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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김연아 IOC 위원 추대 운동 홈페이지'
 문제의 '김연아 IOC 위원 추대 운동 홈페이지'
ⓒ '김연아 IOC 위원 추대 운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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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9일, 인터넷에서는 '김연아 IOC위원 추대운동 홈페이지'가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한 해외 누리꾼이 김연아 선수를 IOC 위원 추대하자는 내용의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온라인 찬반투표를 진행했다는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김연아 IOC위원 추대운동 홈페이지'(www.kimyu-na.com)라고 명명된 이 사이트는 '김연아 선수가 IOC위원이 되는 데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내걸고 누리꾼들의 찬반투표를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연합뉴스>에서 29일 오후 첫 보도를 낸 이후, 관련 소식은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졌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매체에서 관련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쏟아진 기사 덕분에 관련 홈페이지는 관련 투표 설문이 수천 건을 넘어설 정도로 호황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다분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적 모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홈페이지 한켠에 "우리가 사랑하는 김연아 선수도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정성으로 어려운 이재민들을 돕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계좌번호가 있는 점은 의혹을 키웠습니다.

홈페이지 개설자 '토마스'가 정말 외국인이 맞는지도 아리송했습니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계좌의 예금주는 '이재민'으로 이름 붙여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계좌도, 해외가 아닌 국민은행 계좌였습니다.

"김연아를 IOC위원으로"... 의심스러운 홈페이지

31일, 김연아 선수는 IOC 홈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보도는 이런 것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31일, 김연아 선수는 IOC 홈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보도는 이런 것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 IO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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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홈페이지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언론에서 언론으로 계속 '받아쓰기'를 이어갔습니다. 별도의 사실 확인 절차 없이 선행 보도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기사를 확대 재생산한 것입니다.

첫 기사를 쓴 <연합뉴스> 신아무개 기자는 이번 기사를 취재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순진히 흥밋거리로 생각해서 취재했다. 하지만 사실 여부가 확실치 않아, (오스트리아인인지) 확실치 않다는 뉘앙스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나중에 (홈페이지 폐쇄)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신아무개 기자는 관련 내용을 흥밋거리 기사라고 판단해 취재를 했지만, 사실 여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기사는 일파만파로 퍼져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무엇보다 사기성이 다분했던 관련 홈페이지가 별 제제 없이 오후 8시까지 운영되는 촌극이 빚어졌습니다.

사실 검증 없는 언론의 홍보(?) 덕분에, 문제의 사이트는 불과 반나절 만에 수천 명이 찾은 인기 홈페이지가 됐습니다. 혹 계좌번호로 돈을 송금한 피해자가 없을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블로거만도 못했던 언론, 받아쓰기가 빚은 촌극

김연아 선수
 김연아 선수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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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언론은 제 역할을 잃었습니다. 언론들이 '김연아 IOC위원 추대운동 홈페이지'를 연이어 보도할 때, 어느 언론 하나 먼저 나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일부 블로거와 피겨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상업적 이용 의도가 다분한 홈페이지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기사 댓글을 통해 다른 누리꾼들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정확한 팩트나 논거 없이, 이번 사태가 '김연아 선수에게 악영향이 갈 것이다'라는 뉘앙스로 적반하장식 보도를 하는 언론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날 오후 들어, 김연아 선수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올댓스포츠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해, "관련 홈페이지가 폐쇄"됐다는 소식을 전함으로써 촌극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기사를 사실을 믿은 누리꾼들과 피겨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 선수가 애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했던 언론의 사과나 정정보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가 보도자료를 보낸 후에야, 관련 홈페이지 폐쇄 소식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또 한 번 씁쓸함을 갖게 했습니다. 30여 개 넘는 언론사가  올댓스포츠의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해 '받아쓰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받아쓰기 O 기자'라는 오명, 이제는 벗자

2010 동계 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챔피언 김연아
 2010 동계 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챔피언 김연아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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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확인 절차 없이 선행 보도와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언론들의 모습은, 현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단면입니다. 속보 경쟁 속에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앞선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내는 모습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합니다.   

결국 이런 관행이 굳어져 '받아쓰기 언론'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 아닌지, 자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더 이상 '받아쓰기 O 기자'라는 오명을 듣지 않기 위해 기자 스스로의 권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정확한 사실 보도'만이 기자의 권위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누리꾼들과 2010 동계 올림픽 피겨 챔피언 김연아 선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태그:#김연아, #받아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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