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권리와 의무를 날것으로 그대로 스크린에 펼쳐 놓은 영화 <트루스> 포스터.

언론의 권리와 의무를 날것으로 그대로 스크린에 펼쳐 놓은 영화 <트루스> 포스터. ⓒ (주)라이크 콘텐츠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구하기', 그 끝은 어디일까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쾌재를 부르며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을 지목했습니다. 한때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조선일보>는 역대 보수정권 만들기의 일등공신입니다. 그런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부가 왜 서로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릴까요?

분명한 건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정치 댓글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 인권 유린 사건으로 둔갑시켜 진실을 흐리게 한 행태를 되풀이한다는 점입니다. 청와대는 희망합니다. 달은 보지 말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모양만 보기를. 그리고 소망합니다. 손가락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이 '진실'이 달과 손가락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지기를.

청와대의 간절한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상황을 연출한 '보이지 않는 손'은 가능하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불과 12년 전인 2004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2개월여 앞둔 미국에서는 현실이 됐으니까요. 미국 CBS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 '60분'팀의 진실을 향한 투쟁을 정면에서 다룬 영화 <트루스>(truth)는,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다가 어떻게 '진실'이 사라졌는지를 스크린 가득 펼쳐 놓습니다.

12년 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CBS 보도국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 ‘60분’을 이끌고 있는 메리와 댄. 메리에게 댄은 기자정신의 사표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CBS 보도국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 ‘60분’을 이끌고 있는 메리와 댄. 메리에게 댄은 기자정신의 사표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 (주)라이크 콘텐츠


CBS 보도국의 베테랑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는 간판 앵커이자 선배인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와 손을 맞잡고 '60분'팀을 이끌어 나갑니다. 메리는 이제 막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의 포로학대 사진을 다룬 심층 취재를 보도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보도국은 메리에게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비리 의혹 취재를 일임합니다.

메리는 각 분야 전문가로 취재팀을 구성해 부시의 군복무 당시 청탁과 근무 태만의 증거를 모으며 취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입증할 물증이 없습니다. 증거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일명 '킬리언 문서'를 가진 제보자의 등장으로 취재는 급물살을 탑니다.

2004년 9월 8일. 마침내 '60분'팀은 '킬리언 문서'를 중심으로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을 특종 보도합니다. 그러나 보도 이후 한 보수 블로거(파워라인)가 문서 글자의 폰트와 간격이 다르다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프로그램으로 위조된 문서라고 조작설을 주장하고 나섭니다. 메리와 댄은 반박 자료를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진실을 밝힐 논점은 이미 변질되어 '60분'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메리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시종일관 언론과 권력 그리고 여론의 향방을 '진실과 사실 사이의 경계'에서 화두로 삼아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의 민낯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12년이 지나 '우병우 게이트'로 들썩거리는 한국사회에 되묻습니다.

진실이 언제 한 번이라도 저절로 밝혀진 적이 있느냐고. 사실을 알아가기 위한 질문을 멈추는데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겠느냐고. 언론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시선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진실이 은폐됐는지 아느냐고. 그럼에도 당신은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냐고. 그렇다면,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진실에 접근하는 질문을 차단한 손가락은 누구인가

 메리와 ‘60분’팀원들이 재선에 도전한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시절 비리 의혹 보도를 앞두고 취재한 영상을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있다.

메리와 ‘60분’팀원들이 재선에 도전한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시절 비리 의혹 보도를 앞두고 취재한 영상을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있다. ⓒ (주)라이크 콘텐츠


메리는 TV 뉴스 프로듀서와 리포터로 25년간 활약하며 정치, 전쟁, 사형제도 등 폭넓은 분야를 취재한 언론인입니다. CBS 이브닝뉴스의 앵커이기도 했던 댄은 전설적인 저널리스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둘은 진실 보도를 최선의 가치로 삼아 주로 권력의 이면을 파헤쳐 보도해 온 진보적 언론인으로 평가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라크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보도한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이 조작 논란에 휩싸입니다. '60분'팀은 부시가 베트남 파병을 피하기 위해 텍사스 방위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기간 동안 무단이탈과 조기 제대 등 의혹이 있다고 보도합니다. 근거자료로 제리 킬리언 중령이 생전에 작성한 '킬리언의 문서'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문서를 제보한 퇴역 방위군 빌 버킷 등이 말을 바꿉니다. 궁지에 몰린 CBS 경영진은 12일 만에 오보를 시인하고 사과방송을 내보냅니다. 이후 메리를 해고하고, 래더는 자진 사퇴합니다. 부시가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고 난 이듬해의 일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실패한 저널리즘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성공한 저널리즘의 역사를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와는 대척점에 서있습니다. 그런데도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트루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집중하는데 너무 익숙하고, 태연자약하기까지 한 우리들에게 띄우는 영화의 메시지가 간단치 않기 때문입니다.

