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분들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거.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냥 국가정책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는 안이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 끌어올 줄 몰랐는데, 이분들한테만 그 짐을 주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미안하기도 했고…"

제주 해군기지건설 백지화촉구 전국시민행동의 날.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제주행 크루즈를 타고 강정마을에 도착한 주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낍니다. 2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영화는 '사회적 제작단'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성금으로 재능으로 십시일반 동참하고, 작품의 소유권은 사회화하며, 수익금 전액은 강정마을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여덟 명의 감독들이 합류하고 촬영부터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0일. 각자의 스타일대로 만들어 강정의 '비명'을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작업방식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재즈 용어인 '잼'(Jam)처럼 시나리오 없이 제작하는 것. 현재진행형의 사회적 이슈와 '연대'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강정'이 관객과의 연대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의 역사와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을 살풀이 한 판으로 기록한 <잼 다큐 강정>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누가 강정을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로 갈라 놨을까?

 강정마을 큰 사거리에 나란히 자리 잡은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4·3처럼 될까봐 머리에 콕 박힌다는 마을 할머니의 증언은 강요된 현실이 어떻게 과거와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강정마을 큰 사거리에 나란히 자리 잡은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4·3처럼 될까봐 머리에 콕 박힌다는 마을 할머니의 증언은 강요된 현실이 어떻게 과거와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 시네마달



영화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유치되기까지의 과정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이윽고 반대운동의 선봉에 선 강정균 마을회장이 크루즈를 타고 구럼비에 온 이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센 한나라당 보다 더 센 당을 아느냐고. 강정당? 아닙니다. 강 회장은 '권당'이라고 답합니다. 제주말로 친척을 일컫는 권당은 거센 바람에 맞서 제주를 지켜온 공동운명체를 상징합니다. 시난고난했던 역사 속에서도 형님, 아우하며 평화의 땅 제주를 일구고, 평화의 꽃을 피워 온 저력이 권당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권당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여섯 번째 꼭지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강정마을 큰 사거리에는 두 개의 슈퍼마켓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반대 주민들이 찾는 코사마트와 찬성 주민들이 찾는 나들가게. 찬·반에 따라 각자 슈퍼마켓을 오가지만 서로 아는 척도 않고 말도 섞지 않습니다.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강희웅씨 형제는 그 비극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습니다. 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찬·반 주민들이 대치한 어느 집회. 찬성주민위원회 사무국장인 형 강희상씨는 밀어붙이라며 독려하고, 동생인 강희웅씨는 그런 형을 퀭한 눈길로 건너봅니다. 동생은 형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추석 등 명절 가족모임에도 가지 않고 밭에 일하러 갑니다.

태생부터 불법적인 해군기지로 인해 이들 형제는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권당의 든든한 울타리였던 마을은 갈등과 분열로 찢어졌습니다. 4·3으로도 부족해 피붙이들을 또다시 좌와 우로 갈라놓았습니다. 또한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용암너럭바위인 구럼비 바위는 시험발파에 의해 일부가 산산조각 났습니다. 먼 옛날 탐라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유적지가 깨졌습니다. 제주의 다이아몬드로 불려 '일(으뜸)강정'이라고 자부했던 강정은 그렇게 파괴됐습니다.

구럼비 바위와, 그 위에서 아장거리는 붉은발 말똥게와, 그 해안가 건너에 새초롬이 앉은 범섬과 그 곁에서 춤추던 돌고래 떼와 그리고 이들과 함께 400년을 아울러 온 강정의 사람들에게 너무도 잔인한 바람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제주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하기 위해 별짓을 다하던 와중에 구럼비는 흉측한 시멘트에 덮일 운명에 처해진 것입니다. 이 잔인한 현실에 대해 구럼비는 이렇게 노래 부릅니다(<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프롤로그 '구럼비의 노래' 중에서).

"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이 미친 짓 그만두라고 말해 주세요. 이봐요,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제발 이 죽음의 망나니짓 그만 멈추라고 말해 주세요!"

2007년부터 4년 넘게 숱한 싸움을 겪어 왔지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희웅씨의 검게 그을린 얼굴은 절박합니다. 그리고 처절한 '구럼비의 노래' 처럼 그가 한 마디 내뱉습니다. 영화는 "늦어서 죄송하다… 하지만 끝난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듭니다.

"이 땡볕에 참 고맙습니다만… 막을 수 있는 기회엔 안 왔잖아요? 왜 지금 오셨습니까?"

채권자 이명박 정부의 '공포 정치'... 쫄지 않으면 됩니다

 구럼비 바위 저 멀리서 굴착기가 바닥을 파헤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해안가에 시멘트블록을 쏟아 부어 6만 평 이상 매립한 뒤 2000m에 이르는 방파제를 쌓아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구럼비 바위 저 멀리서 굴착기가 바닥을 파헤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해안가에 시멘트블록을 쏟아 부어 6만 평 이상 매립한 뒤 2000m에 이르는 방파제를 쌓아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 시네마달


그럼에도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기 위한 연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는 여덟 번째 꼭지인 '구럼비에 멈춰서서'에 이르러 성미산마을의 은희씨를 찾습니다. 평화운동가인 친구 최성희씨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자 제주행에 오르고, 빛나는 청춘을 함께 했던 두 친구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해후합니다. 강정과 성미산은 그런 빛나는 친구와 같으니까요. 그리고 성미산 사람들이 해군기지건설 반대를 위한 연대의 콘서트를 열고 서울과 제주는 인터넷을 통해 날 것으로 연대합니다. 이윽고 은희씨가 친구를 향해 편지를 읽고, 이내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성희야, 내가 서 있는 성미산마을의 노래를 강정마을에서 함께 부르고, 강정에서 켠 촛불이 성미산을 환하게 비춘다… 성희야, 난 깨닫는다. 내가 직접 함께 손을 들지 않았다 해도 우리의 동시대가 평화를 깨고,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손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면 그것이 바로 내 과오임을…"

