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장에서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슈터지만 감독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센터라는 말이 있다. 야구장에서라면,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홈런왕이지만 팀을 살리는 것은 중간계투라는 말이 생길 만도 하다.

'꼴찌'라는 주제가 아니라면 별로 떠올려질 일도 없이 잊혀져가고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는 나름대로 걸출한 스타들을 보유한 팀이었다. 패기의 선발투수 김원형과 철벽 마무리 조규제, 그리고 태산 같은 존재감의 4번 타자 홈런왕 김기태는 각자의 위치에서 리그 최고의 한 자리를 다툴 만한 영웅들이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1014경기 연속출장의 '철인' 최태원을 빼놓을 수 없고, 비운의 스타 심성보도 떠오른다.

그러나 이따금 타이거즈나 이글스 같은 강팀을 이기는 '이변'으로 민망한 환호를 받던, 혹은 동병상련의 팀 돌핀스와의 안쓰러운 '탈꼴찌' 격전의 '투혼'을 치하받던 그 레이더스가 꼭 한 번은 솟구쳐 올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을 노리던 시절이 있었으니, 바로 96년과 97년이었다.

그리고 그 두 시즌 돌풍의 진원지는 그들 속에서도 기억의 순서가 밀리는 김현욱이라는 중간계투 요원이었다.

그저 그런 중간계투... '막장' 레이더스로

 쌍방울 레이더스.
ⓒ 쌍방울 레이더스 팬북
애초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대구 토박이 김현욱은, 3년간 2군 무대에서만 세월을 보내다가 96년 시즌을 앞두고 쌍방울 레이더스로 보내진다.

선수들에게 이적이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무명의 신인선수에게 선수가 풍부하지 않은 팀으로의 이적은 더 많은 출전기회를 의미하기에 서운할 일만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 레이더스로의 이적이란 조금 다른 의미였다. 레이더스로 건너가는 선수는 있어도 레이더스에서 다른 팀으로 나오는 선수는 매우 드물었다. 레이더스 행은 '무덤' 혹은 '블랙홀', 그리고 '선수생활의 막장'을 의미했다.

김현욱의 제구력과 변화구는 쓸 만 했지만, 구속이 느린데다 허리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는 잠수함 투수라는 약점이 너무 컸다.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잠수함 투수로서 허리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면, 어차피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리고 구속이 빠르지 않아 제구력과 변화구로 현혹시키는 것만이 살 길이라면, 타선이 한 순번을 돌아가기 전까지만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따라서 선수생활의 시작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그의 보직은 중간계투였다.

95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은 '좌완 사이드암'이라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던 쌍방울의 최한림을 얻기 위해 베테랑 투수 유명선을 내주었고, 그나마 유명선의 나이가 많다는 흠을 무마하기 위한 덤으로, 키워봐야 큰 값을 받을 수 없는 '천상 그저 그런 중간계투' 김현욱을 붙였다.

그러나 틀릴 리 없을 것 같던 삼성의 그 선택이 '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사(史)'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해,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레이더스는 사상 유례 없는 인해전술로 무려 15명의 승리투수를 배출하면서 경기당 3.03점으로 막아냈고, 8월부터 현대·OB·롯데·LG를 차례로 초토화시킨 13연승을 발판삼아 정규리그 2위라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10승대 투수와 3할대 타자를 단 한 명씩 밖에 가지지 못한 전년도 꼴찌 팀을 정규리그 2위로 끌어올린 돌풍의 핵은, 물론 고비마다 등장해서 경기의 흐름을 잡아냈던 김현욱이었다. 이적 첫 해였던 그 해, 김현욱은 100이닝 가까이 출격하며 경기(9이닝)당 2.63점만을 내주는 대활약을 선보였다.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무명투수

 레이더스 시절의 김현욱.
ⓒ 쌍방울 레이더스 팬북
그 해, 레이더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숙적 돌핀스를 인수한 신생팀 현대 유니콘스에게 먼저 두 판을 이기고도 내리 세 판을 내주며 아쉽게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김현욱에게 진정한 돌풍의 해는 이듬해인 97년이었다. 96년을 통해 김성근 감독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김현욱은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공을 던졌다.

