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열여덟 번째로 <거짓말>의 김동명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2014년은 참으로 버라이어티했다. 먼저 나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를 정신없이 키웠다. 밤낮 없는 아이의 보챔에 지쳐 눈물도 한 바가지씩 흘렸다. 아이와 씨름하느라 무언가 만족은 없이 집안은 엉망이고 몸과 마음은 진창인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를 품고 있었다.

그 위기일발의 시간에 부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면서 한 번도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그곳으로부터의 상영 연락이라니! 너무나 기뻤다.

살아있음을 느끼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관객과의 대화 직후 찍힌 사진. 왼쪽이 배우 전신환, 가운데가 배우 김꽃비, 오른쪽이 김동명 감독.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관객과의 대화 직후 찍힌 사진. 왼쪽이 배우 전신환, 가운데가 배우 김꽃비, 오른쪽이 김동명 감독.ⓒ 김동명 제공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와 남편과 함께 나는 한달음에 부산으로 달려갔다. 당연하게도 영화제를 영화제답게 즐길 수 없었다. 예전처럼 하루에 내리 4편의 영화를 보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지새우던 부산은 저 멀리에 있었다. 영화만 상영한 뒤 아이를 살피기 위해 적당한 식당을 찾거나 해운대 바다를 낑낑대며 유모차를 이리밀고 저리밀고 아이를 겨우 재워 숙소로 향해야만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갈팡질팡 제 갈 길을 못 찾던 영화에 기적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 영화밖에 볼 수 없는 축제 아닌(?) 축제의 길이었지만, 나는 마냥 행복했다.

영화 <거짓말>은 관객들과 호흡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김꽃비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부터 "마지막 장면은 갑자기 SF인 냥 뜬금없다" 등등의 비판까지 따끔했지만, 행복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해외영화인들과의 접촉도 놀라웠다. 여러 해외영화제들의 관심부터 언론사 <버라이어티>지의 리뷰까지.

극장 안에서의 반응 외에도 메일링이나 지면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따스한 기운들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이 덕분이었는지 <거짓말>은 대명컬처웨이브상을 받았고, 그 다음해 개봉까지 하게 됐다. 어떻게 여기까지가 가능했을까?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지내는 것조차 버거웠던 내게 비현실적인 일들이 다가와서이기도 하지만, 영화제를 통해 영화가 영화답게 그것의 삶을 영위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제작하여 개봉의 길까지 열어젖히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나는 3편의 장편을 만들었지만 개봉한 영화는 <거짓말>이 유일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끔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은 결단코 부산국제영화제이다.

가난한 영화인이 영화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

 AFI(American Film Institute)영화제 참가당시. AFM(American Film Market) 해외배급사 공간에 걸려 있던 <거짓말>의 해외포스터 사진.

AFI(American Film Institute)영화제 참가당시. AFM(American Film Market) 해외배급사 공간에 걸려 있던 <거짓말>의 해외포스터 사진.ⓒ 김동명 제공


그런데 요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거짓말 같은 소문도 들려온다. 나는 기억해본다. 내가 무일푼으로 <거짓말> 시나리오를 쓰고,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하고,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결국 영화를 만들어내고, 또 부산의 초청을 받아 수상하고, 개봉까지 하게 된 그 믿기지 않는 과정들을.

부산국제영화제는 20년 동안 영화인들의 열정과 관객들의 열정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나같이 가난한 영화인에겐 영화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었고, 좀 더 색다른 재미를 찾는 관객들에겐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영화인과 관객들이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는 20년 동안 열정을 증명해왔다. 앞으로 축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그래서 내 아이와 함께 손잡고 영화제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동명 감독은 누구?

1977년생인 김동명 감독은 실험영화 <차원의 정의>(2002)로 연출을 시작했다. 단편 <전병 파는 여인>(2007)으로 제9회 전주영화제 한국비평가주간 감독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를 비롯해 <피로> 등이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김꽃비, 전신환이 주연을 맡은 <거짓말>(2014)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해당 영화는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
[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
[⑮ 홍석재] 영화제는 꿈! 꿈은 결코 당신 마음대로 꿀 수 없다

[⑯ 정윤석] 서병수 시장님, 성수대교 참사 유가족이 제게 묻더군요
[⑰ 민용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를 기어코 베려 한다면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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