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든 '왕의 남자.' 하지만 여의도에선 그를 킹 메이커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그가 지난 7·28 재보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자 'MB 정권'의 한 축이라고까지 치켜세웁니다. 1990년 3당 야합 뒤 YS를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 김윤환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학생운동으로 시작해 교사와 재야운동을 하면서 다섯 번의 감옥살이를 하고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사람. 1990년 김문수 등과 민중당을 창당했으나 6년 뒤 15대 총선을 앞두고 YS의 부름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해 못내 그리던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욕망의 정치인, 이재오 의원(특임장관)입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겠다며 진보운동을 하다 우파로 색깔을 바꾼 그는 대표적인 '변절'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런 그를 연상케 하는 정치영화가 있으니 미국 루이지애나의 주지사에서 상원의원으로, 다시 대통령을 꿈꾸다 암살당한 휴이 롱을 모델로 한 실화 <올 더 킹즈 맨>(2006년)입니다.

미국의 실존 정치인 휴이 롱을 모델로 한 정치영화

영화는 루이지애나의 '왕의 남자'였던 버든의 회고로 시작합니다. 메이슨 시티의 젊은 재정관 월리 스탁(숀 펜 분)은 학교건설공사의 입찰비리를 폭로하나 견고한 토호세력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붕괴해 아이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지방신문 기자 잭 버든(주드 로 분)이 스탁에 관한 기사를 써 일약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오릅니다.

 유력 후보 캠프의 모략으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가 짙어지던 스탁은 버든의 조언을 받아들여 선거 전략을 전면 수정해 판세를 뒤집기 시작한다.

유력 후보 캠프의 모략으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가 짙어지던 스탁은 버든의 조언을 받아들여 선거 전략을 전면 수정해 판세를 뒤집기 시작한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주)


이 사건을 계기로 스탁은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어 선거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승리하고, 버든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스탁의 '부하'가 됩니다. 주지사 스탁은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각종 공공서비스 정책을 추진해 나가면서 농민들을 축으로 지지기반을 탄탄히 다집니다.

그러나 석유회사 등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반감을 사 주 의회로부터 탄핵을 당할 위기에 처 하며 위기감은 고조됩니다. 스탁은 탄핵파의 좌장격인 판사 저지 어윈(안소니 홉킨스 분)을 협박하는 등 정적들을 대상으로 사찰과 협박을 하면서 몰락의 길을 자초하기에 이릅니다.

영화는 대공황 당시 휴이 롱의 추천에 의해 주립대학 교수에 임명되었던 로버트 워런의 소설을 원작으로 1949년에 상영된 영화 <모두가 왕의 부하들>(로버트 로센 감독)를 리메이크했습니다. 둘 다 휴이 롱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초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로센 감독의 작품이 권력욕을 향해 발버둥 치다 몰락하는 스탁의 욕망과 계략과 변질에 방점을 찍었다면, 리메이크작은 버든 등 '왕의 부하들'의 욕망과 몰락에도 방점을 찍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권력에 대한 욕망과 광기 끝에 무너지는 정치인의 초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광기의 끝자락을 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의 두 얼굴을 가장 현실감 있게 비판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올 더 킹즈 맨>. 카메라는 루이지애나 주의 기득권 세력과 구조적 모순의 개혁을 목표로 정치에 입문한 스탁이 어떻게 붕괴해 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주지사 스탁이 아이스발레를 하는 무희를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술수와 피드백이 되면서 그의 몰락을 재촉한다.

주지사 스탁이 아이스발레를 하는 무희를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술수와 피드백이 되면서 그의 몰락을 재촉한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주)


스탁은 자신의 선거공약이었던 농민들에 대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혜택, 낙후지역의 도로와 교량 건설 등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정책을 추진합니다. 소요 예산은 대부분 석유회사 등 기득권 세력의 주머니를 털어서 충당합니다. 하지만 스탁의 이러한 정책이 정치적 이상과 신념에 의해 추동되거나 설계된 것은 아닙니다. 권력의 시작이자 끝인 백악관을 향한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휴이 롱도 무상교육은 물론 소득세와 상속세를 인상하고 더 나아가 부유세를 신설하고 사원지주제까지 감행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쌓고 이를 통해 상원의원이 됩니다. 그 뒤 자신의 '부하'를 주지사에 당선시켜 루이지애나를 원격 지배하는 '왕'이 되면서 워싱턴에서 대통령의 꿈을 그려 갑니다.

