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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 고지전의 은유

한국의 분단 전쟁영화는 강제규 감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국가라는 거대권력 앞에 던져진 힘없는 개인의 비극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쉬리 이후니까.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라던지 실미도,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왜'라는 물음을 반복해서 던졌다. 이데올로기 따위에 관심도 없던 평범한 소시민들이 이유를 모르고 희생당했던 전쟁에 대해서 이제는 설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물음은 쉬리 이후 십년이 넘도록 계속 진행 중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답 없는 물음이 메아리치고 뜨거운 회한만이 반복적으로 변주된 것이 쉬리 이후의 분단 전쟁영화들. 고지전 역시 이러한 연장선 위에 있다.

하지만 휴전 상황 직전까지 이어진 마지막 전투를 소재로 삼은 것은 신선한 접근이라 할 만하다. 더군다나 이전의 작품들에서 쉽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은, 이제는 종전을 선포해야 된다는 강렬한 확신이었다.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언제 이 고통의 마침표가 찍힐 것인가.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언제 이 고통의 마침표가 찍힐 것인가.
ⓒ TPS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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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정서로 일관해오던 분단 소재의 틀을 깨고 같은 민족임을 환기시킨 영화가 쉬리였다면 고지전은 의미 없는 대립의 끝을 갈망하는 영화다. 또한 이 작품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더 있다. 극의 중후반, 악어중대가 파도처럼 몰려올 중공군들을 기다리며 매복한 장면은 생생한 공포를 안겨준다. 정말로 무서웠다. 여타의 전쟁영화들과 다르게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그 공포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뻔히 보이는 고통을 눈앞에 두고 느껴지는 두려움. 그것은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들과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요즘 일상에서 접하는 소식들을 좀 보라.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와 빈부격차, 청년실업과 내수시장의 불황, 그리고 수많은 우려를 무시하며 채결된 한미FTA. 하루하루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식들을 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일상이다. 뻔히 다가올 재앙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속 공포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느끼는 불안들과 절묘하게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람쥐가 따로 없지 않나. 1950년대의 상황과 2000년대의 상황이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쳇바퀴를 형성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청산되지 못한 것은 친일파들만이 아니다. 분단 상황에 개입하던 주변국들은 이제는 총칼 대신 대한민국의 경제를 새로운 수단으로 쥐고 있다. 한국전쟁당시 희생된 양민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비참한 노동환경 속에 그대로 투영 되고 있다.

억눌린 아우성, 한 세기를 건너온 시대유감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종사자보다 더 많은 인구가 서비스, 감정 노동 분야에 속해 있다고 한다. IMF이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사실 취업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수많은 장벽들과 마주하게 된다. 연령이나 성에 따른 구분, 학력과 경력 등.

그러한 장벽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종들 상당수가 파견회사 소속의 비정규 감정 노동들이다. 은행이나 카드회사 같은 금융권 전화 상담원들과 대형마트 직원들이 대표적인 예로, 취업은 쉬운 편이지만 문제는 노동환경이다.

지난 11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업주와 소비자의 감정 노동자 인식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감정노동자의 정신적인 고통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이미지에는 찰리 채플린이 1936년 출연한 영화 '모던 타임즈'까지도 연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구한다는 말은, 적재적소에 딱 들어맞는 부품을 찾아 끼우기 위해서라는 것과도 비슷하다. 톱니바퀴에 끼워진 채플린처럼, 인간은 자본의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오늘날엔 공장 노동자 못지않게 감정 노동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톱니바퀴에 끼워진 채플린처럼, 인간은 자본의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톱니바퀴에 끼워진 채플린처럼, 인간은 자본의 몸집을 부풀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 영화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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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보고서에 언급한 대표적 감정 노동직군인 전화 상담원은 그 시작이 195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선거운동에서 처음으로 전화를 이용한 홍보가 시작됐지만, 결국엔 기업의 세일즈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반적인 방문 판매나 광고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저렴한 비용으로 회사의 수익을 창출해낸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전화 상담원이라는 직업은 기업의 이윤추구 문화 속에 자리 잡아 왔다.

그렇지만 전화 상담원들이 성희롱과 언어폭력의 공포에 매일같이 시달리며 받아가는 일반적인 임금은 대략 90만 원에서 최대 160만 원 사이라고 한다. 특히 금융권의 경우엔 일반사무직보다 임금이 6분의 1 정도로 적었다.

이번 인권위의 감정 노동자 실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3.2%가 콜센터 업무 수행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들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걸리더라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산재보상을 해주지 않음은 물론이고, 애초에 노조가 없어 권리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예전에 모 은행 카드사 전화 상담원으로 일했던 A씨는 야근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노동부에 민원을 넣고도 팀장의 압박으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단다. 시간 외 수당이나 기타 야근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업무 중 쉴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용변과 흡연 등 개인적인 볼일은 5분 이내에 해결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 눈치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환경 때문일까. 전화 상담원들이 근무하는 콜센터를 찾아가보면 직원들의 표정이 대체로 어두운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직접 전화를 걸거나 받지 않는데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상담원과 고객의 통화 내용을 모니터링 하는 업무 담당자들이었다.

"상담원들 통화가 짧으면 2분에서 길면 1시간짜리도 있어요. 초고속 모드로 정신없이 들어야만 목표 달성하고 집으로 가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보통 100여 건 정도를 들어요. 그렇게 있다가 집에 가면 정신이 멍해요."

"자다가도 놀라서 깨요. 악몽 꾸다가 잠꼬대로 욕한 적도 많고, 비명을 지를 때도 많아요."

이들의 경우 주5일 동안 일하는 상담원들과는 달리, 검사를 기다리는 통화녹음 개수에 따라 주말 휴일까지도 반납하고 있었다. 전화 상담원들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에다가, 추가적인 압박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녹음된 통화 내용을 듣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고객의 목소리에 놀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무직 노동자보다도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그들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의 최전선에서 이렇게 고되게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 앞에 던져진 감정 노동자들의 절규는 지금도 억눌린 아우성이 되어 맴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위의 가이드라인 발표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감정 노동자 인권 개선을 위한 몇 가지 방안 중에 소비자들을 향해 캠페인을 전개하겠다는 것은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느닷없이 걸려오는 광고 전화에 항상 존중과 배려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음은 인권위 가이드라인을 보도한 어느 기사에 달린 추천 수 상위 댓글들이다.

"제발 광고 전화 좀 하지 마라, 부탁이다." -ㅇ콩
"근데 갑자기 전화 와서 관심 없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고객님하고 끊어야지...
자꾸 귀찮게 상품 가입하라고 하네요. 이러지 말아주세요." -난나ㅇㅇㅇ

문제는 소비자가 싫어하는 최악의 마케팅 방법을 단지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선호하는 기업들에 있다. 그들은 사람이, 노동자가 어떠한 고통을 받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감정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보라. 인간의 마음에 어떠한 상처가 생기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자본의 얼굴이 보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한 세기가 넘도록 인간을 도구로 삼아온 자본주의 사회의 악순환 가운데 하나다. 시대적인 유감이고 슬픔이다. 이 비참한 현실에 찍을 마침표가 필요하다. 결국 감정 노동자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선 강력한 정책을 통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다. 남북 관계처럼 노동문제에서도 아직 지난 세기의 아픔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는 현재 고지전에 돌입한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러시앤캐시', '웰컴론' 등 대부 업체를 이용하셨다가 곤란을 당하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태그:#감정 노동자, #국가 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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