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휴직'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부사관 이상의 장교가 군검찰에 의해 기소된 후 확정판결 때까지 휴직 상태에 처해지는 걸 말합니다. 즉, 전역이 보류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군복무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더욱이 항소를 할 경우에는 언제 제대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기소휴직'은 군인들이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악습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입대 전 용산참사 규명 시위 참여 등을 꼬투리삼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사회에 복귀하려는 그들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드는 주체가 국가라는 점입니다. 이같은 폭력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국가는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일찍이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던 권력의 폭압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대한문 앞에 쌍용자동차 분향소와 '희망텐트'가 둥지를 튼 지 두 달이 지난 6월.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여정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하며 관객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용산에서 공권력은 어떻게 '국가 폭력'으로 변질됐을까

 용산참사 그 25시간을 기록한 저예산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포스터

용산참사 그 25시간을 기록한 저예산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포스터 ⓒ 연분홍치마

영화는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법무부 업무보고 순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떼를 쓰고 단체행동을 하면 통한다는 의식이 문제"라고 질책하고, 법무부는 '떼법 문화' 청산을 위해 과감한 면책보장으로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보고합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2009년 1월 19일. 용산4지구 세입자 20여 명이 강제철거 중단과 주거생존권을 요구하며 남일당 건물 4층에서 농성에 들어갑니다. 그 후 벌어진 참사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용산참사의 기억을 우리 앞에 소환합니다. 마치 그 날의 절규와 비명을 잊지 않고, 그리고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의 무기력이 치유될 수 있다는 듯이.

"이 다큐멘터리는 용산참사의 역사적 진실을 위해 기억과 기록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간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에 초점을 맞췄다면, <두 개의 문>(6월 21일 개봉)은 위의 자막처럼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추적합니다. 인터넷 영상과 법정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법정극 형식으로 풀어낸 솜씨는 추적의 고삐를 바싹 당깁니다. 여기에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복원한 영화는 공감과 설득의 폭을 배가 시킵니다.

특히 경찰특공대원의 법정 증인신문과 진술서, 채증영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국가 공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용산에서 '국가 폭력'으로 뒤틀리고 변질되며 왜곡되었는지를 밀도있게 천착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를 유지한다는 공권력이 규제와 통제가 해체될 경우 어떻게 폭력과 공포와 죽음의 화신으로 변신하는지를 날 것 그대로 고발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폭력과 공포와 죽음의 문'

 남일당의 두 개의 문은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공권력과 국가 폭력 등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감독은 "관객 스스로 어떤 위치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했다"고 기획의도에서 밝혔다.

남일당의 두 개의 문은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공권력과 국가 폭력 등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감독은 "관객 스스로 어떤 위치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했다"고 기획의도에서 밝혔다. ⓒ 연분홍치마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무관용의 원칙과 엄정한 법집행으로 공권력을 확립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영화는 용산참사에서 이같은 천명이 어떻게 관철되었는지를 두 갈래로 풀어갑니다. 경찰특공대원들의 진술서를 육성으로 재연한 장면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에서 열린 특공대원에 대한 증인신문 육성 녹음이 그것입니다.

영화는 경찰특공대의 남일당 투입 결정 시점을 2009년 1월 19일 오전 중으로 추정합니다. 이날 오전 8시 20분경 특공대 참모회의 도중 특공대장에게 현장 출동을 명령한 전화가 걸려왔음이 증인신문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특공대 버스는 다음날 20일 새벽 3시에 출발해 30분 후 용산에 도착하지만 대원들은 버스 안에서 2시간 넘게 대기합니다. 그 시간 "남일당 주변은 버스와 사람이 다니는 등 평상시와 다름없었다"고 육성 재연은 증언합니다.

특공대의 진입이 늦어진 것은 그들을 태울 컨테이너가 한 대밖에 도착하지 않은 데다 크레인마저 제때 도착하지 않아서입니다. 특히 컨테이너가 애초 두 대에서 한 대만 투입된 사실은 법정에서 쟁점이 됩니다. 컨테이너가 두 대 동원됐을 경우 최악의 참사는 피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 특공대 1제대장은 증인신문에서 "두 대가 훨씬 수월(안전)하다"고 인정합니다.

진압시 안전수칙의 기본조차 지키기 않은 '위험한 작전'은 계속됩니다. 대원들은 현장 상황과 관련해 망루에 신나같은 인화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투입됩니다. 그러나 경찰수뇌부는 망루에 시너 60통이 있었음을 사전에 안 사실이 후에 밝혀집니다. 작전은 계속됩니다. 옥상에 진입하기 전 대원들은 '두 개의 문'에 맞닥뜨립니다. 한 개의 문은 망루로 또 한 개의 문은 창고로 향하는 문이었지만 대원들은 어떤 문으로 가야할지 모른 채 허둥댑니다.