무릇 모든 정치에는 상대가 있는 법. 스탁의 선전포고에 기득권 세력도 임금비리 문제를 빌미로 반격을 가합니다. 문제는 스탁의 대응방식입니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광범위한 사찰과 함께 협박과 회유 등 정치공작을 서슴지 않습니다. 버든의 뒷조사 끝에 자살하는 어윈 판사는 스탁의 정치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정면 돌파도 합니다. 주지사 선거에서 '부자를 처단하자'며 탁월한 선동으로 표심을 파고들었던 것처럼, 자신의 지지기반인 농민들에게 정적들에 대한 적개심을 심으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갑니다. 그 뒤편에서는 야합과 회유로 넘어 온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나눠먹기를 하고, 결국 탄핵은 부결되고 스탁은 승리에 취합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암살이었으니, 권력의 힘에 중독되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 '독단의 정치'가 낳은 파멸의 결과입니다. 아군 아니면 적군만 있을 뿐인 '증오의 정치'를 만들고 그 위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 추락한 스탁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몰락의 정치의 또 다른 축에는 '왕의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왕 그리고 '왕의 부하들'

주지사 선거 당시 패배가 예고된 스탁에게 대반전의 선거 전략을 제공한 이는 버든입니다. 스탁이 암살 당하기 직전까지 그는 말 그대로 '왕의 남자'였습니다. 그는 부지사를 비롯한 그밖의 참모들에 비해 유일하게 깨끗하며, 현장을 발로 뜁니다. 스탁의 정치를 디자인하며 조언도 하지만, 결코 반기를 들지 않습니다. 주지사가 된 스탁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얼굴의 사나이로 타락해 가도 저지하지 않습니다. 

 주의회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이 부결된 뒤 승리에 취해 환호하는 스탁을 향해 총성이 울리고 경호원이 쏜 총에 암살자 역시 숨진다.

주의회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이 부결된 뒤 승리에 취해 환호하는 스탁을 향해 총성이 울리고 경호원이 쏜 총에 암살자 역시 숨진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주)


오히려 충실하게 '왕의 부하'가 되어 자신의 대부인 어윈의 감춰진 비밀을 캐내어 그를 죽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어윈이 자신의 생부임을 알고서도 스탁의 곁을 지킵니다. 뿐만 아니라 옛 연인 앤이 스탁의 정부가 되어 권력의 창부로 전락해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마치 스탁이 휘두르는 권력의 한 축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이.

오히려 앤의 오빠이자 친구 아담을 스탁이 회심의 카드로 준비하는 주립시민병원의 원장으로 포섭하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아담은 유능한 의사이자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개혁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담도 버든을 중개자로 스탁과 거래한 끝에 병원장을 맡습니다. '왕의 부하'는 그렇게 세포분열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버든이 스탁을 통해 그리려는 정치적 이상은 영화에서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유혹이라는 실루엣 속에서 스탁을 통해 그 힘을 만끽하며 스탁과 공생합니다. 그리고 스탁 역시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꿰뚫고 버든을 비롯한 '왕의 부하들'을 활용합니다. 그렇게 왕과 부하들은 권력을 매개로 공생하다 공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그 와중에 스탁의 비서실장이자 정부였던 새디는 왕의 무분별한 바람기에 독기를 품고 부지사 티니 등과 모종의 정치적 음모를 꾸밉니다. 하지만 영화는 스탁이 주의회에서 암살당하는 장면으로 끝날 뿐, 배후세력에 대해서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얼굴을 드러낸 암살자의 충격적인 모습과 함께.

돌아온 '왕의 남자', 그의 욕망의 끝자락은?

<올 더 킹즈 맨>에서 왕을 '대통령'으로 바꾼 영화가 있습니다. 닉슨의 사퇴를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을 스릴러물보다 더 긴박하게 직조해 낸 걸작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또는 대통령의 음모)>입니다. 두 영화 모두 최고 권력을 향한 정치인의 욕망과 파멸을 그렸는데, 공통점은 왕의 부하만 있지 '국민의 부하'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별나게 친서민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민의 부하는 쉬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전 노릇만 하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왕의 남자' 이재오 의원입니다. 그는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서민들을 위해 일하고, 이를 서민들이 체감하도록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에는 청년실업문제와 관련해 "중소기업에서 1, 2년 일하게 한 뒤 대기업 입사자격을 줘야 한다", "재수생들을 공장과 농촌에서 일하게 하고 그 성적으로 대학에 가게 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중소기업을 낙오자 집단으로 보고, 청년들을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쯤으로 치부하며 '반서민' 속내를 드러냈지만, 사실 그의 발언은 뿌리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청년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더 많이 도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눈높이가 턱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한반도대운하 공약을 띄우기 위해 4박5일간 대운하 길을 따라 불철주야 자전거 페달을 돌렸습니다. 왕과 부하는 그렇게 공생해 왔고, 이명박 정부에게는 왕의 부하만 있습니다. '국민의 부하'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그가 권력지형과 국정정책의 키워드로 한 손에 세대교체를 다른 한 손에 친서민 생활정치를 든 채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금 왕의 남자가 되기 위해 질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은 하수상한 법.

대법관 이회창을 신한국당 후보로 확정시킨 킹 메이커 김윤환이 16대 총선에서 이회창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한 뒤 그의 아호 허주대로 '빈 배'가 되어 이승을 하직한 것처럼, 한국 정치판은 언제나 드라마틱한 토사구팽을 즐깁니다. 이재오 의원의 권력에 대한 욕망의 끝자락은 어떤 모습일까요?

 7.28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가 27일 유세차량에 올라 막판 총력유세를 벌이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7.28 재보선 당시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가 7월 27일 유세차량에 올라 막판 총력유세를 벌이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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