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빅픽처스
05.한편 '언더그라운드'라는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문단에 입문한 지훈은 변변한 후속작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훈은 이창대(김세동 분)라는 문단의 거목의 표절을 비난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다. 함께 지내며 의탁하던 여자친구의 집에서도 짐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훈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인 유리정원 속에서 기이한 실험을 이어가는 재연의 모습에서 소설의 소재를 얻고자 주위를 배회한다.
재연의 행동에는 분명히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녀의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문제들 역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란 듯이 문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최대 과제다. 물론 성공과 함께 말이다. 지훈은 중국 문인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창대의 멱살을 잡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훈 역시 재연의 삶을 동의 없이 엿보고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지훈과 창대의 삶은 유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재연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삶을 멋대로 이용할 권리가 타인(지훈)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06.식물인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재연은 "식물은 가지를 뻗으며 다른 가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자란대. 인간은 그렇지 않지"라고 말한다. 재연이 죽은 교수를 데려와 식물인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유는 자신을 제대로 대하지 않았던 데 대한 복수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연은 이로 인해 사랑도 잃고 연구도 잃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교수가 나무인간이 되고 나면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엔 재연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른 결과물에만 환호했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감도 담겨 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할 당시 사람들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재연의 연구에는 비난이 섞인 눈길을 보내고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수희에게는 환호했다. 수희의 연구 역시 재연의 것임을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재연에게는 이에 대한 분노가 있었을 것이다. 이는 교수를 활용해 연구를 완성시키겠다는 의지로 발현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순수함의 회복이다. 육체적 욕망만이 가득한 사회에서 재연은 여성성을 자신의 성공에 활용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연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외진 숲속의 유리정원으로 향한 이유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뜻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스스로 나무의 일부가 되는 것 또한 말이다. 재연은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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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유리정원>은 밖에서 볼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그린다. 영화의 타이틀인 '유리정원' 역시 그저 화면에 등장하는 재연의 공간만을 특정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층을 나누는 경계를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든 것을 감춘 채 자신의 사랑과 일을 증명하고자 했던 재연도 그렇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자체도 그 의미를 같이한다. <유리정원>도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지점의 이야기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오는 2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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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