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 삼국연합은 26년 전의 6월 항쟁을 생각한다. 우리 손에 쥐어진 투표용지는 단지 한 장의 종이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총칼에 대항해 쓰러졌어도 정신만은 스러지지 않고 불타올랐던 피의 대가였고, 어떤 국가 권력이라도 국민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명이었다."

민주노총의 투쟁 선언문일까요? 아닙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연대 성명서도 아닙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철도민영화반대 집회에 참가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쌍화차 코코아'(쌍코), '소울드레서', '화장발' 세 카페의 연합체인 '삼국연합'이 지난 7월 발표한 '2013년, 또 한 번의 아픈 6월을 지나 보내며'라는 제목의 성명서 일부입니다.

 영국국철의 민영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 포스터.

영국국철의 민영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 포스터. ⓒ 패럴랙스 픽쳐

이들이 '핫팩과 초코파이 연대'를 기치로 내걸고 서울광장에 동참한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이후 5년여 만입니다. 각각 성형수술, 패션, 화장품 등 취미생활을 나누기 위해 모인 20~30대 아리따운 여성회원들을 이처럼 분노케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공기업 민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의 유령이 한국사회에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영화로 철도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쫓겨나 비정규직이 되고, 청춘을 바친 일터는 직장폐쇄로 실종되고, <모던 타임즈>의 찰리처럼 이윤 극대화의 도구가 될 것을 강요받고, 건강한 공동체는 실업과 사회적 양극화로 파괴되는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현실을 예감했기에, '삼국연합' 회원들은 몸서리를 친 것입니다.

대처리즘은 효율성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대처의 후계자를 자임한 존 메이저 전 수상은 1995년 영국국철(British Rail)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결과는? 공기업 민영화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며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문제는 영국에서 이미 재앙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는 철도 민영화가 박근혜 정부에 의해 20여년 만에 코레일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대처를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이었던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일갈했던 거장 켄 로치 감독이 철도 민영화가 낳은 파멸적인 결과를 건조하게 그린 영화 <네비게이터>(2001년)는 민영화된 한국철도의 앞날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영국국철에서 17년간 일하다가 해고당한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죽기 전 쓴 대본을 기초로 제작됐습니다. 19세기 철로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네비게이터'(항해자)가 날것 그대로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입니다.

평온한 철도분소에 민영화가 들이닥치고... 네 사람만 남다

1995년 영국 북동부 요크셔. 출근하던 철도노동자들이 난데없이 분소위에 설치된 '이스트 미들랜즈 인프라'를 두고 설왕설래합니다. 분소소장 잭슨은 조회에서 오늘부터 철도청 소속이 아니라 민영회사 '인프라'사 소속이고, 이제는 철도청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하며, 분소원 중 일부는 경쟁 회사 소속이니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떠나야 하며, 연간 사망자가 2명을 넘어서는 안 되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발표하자 노동자들은 곧 닥쳐 올 험난한 미래도 모른 채 왁자지껄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합니다.

 분소소장인 잭슨이 아침조회에서 철도노동자들에게 민영화 진행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민영화의 삼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분소소장인 잭슨이 아침조회에서 철도노동자들에게 민영화 진행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민영화의 삼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 패럴랙스 픽쳐


각기 다른 회사로 분리되거나 명예퇴직 신청서를 쓰고 하나 둘 떠나는 가운데 민영화는 분소 청소노동자 잭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회사는 잭에게 청소를 외주 하청으로 돌리겠다며 일을 하려면 하청업체에 입찰을 하고, 6개월 뒤 재입찰해야 한다고 통보합니다. 잭은 청소도구조차도 하청업체에서 직접 사서 일해야 한다며 분개합니다. 하지만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은 잭을 놀리기만 할 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잭은 그런 동료들을 향해 쌍시옷 소리를 퍼붓습니다.

민영화의 다음 수순은 자회사로의 분할입니다. 분소 간판은 순식간에 '길크리스트 엔지니어링'으로 교체되고 이어 퇴근할 때도 타임카드를 찍으라는 공고문이 나붙습니다. 퇴근 때는 타임카드를 찍지 않는다는 노조와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깬 것입니다. 분회장 제리는 노동자 통제와 노조 무력화 의도를 모른 채 협상을 통해 일요일에만 찍지 않기로 대폭 양보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회사는 잭슨에게 과거 노조와의 합의사항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며 철회시키지 못할 경우 사직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와중에 열차가 탈선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하고 제리 일행은 현장에 급파됩니다. 현장에서 일행은 얼마 전 분소에서 일하다 명예퇴직을 한 렌을 만납니다. 25년간 철도노동자로 일한 렌은 용역업체로부터 숙련노동자들로 팀을 꾸릴 것을 제안 받아 어디든지 다니며 자유롭게 일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철도청 소속 때보다 일당도 두 배 이상 받는다며 자랑하는 렌을 보고 일행은 아연실색합니다.

