사구를 얻어 나가는 신중한 타자가 되어 있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까다로운 변화구를 결대로 때려 안타를 만들어내는 노련한 타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어느 순간에든 긴장의 균형이 깨지는 틈이면 '설마' 하는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어버리는 모습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힘만 믿고, 초반의 성공에 스스로 눈높이를 맞추며 자만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발하며 해마다 타격자세를 가다듬는 성실한 선수였고, 심리적인 면에서마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숱한 견제와 분석, 그리고 유인과 두 번의 가슴 아픈 트레이드의 와중에서도 2001년까지 9시즌동안이나 해마다 3할 대 타율에 평균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냈고, 그 뒤로도 두 번 '2할대 중반까지 밀리는 최악의 부진'을 겪고도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해 돌아와 기어이 '13시즌 3할대'에 최초의 '통산 2000안타' 전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으며, 그 엉성해 보이는 걸음으로 통산 네 차례나 20-20을 달성하는 진정한 괴물로서 한 시대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물의 비밀] 내야 땅볼 치고도 전력 질주 하는 이유?
▲1루에서평범한 내야땅볼을 굴려놓고는 죽을동 살동 달려 밟아내는 1루 위에서, 우리는 괴물을 괴물이게 하고 스타를 스타이게 하는 그 무언가를 만나고 떠올린다.삼성 라이온즈
1993년, 삼성 라이온즈는 곧장 타격왕과 홈런, 타점 부문 2위에 오른 신인 양준혁, 그리고 오랜만에 재기해 막내로부터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회수해 선수단 기강을 세운 고참 김성래의 활약에 힘입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왼쪽 허벅지 종기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던 양준혁은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으로 경기에 나서야 했고, 하필 2차전은 그런 양준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2-2로 맞선 8회초. 1사 후에 김성래가 3루타를 치고 나가자 LG의 이광환 감독은 두 명의 후속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낼 것을 지시했다. 그 다음, 1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것이 바로 양준혁이었고,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양준혁에게 내야 땅볼을 유도해낼 수만 있다면,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병살 처리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이 되는 왼쪽 다리의 통증 때문이었는지, 평소 같지 않았던 스윙에 걸린 타구는 정해져있다는 듯 2루수에게 향하고,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되고 공이 다시 1루로 날고 있던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다시 9회의 승부를 넘겨다보고 있던 그 순간, 양준혁은 이를 악물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전력 질주했고, 그의 발은 송구보다 반의 반 걸음 쯤 앞서 1루 베이스를 밟아내고야 말았다. 선심의 요란한 세이프 선언과, 그 사이 홈을 밟은 김성래의 환호.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씹어 넘기며 내던진 발로 만든 결승 타점이었다.
그의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어느 날의 장외홈런 못지않게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그 뒤로도 그가 평범한 내야 땅볼을 굴려놓고는 죽을동 살동 달려 밟아내고는 심판의 아웃 신호에 혀 내두르며 돌아서는 1루 베이스에서, 우리는 괴물을 괴물이게 하고 스타를 스타이게 하는 그 본질적인 무언가를 만나고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 그는,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도 아니다. 아마도, 그가 써내려온 기록지 안의 숫자들이, 그리고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다듬어지는 타격 폼과 1993년 플레이오프 2차전 때 내 기억 안쪽에 새겨진 그의 표정과 발자국이, 내가 그에게 궁금해 할 만한 모든 것을 생생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주목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이어나가는 통산기록의 숫자 하나하나에 새삼 감동하고 흥분하게 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양준혁은 아직 아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숫자의 언저리에서 멈출 선수가 아니며, 전혀 다른 차원에 전혀 다른 규모의 숫자를 만들 것이고, 또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으로 도전하고 응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아직 그는 추억의 대상이 아니다. 응원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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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