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스물아홉 번째로 영화 <셔틀콕>의 이유빈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2013년 해운대 해변가. 영화 <셔틀콕>의 포스터가 세워졌다.

2013년 해운대 해변가. 영화 <셔틀콕>의 포스터가 세워졌다.ⓒ 이유빈 제공


2010년에 나는 부산영화제 스태프로 일을 했었다.

놀며 쉬며 '그런 일도 한 번 해 볼까?' 식은 아니었고, 분명한 이직이었다.
화창한 봄날을, 하루는 울고 하루는 불며 보내다 끝내 결심했다. 영화를 그만하자고.
부모님께도, 은사님들께도 말씀드렸다. 영화 만드는 일을 더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흔한 얘기지만, 버티기가 힘들었다.
패배자가 되어 청춘이 끝장난다는 게 두려웠고, 십 년 동안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며 애정을 갈구해도 콧대 높게 눈길 한 번 안 주는 영화가, 그냥 너무, 미웠다.
널 사랑하느라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 애정을 이 따위로 대한다면 나도 더는 미련 없어.
난 너보단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니까.

직장인이 되다

 2010년 부산영화제 스태프로 일할 당시 사무실과 그때의 책상.

2010년 부산영화제 스태프로 일할 당시 사무실과 그때의 책상.ⓒ 이유빈 제공


그래놓고 기껏 얻은 새 직장이란 데가 부산영화제였다.
이유는 하나. 영화 전공의 스물아홉 사회 초년생을 받아주는 데가 그리 많지가 않았던 거다. (그걸 몰랐다니 나도 참…)

2010년 늦여름, 짐을 싸들고 도피하듯 부산으로 내려갔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간 나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죽지 못해 사는 티를 팍팍 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꼴 보기 싫었겠다 싶지만 내게 있어 영화를 그만둔다는 건 일종의 이별이나 마찬가진데 그 정돈 이해해주자 싶기도 잠시,

죽상으로 출근해 앉아있다 퇴근하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배회하며 더욱 꼴 보기 싫게, 울었다.
그러다 동료와 마주치기도 하고 당시 내가 일하던 아시안 필름 마켓의 실장으로 계셨던 남동철 프로그래머님과 마주쳤던 기억도 있다. (남 프로그래머님은 그 장면을 잊어버리셨길 간절히 바라본다.)

 영화제의 모든 공식일정이 끝난 뒤. 스태프들이 주인공이 된 뒷풀이 자리.

영화제의 모든 공식일정이 끝난 뒤. 스태프들이 주인공이 된 뒷풀이 자리.ⓒ 이유빈 제공


당시엔 영화의 전당도 없었고, 해운대 요트 경기장 컨테이너박스에서 에어컨 빵빵 틀며(지금 기억에도 에어컨은 정말 빵빵하게 틀어줬다) 밤낮없이 일했다.

스태프들은 셋씩 짝을 지어 해운대 신시가지 오피스텔에 방을 내줬었는데, 아침에 넷씩 짝을 맞춰 택시로 출근하면 어젯밤에 어떤 남자가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X발! OOO 나와! 사랑한다고!!" 옛 애인을 찾아 난동을 부려 잠을 설쳤다는 얘기부터, 누구랑 누가 썸을 타는 중인 것 같다는 얘기까지(당시엔 썸이란 단어가 없었지, 참…), 스태프들이 대개 비슷한 또래의 아가씨들이다보니 다들 삼 개월 간의 긴 엠티를 온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면 부산 출신의 스태프 승용차에 일곱 명이 끼여 타곤 UV의 노래를 크게 틀고 밀면을 먹으러 다니던 일,

어느 날은 우르르 대피하는 스태프들을 보고 '불이라도 났나?' 따라 나갔다가, 해운대 고급 주상복합 건물이 실제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구경했던 일,

영화제 기간만 되면 음료 주문에 십 분은 기다려야 하는 해운대 스타벅스에서 팀원들과 줄을 서다 뒤늦게 들어오셔서 그 긴 줄에 충격 먹은 이재용, 김지운 감독님의 음료를 함께 주문해준 일,