<트루스>는 왜? 라는 질문에서부터 취재의 전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60분'팀의 팩트 체크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60분'팀이 제기한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과 보수 진영이 제기한 문서 조작 의혹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관객의 시선으로 판단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실'에 접근하는 질문을 차단한 '손가락'인지를 리얼하게 그려냅니다.

그것이 기자들의 정치 성향까지 발가벗기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보수 세력의 '60분'팀 죽이기의 결과는 아닌지, 보수언론들의 물어뜯기와 선정적 보도 등 이슈 물 타기와는 무관한 것인지, 거액의 세금 감면 법안에 직면한 CBS 경영진이 공화당과 결탁해 제보자 공개에 '60분'팀 추가조사 요구를 중단시킨 때문은 아닌지, 무엇보다 '60분팀'의 보도가 혹시 현직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아닌지, 라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장막 뒤 '보이지 않는 손'

 메리가 댄이 소개해 준 변호사와 함께 CBS 경영진이 구성한 조사단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CBS는 공화당 인사를 중심으로 조사단을 구성했다.

메리가 댄이 소개해 준 변호사와 함께 CBS 경영진이 구성한 조사단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CBS는 공화당 인사를 중심으로 조사단을 구성했다. ⓒ (주)라이크 콘텐츠


"우리는 부시가 군 복무의 의무를 다했는지 충실히 질문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때 정치 성향과 의도, 인성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진실 따위는 사라져버리길 바란다."

메리가 CBS 조사단에 남긴 말입니다. 이 말은 자본과 권력 앞에서 무너진 진실을 위한 메리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그리고 그를 '뱀처럼 교활하게 생긴 좌파×,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내장을 도려내야 할×' 등으로 도배한 댓글들에 대한 화답이기도 합니다. 조사단은 부시가 취임한 다음에서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치적 편향은 없었다'고 밝힙니다.

미국에 '60분'이 있다면, 한국에는 <PD수첩>이 있었습니다. 두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묘한 기시감으로 연결됩니다. '60분'이 '문서 게이트'로 입에 재갈이 물렸다면, <PD수첩>은 공정방송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다 재갈이 물렸습니다. 그리고 MBC에서 해고당한 최승호 피디는 이명박근혜 정부 언론탄압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랬던 박근혜 정부가 이제 '권력의 내부자'로 호가호위했던 <조선일보>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된 국면에서 권력투쟁을 벌여 온 내부자들이 비리권력 대 부패언론이라는 프레임으로 진영을 갈려 난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고,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내는 형국이 도래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우병우-진경준-넥슨의 '비리' 먹이사슬이 송희영-남상태-대우조선해양의 '부패' 먹이사슬에게 "너는 얼마나 깨끗하기에"라고 질타하는 이 상황을 한편의 희극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장막 뒤에 진실의 본말을 전도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그 '손'이야말로 우병우·송희영 비리부패 의혹과 함께 반드시 규명해야 할 '실체적 진실'이니까요.

모름지기 언론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편견과 상식에 도전하고 진실의 맥을 짚어가는 저널리즘이 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실의 외피를 쫓으면서 사실 너머의 실체적 진실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 구조의 장벽을 깨트려야 합니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고, 진실은 사실의 덩어리도 아니니까요.

'성역의 진실' 캐기 위한 불퇴전의 정신이 필요하다

영화 말미에서 댄은 "언론은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스스로 재갈을 물고 질문을 멈추는 순간, 진실은 패배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댄에게 메리는 묻습니다. "문서가 진짜인지 왜 한 번도 묻지 않았느냐"고. 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짧게 답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권력과 구조의 본질을 뛰어 넘어 진실을 향한 메리의 거침없는 투쟁이 곧 진실을 갈구하는 끊임없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정직한 사관이자 공정한 심판관이 되고자 했던 메리가 언롱인(言弄人)이 아니라 불퇴전의 기자정신을 갖춘 언론인의 자격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댄의 말처럼 '우병우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메리와 같은 불퇴전의 기자정신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언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은 달을 향해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성역의 진실'을 캐내기 위한 전면전은 시작됐습니다.

영화 트루스 CBS 60분 우병우 게이트 조선일보 송희영 국정원 댓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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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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