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이번 부산영화제 기념품입니다. 가방에 붙이면 예뻐요.

▲ 부산영화제 이번 부산영화제 기념품입니다. 가방에 붙이면 예뻐요. ⓒ 강효원


인트로

제22회 부산영화제에 다녀왔다. 통산 네 번째 방문이었다. 지난 12일에 시작한 이번 부산영화제는 같은 달 21일, 실비아 창 감독의 <상애상친>(2017)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방문은 여느 때와 달랐다. 왜냐하면 네 번째 방문 만에 처음으로 부산영화제에 가는 이유를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영화제의 배경. 즉, 오명을 딛고 다시 명예를 회복한 드라마적인 배경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내가 왜 부산영화제에 갔는지", "앞으로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고, 이를 '공간', '사람', '이야기'로 구성해보았다.

혹시나 영화제 기사이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뒤로 가기' 버튼을 꾹 누르길. 여기엔 영화제의 영화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는 없다.

[하나] 공간: 마성의 섬에서 벌어지는 마법 축제

광안리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불꽃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 광안리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불꽃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 강효원


부산은 미래도시의 화려함과 사람 사는 구수한 냄새가 함께하는 마법적 공간이다. 부산에는 구와 신, 동양과 서양, 사람과 기술이 공존한다. 부산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충돌로 만들어졌다. 마치 <아키라>(1988)의 도쿄, <블레이드 러너>(1982)의 LA같다. 이는 부산의 지정학적 특징에서 발현한 듯하다. 부산은 바다와 육지가 함께 하는 도시이기에 양극성을 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양극이 만난다는 것은 이질감의 혼성이다. 허지웅이 자신의 저서 <망령의 기억>에서 밝히듯, 양극이 혼재된 하나의 세상은 불온한 기운을 뿜어낸다. 허지웅은 이런 종류의 세상을 섬이라 부른다. 부산은 육지의 도시지만, 그 양극의 불온함은 부산을 양쪽에 대륙을 둔 섬과 같이 보이게 한다. 그 대륙은 현재와 과거, 혹은 사람과 기술이며, 그 사이에 위치한 부산은 마성의 섬이다.

이 섬에선 러시아 영화감독, 아이젠슈타인의 충돌 몽타주 이론이 완벽히 적용된다. 부산에서는 마치 한자의 생성원리처럼 관계없는 두 개의 의미가 합쳐져 전혀 새로운 매력이 탄생한다. 부산의 마법은 이 의외성이 다분한 매력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건 독보적인 매력, 아우라(aura)가 아니다. 부산 외의 항구도시들에도 동일한 마법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즉, 부산영화제에 가는 이유를 부산의 공간적 매력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년에 한 번, 부산에 아우라가 생기는 기간이 있다. 이 기간 동안 부산의 마성이 극대화 된다. 바로 부산영화제의 10일이다.

부산영화제의 정식 명칭은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부산영화제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 지원해 아시아 영화의 비전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1996년에 시작된 국내 최초의 국제영화제다. 부산은 지금까지 총 22회 개최한 이 영화제를 통해 국내 영상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영화제로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 결과 부산영화제는 도시의 핵심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부산영화제는 외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는 여타 다른 축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부스(티켓, 상품, 이벤트 등)가 설치되고, 곳곳에 배너가 휘날리며, 가끔씩 가수들의 공연이 있다. 물론 서포트 기업이 어디냐에 따라 페스티벌의 이미지가 크게 바뀌곤 하는데, 이번 제 22회 부산영화제는 '아티스트리'라는 화장품 회사로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하긴 했다. 그러나 이 모든 흔한 축제의 광경을 특별하게 하는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일까? 바로 영화다. 마법적인 공간인 부산에 환상 재현적인 예술인 영화가 함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산이라는 마성의 섬에 마법이 걸리는 것이다. 이 이중의 마법은 전염성이 있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마저도 탈일상을 살아가게 하며, 영화관에서 보던 환상을 매 순간 공기처럼 느끼게 한다.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유리정원>(2017)과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2017) <죄 많은 소녀>(2017)를 보았다. 이 영화들은 모두 괜찮은 작품들이었다. 모두 꿈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가도 그 여운이 이상하리만큼 길게 남았는데, 아마 부산영화제라는 공간의 힘이었던 것 같다. 부산영화제에선 모든 공간이 영화적 환상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내가 매년 부산에 가는 첫 번째 이유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이 생각난다. 달마는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태양을 역행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상을 역행하여 탈일상을 느끼기 위해 부산에 간다.

[둘] 사람: 영화라는 교집합

제22회 부산영화제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 제22회 부산영화제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 강효원


부산영화제는 마법의 축제라는 매력이 있으나,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이 또한 강력한 것이다. 바로 사람이다. 영화제는 영화의 전시장, 행사, 축제이기에 앞서, 사람들이 모이는 무형의 공간이다. 거기엔 사람들이 있고, 숨을 쉬며, 행동하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피사체는 영상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인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시청에서의 키스, 1950>는 키스하는 두 남녀의 모습으로 강력한 생동감을 가진다. 만약 거기에 사람이 없었다면, 그 사진은 단순한 빛의 조합을 필름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산영화제라는 영상에 사람이 들어오게 된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거기엔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흐른다.