월급봉투를 받는 날, 폴은 이혼한 아이들 양육비도 댈 수 없다며 동료들에게 명퇴를 재촉합니다. 렌처럼 용역회사에서 일하면 두 배 이상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제리는 "여기를 그만두면 더 이상 선택할 것이 없으니 단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폴과 존은 명퇴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20여명이 일하던 분소는 잭을 제외하고 제리, 믹, 짐 이렇게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라

여기까지 카메라는 민영화의 폭풍이 훑고 지나간 작은 철도분소를 세밀하게 응시합니다. 비록 가난한 삶이지만 다정다감한 동료들과 정직한 노동으로, 짓궂은 농담 속에 고단한 노동을 털어내고, 서로를 배려하며 활기가 넘치던 일터가 어떻게 고립무원의 낭떠러지에 직면하게 됐는지를. 그와 함께 영화는 왜 노동자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연대해야 하는지를 준엄하게 되묻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적자생존의 터널 앞에 선 세 사람에게 각자 도생의 채찍을 휘두르는 민영화의 칼날이 서슬 퍼럴수록 귓가를 더욱 세차게 후려칩니다.

 용역업체에서 재하청을 받아 철로 표지판을 세우는 작업에서 짐이 열차에 치여 중상을 입자 믹 등 동료들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응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용역업체에서 재하청을 받아 철로 표지판을 세우는 작업에서 짐이 열차에 치여 중상을 입자 믹 등 동료들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응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 패럴랙스 픽쳐


마침내 분소 폐쇄가 통보됩니다. 민영화의 통제와 경쟁의 수레바퀴에서 효율성과 경쟁력을 상실한 분소는 폐기처분의 대상일 뿐입니다. 철도청 노동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던 세월은 일순간 용역회사를 찾아다녀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로 내몰립니다. 용역업체를 찾은 믹은 임금 외에 장비구입보조금 등이 있는지 묻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임금 외에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재교육에 필요한 교육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자기 선택권은 꿈도 꿀 수 없으니까요.

믹의 첫 일자리는 침목교체 작업입니다. 10명이 할 일을 6명이 하고, 그것도 2명은 건설노동자로 충원됩니다. 믹은 열차가 다니는 철로 위에서 일하는 만큼 안전수칙을 지기키 위해 신호수를 두어야 한다고 팀장에게 꼬치꼬치 따집니다. 사단은 믹이 퇴근하자마자 벌어집니다. 팀장이 믹에 대해 용역업체에 보고해 버리는 바람에 믹은 딱 하루 만에 잘립니다.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값싼 비용으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관건인 용역업체에게 믹의 정당한 요구는 시절 모르는 호사일 뿐입니다.

백수로 빈둥거리던 믹이 다른 용역업체를 찾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습니다. 믹은 자신의 철도노동 원칙을 접고 업체의 요구에 백기투항을 합니다. 이윽고 용역업체를 통해 다시 만난 믹과 폴, 존, 짐에게 일거리가 주어집니다. 열차가 지나가는 고가 위에서 두 사람이 콘크리트를 섞어 양동이에 담아 아래로 내려 보내면 두 사람이 받아 거푸집에 붓고 표지판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면 앞으로 일거리는 따 논 당상이라는 말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신호수도 없이 심야작업을 하던 중 짐이 과속으로 달리던 열차에 치이는 대형사고가 터집니다. 존이 응급차를 부르려하자 믹은 저지합니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두 번 다시는 철로공사 일은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짐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위장하고, 사경을 헤매는 짐에게 교통사고라고 주지 시키기까지 합니다. 그 사이 응급차가 짐을 병원으로 후송하지만 그는 과다출혈로 숨집니다.

영화, 철도산업의 공공성 운영을 역설적으로 웅변하다

영국국철 민영화는 1997년에 마무리됩니다. 선로 같은 기간시설은 대기업 레일트랙이 독점하고, 열차운행·화물철도·선로보수 등을 100여개 기업으로 분할 매각했습니다. 그 밑에 다시 1000여 개의 하청-재하청 업체가 수직구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비용절감을 위한 죽음의 질주로 열차충돌, 전복사고, 인명피해 등이 속출합니다.

