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스물두 번째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김영조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한 장면.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한 장면. ⓒ 김영조 제공


저는 이번에 위촉된 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자문위원 중 한 명이자 그동안 부산에서 꾸준히 영화작업을 해온 감독입니다. 특히 작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상영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임에도 따뜻하게 격려해주신 부산 관객 분들의 응원과 지지에 큰 감사의 마음을 느꼈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38년 만에 영도다리 도개가 재개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새로운 희망의 이면, 즉 막막하고도 절망적 상황을 맞게 된 영도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뒤돌아보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8년에는 태백 광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태백, 잉걸의 땅>이라는 작품으로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영화제로부터 부산 지역 감독에게 수여하는 다큐멘터리제작 지원금을 받고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관객들 앞에 선다는 건 제게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해마다 열성적인 관객으로 영화제를 즐기며 바라봤던 제가 처음으로 관객들의 고정된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무대에 서서 떨리며 쏟아냈던 관객과의 대화. 그 수많은 관객들의 시선 속에서 확실치도 않은 앞으로의 영화 작업에 대한 계획을 마법에 걸린 듯 무심코 약속해 버렸던 순간… 지나고 보면 그 순간의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려고 했던 초보 영화감독의 객기 어린 용기와 관객들의 격려가 지금까지 제가 영화인으로서 활동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태백, 잉걸의 땅>의 한 장면.

영화 <태백, 잉걸의 땅>의 한 장면. ⓒ 김영조 제공


사실 부산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은 더 오래전부터였습니다. 저는 영화제 초창기에 해당하는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술팀에서 스태프로 일했습니다. 당시 업무는 스크린 매니저였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동료들과 필름을 검색하며 영화제를 준비했습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영사 사고에 대비해 잔뜩 긴장한 채 일하다가 진짜로 사고가 생겨 무대로 올라가 관객들에게 거듭 사과했던 일, 때로 운이 좋을 때는 자신의 영화를 점검하기 위해 영사실을 찾은 유명 감독을 만나 성취감을 느꼈던 기억까지.

그때는 '미래의 나도 이곳에서 팬을 만나는 그런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 계속 영화작업을 하는 영화인으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누리던 영화제의 순간순간이 바로 최고의 순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공학을 전공했던 저는 뒤늦게 영화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해 다소 늦은 나이에 영화학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했고, 저는 남포동 비프광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고, 행운처럼 표를 구할 때는 어린아이 마냥 기뻐 날뛰고 환호하며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때로 표를 구하지 못하면 오기가 생겨 날밤을 꼬박 새기까지 하며 순서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그 깊은 여운을 삭히지 못해 일행이었던 학우들과 선배들, 그리고 영화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까지 합석해 저렴한 안주에 막걸리를 들이키며 영화에 대한 끝도 없는 대화와 분석을 열정적으로 쏟아내었던 기억의 조각들도 지금까지 선명합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넘치는 의욕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영화인으로 살아남자"고 서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렇게 비난하신다면

 2015년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2015년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 부산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렇듯 제 삶의 역사이고, 오랜 시간을 함께 걸어온 친구입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제 삶이 소중하듯, 제 오랜 친구였던 부산국제영화제도 그 어떤 외부 논리에 굴하지 않고 그저 자유로움과 진실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친구로 계속 살아남기를, 지금까지 영화제가 꾸준히 노력하며 만들어 놓은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 3월 2일 서병수 시장은 신규 위촉된 자문위원들을 두고 "영화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적도 없는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 비난했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는 영화인인가 봅니다.

김영조 감독은 누구?

올해로 마흔여섯. 김영조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가족초상화>(2007)로 마르세유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및 벨기에브뤼셀다큐멘터리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브뤼셀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부산영화제와는 2008년 다큐멘터리 <태백, 잉걸의 땅>로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영화는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의 초청을 받았다. 이후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2015년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경쟁 부문의 초청을 받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
[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
[⑮ 홍석재] 영화제는 꿈! 꿈은 결코 당신 마음대로 꿀 수 없다

[⑯ 정윤석] 서병수 시장님, 성수대교 참사 유가족이 제게 묻더군요
[⑰ 민용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를 기어코 베려 한다면
[⑱ 김동명] 거짓말 같은... 결단코, 부산국제영화제
[⑲ 이용승] 정치야, 축제에서 꺼져주면 안될까?
[⑳ 김진열] 평범한 시민들이 BIFF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㉑ 안선경]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이겼습니다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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