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03.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모니터링을 위해 모인 지원자들과 미사코가 그녀의 해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해 나가며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가는 모습이다. 감독은 이 부분을 통해 '본다'는 것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실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영화에 들어가 보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한 시각장애인의 말이 바로 그런 부분들을 상징한다. 이 지점에 대해 가감 없이 비판하는 나카모리와 그의 무례한 태도에 참지 못한 미사코의 대립도 흥미롭다. 남자는 여자에게 이 일을 하기에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서로 각자의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며 공격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이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이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있다.
04.나카모리의 직업을 사진작가로 설정한 것 역시 흥미롭다. 어떤 직업보다 시각이 중요한 직업군이 사진작가인데, 그는 후천적으로 찾아온 시력 저하로 자신의 삶과 명예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도 있지만, 외부에서 가해지는 여러 가지 부정적 상황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한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업계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사랑했던 사람의 재혼 소식을 야속하게 날아온 청첩장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누군가 저질러놓은 토사물 위에 넘어지기도 하는, 과거에는 없던 이 모든 상황이 말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그를 더욱 강박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신이 집착했던 과거를 청산이라도 하는 듯 카메라를 버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의 대부분 장면에서 그 카메라는 그에게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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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버지가 죽은 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가출로 미사코는 다시 한번 삶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 역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들,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영상을 해설하면서 때로는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모자라기도 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는 이유와 연결된다.
06.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활용한 연출의 묘미를 제대로 끌어낸다. 아련한 듯하면서도 따뜻함이 담겨있는 그녀의 연출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와 함께 호흡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모니터링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상이 천천히 흘러나온다. 러닝타임동안 미사코와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함께 만든 영상. 함께 고민해 온 내용이 그 영상 속에 제대로 반영된 모습이 감동적이다. 스크린 위의 영화가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어 그 영화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 기분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위에 덧입혀지는 자막이 아니라 그 나라의 말을 원어 그대로 알아듣고 싶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왠지 이 작품 <빛나는>은 꼭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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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