그리고 2001년 10월 레일트랙이 파산신청을 하자 노동당 정권은 주주들에게 2억 달러를 배상하고 부채 45억 파운드까지 떠안은 후 국철을 다시 국유화합니다. 다만 철도운송서비스산업만은 민영화로 유지하는데, 영국 철도요금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비싼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민영화가 되기 전 선로현장에서 평온한 휴식을 즐기는 존, 제리, 믹, 짐, 폴. 민영화는 이들의 우정을 갈라놓고, 경쟁자로 만들며, 으르렁거림 끝에 배신자로 만든다.

민영화가 되기 전 선로현장에서 평온한 휴식을 즐기는 존, 제리, 믹, 짐, 폴. 민영화는 이들의 우정을 갈라놓고, 경쟁자로 만들며, 으르렁거림 끝에 배신자로 만든다. ⓒ 패럴랙스 픽쳐


영화는 2년간 진행된 민영화로 인해 죽임을 당한 짐을 통해 철도산업이 왜 공공성의 원리에 의해 운영돼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초 철도노동자들은 기존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을 보장받지만 민영화가 가속화면서 고용·노동조건은 열악해지고 각종 수당은 사라집니다. 또한 노동자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의식은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는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 빠져 질식 당합니다. 이윽고 명령과 복종만이 남은 일터에는 경쟁력강화의 구호 아래 안전장치는 사라지고 짐의 죽음과 같은 '죽음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민영화는 믹 등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정조준합니다. 이들이 짐의 죽음의 진실을 묵인하고, 동조하며, 은폐한 채 스스로를 살인자로 황폐화 시키는 인간성의 상실은 민영화가 휩쓸고 지나간 잔해에 다름 아니니까요. 민영화에 뒷덜미를 잡힌 비정규직의 인생은 영화 초반에 멀쩡한 기계와 부품 등이 다른 경쟁사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때려 부수라는 지시에 누군가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는 푸념에서 이미 예고된지도 모릅니다.

캔 로치 감독의 전작과 달리 <네비게이터>는 용기와 격려와 희망을 조명하지 않습니다. 스산할 정도로 무기력해진 노동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있는 그대로 묘사합니다. 마치 철도민영화의 음지를 고스란히 대면케 할 작정인양 저항조차 못하는 노동자는 인간 본연의 정의감과 정직성을 지킬 수 없다고 상기시킵니다. 마치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 칠수록 더 칭칭 감기는 것처럼 민영화의 통제와 압력에 굴복할 경우 인간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조차 깡그리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상기 시킵니다.

우리 역시 상기할 게 있습니다. 국토해양부가 일찌감치 철도 적자를 '악'으로 규정했다는 점입니다. 국토부에게 악은 철도노조와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한 노선을 가리킵니다. 특히 철도노조는 철밥통을 지키는 대표적 귀족노조로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평균 나이 48살, 평균 근속년수 19년에 24시간 밤샘근무를 하며 연봉 6000여만 원을 받는 게 과연 철밥통일까요? 무엇보다 철도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싸워 다른 기업 대비 정규직 비율이 높습니다. 이른바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인 권력과 자본에 끊임없이 도전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철도민영화가 사실은 '악의 축' 척결에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악의 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철도 민영화의 성공신화 뒤에는 이들 국가의 철도운영을 쥐락펴락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초국적 자본이 잠복해 있습니다. 이중 프랑스의 국제적 운송기업인 베올리아사는 현재 서울 지하철 9호선 운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 거대 민영기업이 진출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단 수서발 KTX만이 아니라 철도공사가 운영을 포기한 지방노선은 국내에 민간철도 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이들 초국적 자본에 넘겨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켄 로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분소를 지키고 있는 제리에게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짐의 죽음에 대해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믹, 폴, 존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지 모릅니다.

"철도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면, 철도노동자들의 삶과 공동체를 탈선시키겠다면,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기까지 저항을 멈추지 말라. 제리처럼 혼자 분소를 지키며 뒤늦게 회한에 젖어 뼈저린 탄식을 내뱉지 않으려면 단결을 멈추지 말라. 그리고 믹, 폴, 존, 짐처럼 생존의 공포에 짓눌려 스스로를 유린하고 끝내 파멸하지 않으려면 연대를 결코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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