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MB의 추억'

다큐멘터리 영화 'MB의 추억' ⓒ B2E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통령을 향해 신랄한 질타를 쏟아 붓습니다. 또 누군가는 국민 알기를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위정자를 빗대 시원시원하게 정곡을 짚어가며 열변을 토합니다. 대체 이들은 누굴까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일까요? <이슈 털어주는 남자>의 김종배 시사평론가일까요? 그도 아니면 정봉주 전 의원의 '옥중서신'일까요?

아닙니다. 5년 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유세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말입니다. 헌데, 5년 전에 무심코 내뱉었던 그 말들이 5년 뒤 부메랑이 되어 MB의 발등을 콕, 콕 찍어대고 있습니다. 역지사지의 아이러니와 교훈을 깨알같이 보여주는 레알 다큐멘터리 'MB의 추억'(10월 18일 개봉)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MB가 지난 대선에서 어떤 말들로 국민을 현혹했고, 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 정치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트루맛쇼>를 연출했던 김재환 감독은 영화의 기획·각본·주연은 MB라고 못 박았습니다. 'MB의 관점에서 유권자 바라보기'를 부제로 정했습니다. 그리고는 5년 전 MB의 약속을 꼼꼼히 정산하겠다면서 본 영화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코믹 호러 정산 다큐멘터리로 명명합니다. 왜?

우리는 5년 전 국민성공시대에 승선했더랬습니다

 5년 전 대선에서 선거유세에 나선 MB가 시민들을 향해 ‘사랑해요’ 하트 모양을 만들며 인사하고 있다.

5년 전 대선에서 선거유세에 나선 MB가 시민들을 향해 ‘사랑해요’ 하트 모양을 만들며 인사하고 있다. ⓒ 스튜디오 느림보


'우리가 (국민들에게)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히틀러 신화를 창조한 독일 나치의 선전부장관 괴벨스가 했던 말입니다. 김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 말을 반복해서 자막으로 띄웁니다. 그만큼 이 대목은 의미심장합니다. 마치 1930년대에 히틀러와 괴벨스가 있었다면 2007년에는 MB와 유인촌이 있었다는 듯이. 이윽고 카메라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MB를 추적하면서, 5년 전 MB에게 5년 전의 우리가 어떻게 '낚였는지',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주지하다시피 2007년 대선의 열쇳말은 '경제'입니다. 국민은 하얀 눈밭에서 배우 김정은이 손나발을 만들어 간절히 외치던 '부자 되세요~'에 열광했습니다. MB는 이 욕망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슬로건 '경제대통령'은 적중합니다. 환경미화원, 공장노동자, 시장판 장사, 대학생, 회사원, 현대건설 사장 등 안 해 본 것 없는 데다 성공까지 했다는 MB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끌고 갈 둘도 없는 적임자로 보입니다.

유인촌은 이 점을 치고 나갑니다. 누가 7% 성장과 누가 4만 달러 시대와 누가 7대 강국을 만들 수 있느냐고 설파하고, 거리 시민들은 "이명박"을 연호하고 합창합니다. MB는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며 화답합니다. 지금이야 MB의 7.4.7 공약을 '칠 수 있는 사기는 다 친다'라는 말로 회자되듯이 가당치도 않은 '사기'였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5년 전인 그때 그 시간에는 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일찍이 정치 선전선동의 달인 괴벨스는 "거짓말도 되풀이하면 진실이 되고, 대중들은 결국 믿게 된다"고 통찰한 바 있습니다. 'MB의 추억'은 대중의 욕망, 즉 부자와 성공을 향한 욕망을 가장 단순하게 가공하고 이 메시지를 집요하게 끝없이 반복하는 MB의 선거 캠페인 장면을 통해 괴벨스가 말했던 그 전략이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매끈하게 뽑아냅니다.

유인촌은 단언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영웅이 필요한 시절, 그분은 누구인가"라고. MB는 화답합니다. "국민을 위해서, 서민을 위해서만 일하겠노라"고. 모름지기 말보다는 행동이 실한 법. MB는 칼집에서 장검을 꺼내는 '사즉생'의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구국의 영웅이 되고자 합니다. 이렇게 MB와 그의 사람들은 분출하고 싶은 대중의 욕망을 쉼 없이 건드리고, 자극하고, 흥분시킨 후 '국민성공시대'에 승선시켰더랬습니다.

MB의 친서민에 날개를 달아주며 대박을 터트린 것은 낙원동 국밥집 광고입니다. 지금은 그 할머니가 '가짜'라는 걸 다 압니다. 영화는 MB가 국밥집에서 질의응답을 하며 연기수업을 받는 장면과 함께 CF 감독에게 칭찬까지 받는 타고난 연기자였음을 최초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미지 정치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당시 TV로 보도되지 못한 미디어의 '이미지 편집' 사례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태안 기름 유출사건 현장을 방문한 MB는 어민의 격노에 부딪히자 "흥분하지 마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허둥대고, 그의 사람들은 기자의 접근을 차단하기에 급급합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고 책임자 삼성중공업은 뒷짐만 지고 있고, 전체 피해보상은 6.7%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전방부대 시찰 중 군인들이 예정에 없이 군가 '전선을 간다'를 부르자 밥 먹다 얼결에 일어난 MB는 굳은 표정으로 손만 흔들어댑니다. 눈치 없는 그의 남자들은 신나게 따라 부르고, 나경원만 MB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이미지 정치 뒤에 감춰진 '군 면제' 정권의 실상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MB "정치하고 살림살이 잘못하면 정권 교체해야 합니다"

 MB가 목말을 탄 채 두 손으로 V자를 만들어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의 장담대로 국민들은 낚였다.

