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밴드 오디션 TOP 밴드 "토요일엔 드라마보다 탑밴드!"를 외치며 진행을 맡은 이지애 아나운서.

▲ 서바이벌 밴드 오디션 TOP 밴드 "토요일엔 드라마보다 탑밴드!"를 외치며 진행을 맡은 이지애 아나운서. ⓒ KBS


돌이켜보면 올 한해는 가히 록 음악의 부활을 선포한 일 년처럼 느껴진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 장기 출연하며 공중파 무대를 상당히 오래 시끄럽게 했던 YB밴드부터 돌아온 록의 전설 임재범 그리고 자우림. 그동안 아이돌 음악이 군림해온 대중음악 장르의 획일성에 이들이 균열을 일으켰다면, 신인밴드를 발굴하는 KBS의 밴드 서바이벌 < TOP 밴드 >는 아예 반란과 전복을 꾀했다.

인지도 있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나는 가수다>와 다르게 < TOP밴드 >는 초반부터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방송을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어가며 실험성과 실력을 겸비한 밴드를 발굴해내는데 성공했다.

아시아 록 밴드들의 무대에서 정상을 차지했음에도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던 브로큰 발렌타인은 물론, 실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게이트 플라워즈와 아이씨 사이다 등 수많은 팀들이 우승자만 주목받곤 하던 서바이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한국 헤비메탈의 전설' 백두산도 다시 활화산이 되다

 고교생 밴드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일본의 음반 기획사로부터 앨범제작 제안까지 받은 엑시즈.

고교생 밴드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일본의 음반 기획사로부터 앨범제작 제안까지 받은 엑시즈. ⓒ TOP 밴드 우리김씨님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동안 방송에 보이지 않았던 김도균과 신대철이 코치로 나서면서 이들의 존재감까지 함께 급상승했다는 것이다. 때맞춰 김태원, 김도균, 신대철 3대 기타리스트를 다룬 MBC의 특집방송까지 만들어지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김도균의 경우엔 낡은 차를 몰고 분식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모습에서 젊은 날 록의 본고장 영국을 오가며 세계무대를 두드리던 야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팬들이 붙여준 보살이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던 그에게서는 온화함과 더불어 그동안 순탄치 않았을 긴 세월을 견뎌 온 깊이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져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사실 김도균이 속한 밴드 백두산의 음악은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전설로 불리지만 새벽 시간대의 라디오에서나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오래전 보컬 유현상의 음악노선 변경으로 인해 장기간 활동하지 못했던 이들이 재결합 했음에도 아이돌 음악이 대세가 되어버린 매스컴에선 큰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것이다.

"요즘, 아니 이제야 백두산이 살아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앞이 캄캄했던 3년 전...우린 할 수있다. 아니,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 의지, 열정, 정신으로 달려왔습니다. 연습 또 연습...나는 요즘 행복합니다." (유현상)

보컬 유현상이 합류하고 발매된 4집과 5집 앨범을 통해 들려지는 강력한 사운드는 백두산이 전설이라는 것에 과연 공감하게 만든다.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보컬 유현상의 시원한 샤우팅 창법과 함께 웅장함과 박력을 갖춘 스피디한 곡 전개는 듣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단순한 가사가 완성도 높은 치밀한 연주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반말마'라는 곡은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서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을 전해준다.

<백두산> 기타리스트 김도균 백두산은 최근 '나는 전설이다' 콘서트 투어 중이다.

▲ <백두산> 기타리스트 김도균 백두산은 최근 '나는 전설이다' 콘서트 투어 중이다. ⓒ 경호진(백두산 베이시스트)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대부분을 피나는 연습으로 채웠다는 이들이 재결성 후 2년이나 넘는 기간을 조용히 지내다가 이제는 공중파 예능에까지 나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요즘 백두산의 팬 카페엔 나이 50을 넘긴 록커의 거침없는 샤우팅에 매료된 젊은 팬들이 대거 가입해 활동 중이어서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탄력까지 더해주고 있다. 현재 백두산은 '나는 전설이다'라는 타이틀로 13일 펼쳐질 부산 공연을 준비 중이다.

한편으론 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가 달아오르는 요즘 불현듯 과거 크라잉 넛이 중심이 되어 홍대를 거점으로 삼았던 인디밴드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음악성을 논함에 있어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음악은 매우 중요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홍대를 중심으로 했던 인디밴드들은 대한민국 음악의 실험성과 다양한 발전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것이고. 그런데 그들이 어느새 주춤하더니 시청자들의 화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면에서 사라지자 젊은 예술인들이 몰려들었던 홍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이 스며든 유흥가로 변질되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올해 방송에서 유독 록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돌아온 록커 임재범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밴드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높아진 것일 수도 있다. 백두산의 예능 출연 역시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때마침 준비해놓은 밥상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식으로 관심의 대상이 옮겨간 것이라면 이건 너무 수동적이다. 방송국이 기획하고 전파를 통해 화면에 보여주는 내용들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에. 생각해보면 이 땅의 록 음악은 폭력적인 정권에 의해 숨죽였고 기획사들의 돈벌이에 의해 움츠러들었다.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던 음악인들의 증언을 통해 험난했던 대한민국 록의 역사를 돌아본 방송이었다.

▲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던 음악인들의 증언을 통해 험난했던 대한민국 록의 역사를 돌아본 방송이었다. ⓒ MBC 방송 화면 갈무리


한순간이나마 들려온 록 음악을 통해 잠자던 야성과 본능의 전율을 느꼈다면 그대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록 음악은 스스로 찾아 나섬은 물론 지켜낼 필요가 있다. 잊혀져있던 전설적인 밴드를 다시 떠올리는 것도, 놀라움을 선사할 새로운 밴드를 발굴하는 것도 결국엔 우리들의 몫이다.

미디어가 만들어주는 프레임을 깨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 팬들이 찾아가 귀를 열기 시작하면 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 거침없는 록의 질주와 환희 속에서 쓸데없는 고민들은 모두 다 날려 버리자. 백두산, 게이트 플라워즈, 톡식, POE...그 외 누구라도 좋다.

록 음악 백두산 TOP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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