다시 카메라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꽂혀 있는 구럼비를 향해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클로즈업합니다. 2011년 9월 강동균 회장 등 세 사람이 연행돼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수감되지만, 두 달 뒤 전원 석방됩니다. 끝임 없는 구속 위협보다 강정사람들을 분노케 만든 것은 정작 따로 있었습니다. 해군 등이 공사방해 명목으로 14명의 주민들을 상대로 2억89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고, 주민들이 다시 기지 현장에 들어갈 경우 회당 500만 원의 벌금을 물도록 법원에 신청했으며, 주민 76명에게 업무방해죄로 소환장을 발부한 장본인 즉, 그 모든 소송의 채권자가 '대한민국'이었던 것입니다.

구럼비로 하여금 처절한 노래를 부르게 한 잔인한 바람은 정부였습니다. 공동운명체를 파괴하면서 주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장본인이 이명박 정부였던 것입니다. 채권자 '대한민국'은 한 술 더 뜹니다. 반대 주민들이 해군기지 경계에서 500m 이내에 들어 올 수 없도록 가처분 신청까지 낸 것. 강정에서 떠나든지 눌러 앉아 살려면 끽소리 말고 정부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가 찬 변호사는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쫄지 마세요!"

맞습니다. 쫄지 말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부터 용산참사를 거쳐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의 폭압을 앞세운 '공포 정치'를 휘둘러도 끝내 희망버스로 되살아났듯이, 쫄지 않으면 희망은 되살아납니다. 한미FTA 처럼 해군기지도 날치기 처리했지만 지난 1월 '강정을 사랑하는 육지사는 제주사름'이 출범했고, 강정평화상단에서는 오늘도 한라봉을 팔고 있으며, 오는 31일 제7차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전국시민행동의 날이 점화되니까요.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포 정치'로 연명하는 정권은 운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폭력과 공포가 기승을 부릴수록 국민의 저항은 더 커지고, 균열이 가기 시작한 권력은 휘청거릴 것이며, 결국 제 무덤을 제 손으로 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이 동서고금의 이치에서 예외란 없습니다. 쫄지 않으면 됩니다.

구럼비에서 중덕이와 백구가 뛰어 노는 그날까지...

 강정마을과 구럼비 해안가 지킴이 ‘생명 평화 바다 구럼비’ 석탑. 산호초가 자라는 바다와 수억 년 시간이 아로새겨진 길이 1.2km, 너비 150m에 달하는 통바위 구럼비는 모두가 지켜야 할 천혜의 보물이다.

강정마을과 구럼비 해안가 지킴이 ‘생명 평화 바다 구럼비’ 석탑. 산호초가 자라는 바다와 수억 년 시간이 아로새겨진 길이 1.2km, 너비 150m에 달하는 통바위 구럼비는 모두가 지켜야 할 천혜의 보물이다. ⓒ 시네마달


이명박 정부의 공포 정치는 '경찰폭력과 언론폭력, 용역폭력'의 3대 폭력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헌데, 이제 한 가지 더 추가입니다. '시멘트폭력'입니다. 일찍이 4대강 사업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시멘트폭력은 이제 구럼비에서 종결자 노릇을 하려합니다. 빌딩크기만한 20~30m의 거대한 시멘트블록(케이슨)으로 구럼비 앞 바다를 매립하려는 것입니다. 57개의 괴물 같은 케이슨으로 구럼비가 매립되면 영영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이 끝나지 않은 이유입니다.

"마을 해안가 중덕엔 중덕이가 산다. 마을 중심 사거리엔 백구가 산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중덕이와 백구는 만날 수 없다."

구럼비 해안가 한켠에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상징 중 하나인 '김중덕'이라는 이름의 황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중심 사거리엔 백구가 삽니다. 헌데, 백구의 양 눈에 빨간색 안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연인즉슨, 하루 종일 반대운동을 하며 밖으로 나도는 며느리에게 심술이 난 시어머니가 애꿎은 백구에게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잼 다큐 강정>의 오프닝 장면입니다.

지난 여름 끝자락 강정마을에서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구럼비 안에서 굴착기가 본격적으로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경찰이 중덕 삼거리로 들이닥쳐 해안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목을 폐쇄하고,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주인과 함께 구럼비에서 내쫓긴 중덕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백구의 발목을 물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백구의 주인이 중덕이의 주인을 고소하면서 개싸움은 사람다툼으로 이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는 자꾸만 어긋나는 중덕이와 백구의 만남을 위해 헤드카피를 이렇게 잡았습니다. '제주에 평화를 허하라!' 토건개발과 환경생태가 충돌하는 와중에 서로 다른 가치들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강정을 위해 '구럼비에 평화를 허하라!'라고.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주민들이 비록 땅은 작아도 수확은 실했던 강정에서 함께 제사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며 제삿밥을 나눠먹을 수 있도록, '강정에 평화를 허하라!'고.

다시금 영화는 말합니다. 구럼비 바위 위에서 중덕이와 백구가 컹컹 짖어대며 주인들과 마음껏 뛰어 노는 내일을 상상하며 오늘도 우리는 강정으로 가노니, 평화로 가노니, 안녕, 구럼비.

'제주에 평화를 허하라!'

잼 다큐 강정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구럼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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