MB가 목말을 탄 채 두 손으로 V자를 만들어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의 장담대로 국민들은 낚였다. ⓒ 스튜디오 느림보


내가 보여준 것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던 MB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국민들은 그의 약속처럼 국민 성공시대를 만끽했을까요? 영화는 당선 전후 MB의 말을 교차 편집하는 가운데 그것이 '사기'였다는 것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심정으로 비춥니다.

MB는 국정을 개인회사처럼 경영하겠다는 듯이 정부 이름을 이명박 정부로 붙입니다. 이어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자리 300만 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합니다. 그를 위해 7.4.7과 함께 재벌들에게 무소불위 시장권력을 넘겨주는 '기업 프렌들리' 시대를 선포합니다. 여기에 '청계천 신화'를 꺼내 들며 "환경에 반하는 일은 절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대전제"라면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MB는 재임 중 정국이 중대 기로를 맞거나 위기에 처할 때면 청계천을 꺼내 들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이 '청계천 프레임'은 점차 '소통불능의 5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런 소통 단절은 MB 5년 동안 생계 단절로까지 확산되고,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집니다.

그럼에도 MB는 끄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혹독합니다. 3년간 22조 투입. 매년 관리비 6000억 투입. 앞으로 20조 투가 투입. 국민혈세 말아먹는 블랙홀로 전락한 4대강의 결산서입니다. 애초 휴지조각이 된 7.4.7은 한국사회를 실업률, 물가, 나랏빚, 자살률만 치솟은 양극화 사회로 전락시킵니다. 대신 삼성·현대의 자산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서도록 재벌들의 배를 한껏 불려줍니다.

5년 전 MB와 5년 후 대학가를 넘나든 반값등록금 장면은 이를 극명하게 대비합니다. 5년 전 그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고액 등록금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대학생은 해마다 200~300명에 이릅니다. 반면 그는 14년간 국·공립대 등록금을 무상으로 할 수 있는 규모의 금액인 22조 원을 4대강 사업에 쏟아 부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저번에 한 번 속으셨는데 이번에 또 속으시겠습니까?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놈입니다. 그러나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입니다." 

전여옥 전 의원이 5년 전 MB 지원유세에서 했던 말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건재한 MB 힘의 원천이 어딜까, 카메라는 찾아 나섭니다. '쪼다' 안 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금과옥조와 같은 이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었으니, 그에게 무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남동쪽' 사람들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말합니다. 다음 대통령도 "박근혜!"라고. 상가마다 임대와 세일이 덕지덕지 나붙어도 결코 우리는 남일 수 없습니다.

괴벨스는 일찌감치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고 간파했습니다. 집권 5년이 누더기가 됐음에도 요지부동인 MB는 이를 증명합니다. 헌데, 그런 MB도 미처 몰랐던 대목이 있습니다. 마치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도망치게 했던 것처럼, 5년 전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되살아나 박근혜 후보에게 깊숙이 백태클을 겁니다. 그가 5년 전 실토한 '고해성사' 한 토막입니다.

"여러분,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정치를 잘못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국민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며는, 정권을 바꿔야되지 않겠습니까? 바꿔야 됩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국민에게 신의를 잃으면 물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꾸고 뭘 바꿔서 또 잘 해보겠다고 나왔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젊음이 정치를 굴려야 한다

 쥐 탈을 쓴 채 포클레인을 운전한 5년 동안 한국사회는 어디에 와 있을까.

쥐 탈을 쓴 채 포클레인을 운전한 5년 동안 한국사회는 어디에 와 있을까. ⓒ 스튜디오 느림보


지난 대선의 화두가 '문제는 경제'였다면, 2012년 대선은 '문제는 민주주의'입니다. MB 집권 5년이 남긴 것은 '골병든 (민주주의) 5년'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군사정권 시절로 퇴보시킨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전면적으로 대수술해야 합니다. 영화가 5년 전 공포스러우리만치 뜨거운 환호와 열광으로 구세주인양 그를 '탐'하며, 한 몫 거들었던 유권자의 책임을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성공신화의 주역이었던 MB가 우리 삶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 놓을지 진정 몰랐다고. 이건희 같은 1%는 더 큰 부자가 되고, 나머지 99%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줄. 왜 멀쩡하던 가게가 망하고, 왜 청년들이 생떼같은 목숨을 뚝, 뚝 끊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고. 이와 관련 김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정치혐오증을 부추기려는 게 아니라, 혐오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혐오하니까 막아내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지금까지 2012년 유권자의 관점에서 2007년 후보시절의 MB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MB 관점에서 유권자의 모습도 바라봤습니다. 시간을 넘나드는 바라보기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청합니다. 제 아무리 미디어 정치와 미디어가 우리들을 쉽게 조작하고, 우리를 현혹하려해도 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진 말자고. 민주와 복지로 화사하게 변신한 MB '시즌 2'가 우리의 탐욕과 욕망을 건드리며 유혹하더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그리고 영화는 개그맨 김제동이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말한 촌철살인으로 갈음하며 그 유혹의 속삭임을 단호히 잘라내자고 권합니다.

"20대 투표율이 50%가 되면 반값등록금이 될 수 있고, 100%가 되면 무상으로 다닐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되면 어느 당이든 여러분한테 표를 많이 받은 당은 계속 그 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표를 받지 못한 당은 늘 여기 와서 여러분한테 구걸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정치가 젊음을 굴릴 것이 아니라 젊음이 정치를 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까?"

MB의 추억 박근혜 4대강 7.4.7 공약 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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