정교한 제구력, 그리고 싱커와 커브를 비롯한 다양한 구질도 강점이었지만 4사구 수가 삼진수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고, 그 해 157.1이닝을 던지면서 단 한 개의 폭투도 범하지 않았던 안정감이 최대의 무기였다.

투수와 타자 모두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지는 위기의 순간, 승패가 갈라서는 결정적인 갈림길에만 골라가며 등판하는 중간계투로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정교한 변화구는 그 해 타자들이 꼽은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이기도 했다.

하루 던지고 나흘 쉬는 선발투수에 비해, 매일 준비하고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하는 구원투수 쪽이 훨씬 체력적 부담을 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 해 그가 던졌던 157이닝은 웬만한 선발투수의 것으로도 적지 않은 양이었다. 그러나 그 해 그는 시즌 내내 페이스를 잃지 않았고, 1.88이라는 기록적인 평균자책점으로 20승과 6세이브, 8할의 승률로 투수 3관왕을 달성했다.

물론 그 해 70경기나 등판하느라 더 많은 기회를 가졌고, 때로는 때맞춰 터진 타선의 덕으로 공 몇 개 던지지 않고 챙길 수 있었던 구원승으로만 채운 20승의 가치가 선발투수들의 그것과 똑같이 비교될 수는 없다.

그리고 시즌 막바지, 이왕 고지 앞까지 제 힘으로 달려온 장한 일꾼을 위해 김성근 감독이 몇 번쯤 손쉬운 승리의 기회를 밀어준 것 역시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는 그 해 한국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과 대단한 수고를 보여준 선수로 손색이 없었다.

김현욱이 MVP 누리지 못한 까닭

김현욱이 20승과 투수 트리플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승률. 최근에는 승률 대신 탈삼진을 포함시킨다)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만들고도 97년 시즌 MVP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은 두 가지 불운 때문이었다.

첫째는, 한 시대를 풍미할 홈런타자 이승엽이 하필 그 해 홈런·타점·최다안타의 3관왕과 타격 2위에 오르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굳이 하나를 더 들자면 그의 팀 쌍방울은 낮도깨비처럼 나타나 상식을 뒤엎는 업적을 쌓아놓은 비인기팀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더스는 무명선수를 향한 괜스런 편견이나 질시를 무마할 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그 해 MVP는 투표에서 75표 중 50표를 얻은 이승엽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 해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마저 선발 17승을 기록한 이대진에게 빼앗긴 것은 더 안타까운 일이다.)

재발한 허리통증 때문에 포스트시즌 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그가 팀 동계훈련에서 빠진 데 이어 98년 시즌 초반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경박한 이들은 또다시 그를 구설에 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얄팍하게 눈을 속이는 구질로 한두 해를 버틴 '깜짝 활약'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3관왕 욕심에 무리하느라 선수생명을 갉아먹은 철부지라는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푹 쉬고 6월에야 그라운드에 돌아온 김현욱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뚝딱 13승을 거두며 모든 논쟁을 잠재워버렸다.

그러나 그 98년, IMF 와중에 그나마 빈약하던 재정마저 거덜나버린 구단은 결국 선수들을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최악의 지경에 몰리고 만다. 그 해, 레이더스는 1차 지명 신인인 조진호를 속절없이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에 내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돈이 되는 선수라면 누구든지 처분해야 했다.

그러나 어차피 주어진 재목으로 최선의 집을 짓는 것으로 업을 삼던 김성근 감독마저 절망했던 순간은 바로 김현욱이 매물로 등장한 때였다. 김현욱을 내준다는 것은, 벌떼작전이라는 고육책마저 기대볼 언덕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시, 레이더스에서 라이온즈로