영화 제목 <두 개의 문>은 '죽음의 문'과 '삶의 문'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그것은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 대원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그 작전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철거민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참사의 개연성을 내포하면서까지 '죽음의 문'을 선택한 경찰수뇌부와 국가를 가리킵니다. 만약 경찰수뇌부와 이명박 정부가 '삶의 문'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용산참사 변호인단을 이끈 김형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재판 때 집중했던 것이 특공대 투입이 공무집행이었냐 였어요. 왜냐면 특공대는 테러범들을 진압하는 거거든요. 그럼 철거민들이 테러범이냐? 그쪽에서는 화염병을 던졌기 때문에 테러범이라는 거예요. 거기서는 테러범을 섬멸해야 한다고 해요. 섬멸의 대상이냐 아니냐가 특공대 투입의 핵심 관건인데, 그럼 학생이나 세입자들이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진다고 해서 섬멸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용산참사 이틀 전인 1월 18일 김석기 경찰청장을 내정했습니다. 김 내정자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명을 받들기 위해 "떼를 쓰고 단체행동을 하는"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규정합니다. 그 결과 철거민 5명과 대원 1명이 농성 25시간 만에 불에 타 죽었습니다. 생존권 요구가 테러범으로 규정되고, 섬멸되는 세상,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문은 폭력과 공포와 죽음의 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도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용산참사에서 국가 폭력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작동됐나

 남일당에 투입된 경찰특공대 팀장의 검찰 진술서 사본. 이 팀장은 증인신문에서 당시 망루안에서 지른 '다 죽어'하는 소리에 대해 "진압당시에는 적개심에 올라오면 다 죽여버리겠다로 들렸지만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위험하니 피하라는 말이었다"고 증언했다.

남일당에 투입된 경찰특공대 팀장의 검찰 진술서 사본. 이 팀장은 증인신문에서 당시 망루안에서 지른 '다 죽어'하는 소리에 대해 "진압당시에는 적개심에 올라오면 다 죽여버리겠다로 들렸지만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위험하니 피하라는 말이었다"고 증언했다. ⓒ 연분홍치마



"유독가스와 화염에 싸여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은 생지옥과 비교될 정도였다." "훈련된 나도 순간순간 공황상태였는데… 희생된 철거민 농성자의 목숨도 우리 동료도 사랑하는 우리 국민이다." "망루에서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하고 공포에 떨었다."

가공되지 않은 특공대원과 팀장의 초기 진술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에 대해 검사는 대원과의 증인신문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제 위험하니까 퇴각해야겠다는 생각을 증인이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증인은 해서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일개 검사가 임무를 위해서는 장렬한 전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훈계하는 세상. 마치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이명박 정부 폭력성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같은 이명박 정부의 폭력성은 남일당 철거민들을 '화염병을 소지한 불법폭력 테러범'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이미지 조작 작업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 폭력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되었는지를 촘촘하게 펼쳐 놓습니다.

가족 동의 없이 시신을 부검해 주검의 진실을 은폐하고, 법원이 명령한 수사기록 조차 공개하지 않고, 발화 원인 중 하나인 발전기 스위치 부분은 사라지고, 경찰 채증 영상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다 잘리고, 법원은 방청인원 제한에 법정까지 바꾸고, 청와대는 용산참사 발생 5일 후 검거된 군포연쇄살인범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을 주문하고, TV와 보수언론은 충실하게 홍보지침을 따르며 용산참사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이어 경찰은 서울 도심에 26개월 만에 화염병이 등장해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진압했다고 발표합니다. 위기에 직면했던 'MB식 잔혹사'는 이후 참사의 원죄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합니다. 또한 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한 양승태 판사는 대법원장이 되고,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총선에 출마해 백주대로에 용산 진압은 정당했노라,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죽음의 문'은 검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쌍용자동차에서 4대강 등에서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러댔습니다. 그 사이 남일당 건물은 철거되어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엔 주차장만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제2, 제3의 용산참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화마에 휩싸인 채 무너지는 망루.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는 반복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오는 12월 대선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화마에 휩싸인 채 무너지는 망루.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는 반복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오는 12월 대선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 연분홍치마


만약 국가 폭력의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못할 만큼 한국사회가 건강했다면, 죽음의 문이 아니라 삶의 문을 선택하는 정부가 선출됐다면 어땠을까요? 용산참사는 아예 발을 붙이지 못했고, 쌍용자동차는 죽음의 문을 열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의 국가 폭력의 역사와 뿌리는 깊고 견고합니다.

한국사회는 해방 후 전쟁과 분단을 거치며 국가 권력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반공제일주의로 무장합니다. 특히 반공을 국시로 삼은 박정희 정권은 국가 폭력의 광기가 지배하는 야만의 역사를 구조화하고 일상화했습니다. 그 박정희와 함께 레드 콤플렉스의 광기를 사회화하고 국가 폭력의 확대재생산에서 주역 노릇을 톡톡히 해온 것이 조중동과 같은 기득권세력입니다.

이들은 정권에 위기가 닥치거나 기득권의 입지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어김없이 국가 폭력의 네트워크를 작동했습니다. '내부의 적'을 향한 이들의 폭력이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레드 콤플렉스의 기억을 복원해 내면 됩니다. 통합진보당 사건을 빌미로 다시금 무차별적인 빨갱이 사냥과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레드 콤플렉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유력한 대선후보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입니다. 국가 폭력을 역사적으로 구조화시켜 온 '유신본당'의 적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발언은 '박정희의 복사판'이자 '이명박의 모조품'이라는 저잣거리의 웅숭거림만큼 예사롭지 않습니다. 6개월 남짓 남은 대선이 끝나고 이명박 정부와 유사한 정부가 들어선다면 제2, 제3의 용산참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용산참사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인권운동가 박진씨의 증언은 침묵과 방관과 체념의 유혹에 흔들리는 우리들의 속살을 아프게 파고듭니다.

"야만의 정도가 계속 강해지는 거죠. 용산을 겪고서 아, 이렇게 해도 국민이 참아주는구나 그런 거를 본거죠. 그게 정말 몹쓸 교훈이 된 거예요. 끊임없이 이런 폭력들이 이 정권 끝날 때까지 아마 이와 유사한 정부가 온다면 또 오겠죠. 이게 너무나 무서운 거라서…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것에 대해 시민들이 관용할 건지 전 참 궁금해요."

두 개의 문 용산참사 국가 폭력 쌍용자동차 희망텐트 레드 콤플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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