펑크 난 통역사를 대신해 짧은 일본어로 GV(관객과의 대화)에 투입됐다가 세 시간짜리 전통 가부키 다큐멘터리가 걸리는 바람에 단어조차 못 알아먹고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대 망신 플러스 할아버지 감독님(당시 상영작은 <가부키좌: 마지막 공연>. 연출자인 소가와 소키치 감독은 1945년생이다-편집자 주)께 죽도록 욕을 먹은 일…

그렇게 화창한 여름과 가을을 거쳐,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또래와 어울려 바쁘게 일하는 사이 나의 우울은 밀물에 모래가 옮겨지듯 조금씩 조금씩 씻겨나갔던 것 같다.

반전

 2010년 스태프로 일했을 당시 ID카드, 그리고 3년 뒤 감독으로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ID카드다.

2010년 스태프로 일했을 당시 ID카드, 그리고 3년 뒤 감독으로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ID카드다.ⓒ 이유빈 제공


여기서 영화 같은 반전은 그로부터 삼년 후, 2013년에 내가 만든 작품으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는 거다. 스태프로 일할 때 직접 준비했던 <비전의 밤> 시상식 무대를, 내가 만든 영화로 수상자가 되어 올라가게 되리라고는, 2010년의 '나라 잃은 이유빈'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반전은 영화제에서 일을 하며 영화를 다시 만들기로 결심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영화를 들고 영화제를 찾은 감독들에 자극을 받아 그 결심을 한 건 아니란 거다.
그냥, 영화제 일이란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영화제 기간 내엔 말도 안되게 바빠서 '나도 다음엔 내 영화를…' 그런 잡생각(?)을 할 여유조차 안 생겼다.
회사원처럼 내일 출근할 곳이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웬걸, 상사의 스트레스에, 야근에, 잔업에… (폭로는 아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거다.

이렇듯 영화제 일을 하며 얻은 엄청난 깨달음은 내가 영화를 해서 힘든 것이 아니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게 사는 거였구나. 그렇게 한 번 우물을 벗어나 보니, 영화 만드는 일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은 편해졌던 것 같다.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는 부산영화제의 추억은 이렇듯 다른 감독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내 사진첩 속의 부산은 2010년에도, 2013년에도 여전히 화창하기만 한데, 지금은 미세먼지 아주 나쁨 단계에 접어든 하늘같다. 생각만 해도 숨통이 콱 막히고 외출할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얼마 남지 않은 영화제가 다시금 화창하게 개길 바라는 이 글은 나란 사람의 추억팔이를 가장한 연대의 글이다.

아직 여리고 작은 목소리라 벽돌 하나의 역할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일부가 되어본다.
지치지 않고 버텨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셔틀콕>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트로피와 꽃다발.

영화 <셔틀콕>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트로피와 꽃다발.ⓒ 이유빈 제공


이유빈 감독은 누구?
 이유빈 감독

이유빈 감독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영상학과 과정을 마쳤다. 단편 <마이좀비보이>(2006)로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상업영화 <회사원>(2012)의 스크립터를 맡기도 했다.

이후 첫 장편 데뷔작 <셔틀콕>으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됐다. 당시 영화는 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
[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
[⑮ 홍석재] 영화제는 꿈! 꿈은 결코 당신 마음대로 꿀 수 없다

[16 정윤석] 서병수 시장님, 성수대교 참사 유가족이 제게 묻더군요
[17 민용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를 기어코 베려 한다면
[18 김동명] 거짓말 같은... 결단코, 부산국제영화제
[19 이용승] 정치야, 축제에서 꺼져주면 안될까?
[20 김진열] 평범한 시민들이 BIFF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21 안선경]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이겼습니다
[22 김용조] 서 시장님, 전 자격 없는 영화인인가요
[23 양익준] 씨발 진짜... 욕을 빼고 글을 쓸 수가 없다
[24 김조광수] 20년 개근한 나, 올핸 부산 갈 수 있을까?
[25 이수진] 말한다, 벽이다, 그래도 말한다

[26 김태곤] BIFF 사태를 보며 불타버린 숭례문 생각함
[27 강석필] 베를린영화제도 부산영화제 같을 때가 있었다
[28 박배일] 난 부산 사람,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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