 라이온즈 시절의 김현욱 선수.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구단은 감독의 강한 반발에도 김현욱을 팀의 간판타자 김기태와 묶어 20억원에 삼성 라이온즈에 팔아넘겼다. 대신 이계성과 양용모를 받아왔지만,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창단 첫 해부터 상대팀 투수들의 숱한 집중견제를 뚫고 홈런왕에 오르며 팀타선의 상징이 되었던, 그래서 아마도 뿌리째 뽑혀 어느 부잣집 정원으로 실려가는 노송의 기분이었을 김기태와는 또 다른 감회가 김현욱에게는 있었다. 그에게 그 트레이드는 3년 전 그를 재고품 처리하듯 털어냈던 고향팀 라이온즈로의 복귀였기 때문이다.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과의 안타까운 이별이었던 동시에, 운명에 대한 통쾌한 복수와도 같았던 금의환향. 3년 만에 돌아온 친정팀에서, 입단동기로서 같은 사이드암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출발선에서부터 저만큼 앞서나갔던 박충식은 부상 후유증으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역시 1차 지명으로 들어오면서 동기들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양준혁 역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고 없었다.

그러나 삼성 시절의 김현욱에 대해 이야기로만 전해 들으며 '쨍 하고 해뜰 날'을 꿈꾸었던 후배들은 김현욱을 깍듯이 선배로 모셨고, 김현욱은 곧 투수진의 '정신적 지주'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 낯설지 않은 환경 덕이었는지, 친절한 후배들 덕이었는지, 라이온즈로 복귀한 김현욱은 역시 중간계투로 투입되어 기복 없이 한 해 100이닝 가량을 던졌고, 꾸준한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제 몫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때문에 프로야구가 경기 일정마저 오락가락 피해 다니며 어느 해보다도 주목받지 못했던 그 해, 김현욱은 2.11의 평균자책점으로 10승 무패 2세이브를 기록하며 오봉옥 선수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100%라는 완벽한 승률로 승률왕 타이틀을 다시 한 번 거머쥐게 된다.

'강철 허리', 마운드에 입을 맞추다

 은퇴식에서 마운드에 입을 맞추는 김현욱 선수.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그러나 역시 문제는 부상이었다. 허리부상을 달고 살면서도 거의 매일 몸을 풀고 하루건너 하루씩 등판하는 피 말리는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후배들 사이에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불릴 만큼의 절제된 생활과 꾸준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의 마지막 해였던 2003년에 85이닝동안 2.00이라는 평균자책점으로 기복 없는 실력을 과시하는 와중에 악화되었던 무릎부상은 그의 아쉬운 선수생활을 서둘러 정리하게끔 만들었다. 디디고 비틀며 혼신의 힘을 모으는 상체를 지탱해온 무릎이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려온 것이다.

2005년 6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에서 김현욱은 시구를 한 뒤 후배들이 걸어준 꽃다발을 목에 건 채 마운드에 입을 맞추었다. 비록 그에게 선수로서의 영광을 안겨준 그 작고 초라한 전주구장은 아니었지만, 희망과 절망과 의지의 땀방울이 깊이 배어있는 대구 야구장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강철 허리'라고 불렀다. 경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강철처럼 튼튼히 이어 승리로 이끌어내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부실한 허리 때문에 그 자신,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포기할 뻔 했던 선수에게 붙은 별명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그렇게 부실한 몸으로 부실한 팀의 빈 곳들을 메워내느라 삭아버렸지만, 아낌없이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한 이가 마운드에 입 맞추며 흘리는 눈물은 보기 드문 감동의 순간이기도 했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려한 왕관은 독이 되곤 한다. 화려한 성공이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반드시 그만큼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0승과 3관왕이라는, 기대하지 못했던 업적과 그에 따라온 생각지 못한 비난과 수군거림에도 끝내 흔들리지 않고 배짱 좋게 결정구를 던져댔던 김현욱. 벌여놓은 일들이 늘어가며 수습할 걱정도 차츰 늘어가는 시절에 특히 떠오르는 선수의 이름이다.

덧붙이는 글 김은식 기자는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음식을 매개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우장춘, 씨앗의 힘 씨앗의 희망>(봄나무)을 펴냈고, CBS라디오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연재중인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도 <야구의 추억, 그의 141구는 아직 내 마음을 날고 있다>(뿌리와이파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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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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