나는 이번 제 22회 부산영화제를 네 명의 지인들과 함께 했다. 우리는 각자의 스트레스를 버티다가 부산에서 만났다. 그리고 부산의 모든 순간에 감탄을 했다. 시원한 바다 바람,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 모래사장의 바스러지는 푹신함, 올해의 부산영화제 영화들. 우리는 이번 부산 영화제에서 새로운 추억을 공유했다.

그러나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만이 부산영화제를 가는 이유는 아니다. 영화제는 혼자 가도 좋은 축제이다. 실제로 나 또한 혼자 간 적이 있으니까. 애초에 영화제란 무엇인가? 영화제는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하이퍼링크다. 다시 말해, 영화라는 교집합으로 모두가 엮이는 시공간이 영화제이기에 혼자 가도 무방하다. 부산영화제에는 요즘 뜨거운 영화계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유리정원 선남선녀들이 있네요

▲ 유리정원 선남선녀들이 있네요 ⓒ 강효원


이번 부산영화제에선 <유리정원>(2017)의 발표회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스크린만에서만 보던 문근영, 김태훈 등의 배우들을 실제로 보았다. 신기했다. 또한 신수원 감독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약 6년 전, 처음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에는 돼지국밥집에서 해장하는 오다기리 조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셀러브리티들이 심심찮게 출몰하는 곳이 바로 부산영화제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처에 포켓몬처럼 돌아다니는 걸 보다 보면 혼자 있다는 느낌이 사라진다. 물론 그들에게 말을 걸 수는 없겠지만, TV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내 앞에서 걸어다니고, 혹은 돼지국밥을 먹는 것을 보면 세상이 안방 TV로 보이는 것 같다. 이 느낌은 매우 아늑하다.

이처럼 영화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는 이러한 가치들을 찾기 위해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셋] 이야기: 고난과 부활

문재인 대통령 현직 대통령 최초로 부산영화제에 방문하셨네요. 우연히 그를 만났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현직 대통령 최초로 부산영화제에 방문하셨네요. 우연히 그를 만났습니다. ⓒ 강효원


영화제는 그 성격상 평소에 개봉하지 않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인 영화, 혹은 반정부적인 영화의 창구 역할을 한다. 영화적 소수들의 망명지가 바로 영화제인 셈이다. 그들은 부산영화제에서 우리나라의 김구, 프랑스의 드골,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처럼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한다.

하지만 3년 전, <다이빙벨>(2014)에서 시작된 이슈는 부산영화제를 망명지가 아닌 점령지로 만들어 버렸고, 급기야 부산영화제라는 마법을 연금술로 격하시켰다. 연금술은 납으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사고 방식을 가진다. 연금술이 된 부산영화제는 허무했다. 실제로 작년 21회 부산영화제는 보이콧의 영향으로 관람객 수가 급감했었다. 이건 부산영화제의 중대한 위기이자 고난이었다.

그러나 고난은 끝나기 마련이다. 시대가 흐르며 부산영화제는 과거의 불명예를 벗고 부활하고 있었다. 물론 올해는 19만2991명의 관람객으로 2015년의 22만7377명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대비 17%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은 내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람객 숫자 외에도 또 다른 부활의 지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최초로 부산영화제에 방문한 것이다.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우연히 문재인 대통령을 보게 되었는데, 영화제라는 공간에 맞는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의 전당에서 "우리 정부는 부산영화제의 과거 위상을 되살리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부산영화제를) 지원하되 운영은 영화인에게 맡기고 간섭하지 않겠다."는 기본원칙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신호를 쏘아 올렸다. 물론, 중대한 현안을 앞두고 부산에 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실베스터 스텔론이 각본을 쓰고 주연을 한 <록키, 1976>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고난과 노력', 그리고 '성장과 부활'의 롤러코스터다. 여기서 '성장 및 부활'의 플롯은 '고난과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발현되는 강력한 킬링파트다.

이번 제 22회 부산영화제는 영화제 역사의 킬링파트였다. 부산영화제를 록키에 대입해보자. 최후의 결전에서 부산영화제는 강력한 적폐의 공격을 받는다. 부산영화제는 반격을 위해 계속해서 버틴다. 그러다 상대방이 힘이 떨어진 제 22 라운드에서 결정적 한 방을 날리고 승리한다.

아, 통쾌하다. <록키>(1976)의 방점을 찍은 명대사. "YO! ADRIAN!"이 들리는 것 같다.

이렇듯 부산영화제에는 영화가 있지만, 부산영화제 자체가 매력적인 네러티브가 있는 영화이다. 이는 22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최대의 영화제라는 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영화제는 축제이지만,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스토리가 있다.

<라라랜드>(2016)의 라이언 고슬링의 잊혀진 대사 "I am the phoenix, rising from the ash"가 떠오른다. 부산영화제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같은 생명력을 지녔다. 이번 영화제의 재기가 바로 그 예이다. 나는 앞으로도 성장과 부활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부산에 갈 예정이다.

아웃트로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 뉴 커런츠 시상을 했네요

▲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 뉴 커런츠 시상을 했네요. ⓒ 강효원


나는 위의 세 가지 이유로 부산영화제에 다녀왔다. 이 이유들 중 하나에라도 매력을 느낀다면 부산영화제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에라도 의심이 든다면, 그 또한 부산영화제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올해는 끝이 났으니 내년을 기약해야 하지만.

십중팔구는 행복한 경험을 할 것이고, 내년 부산영화제 기간을 형광펜으로 체크할 것이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부산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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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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