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턴과 봉사활동 경력, 공인영어를 포함한 자격증, 공모전 수상경력, 어학연수 등등…. 엄마 친구 아들로 불리는 '엄친아'의 스펙이 아니다. 201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들에게, 끊임없이 구직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조건'이다. 특히 어학연수는 최근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잡코리아가 지난 6월 직장인과 대학생 3, 4학년 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2.4%가 '필수는 아니지만 여건이 된다면 어학연수 다녀오는 것이 좋다-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에서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어학연수의 실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10월말부터 11월말까지 여러 번에 걸쳐 이뤄졌다. - 기자 말

밴쿠버는 어학연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
 밴쿠버는 어학연수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해군 장교(학군단) 전역 후 곧바로 취업하기보다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군 복무할 당시 모은 돈을 보태 필리핀 세부를 거쳐 캐나다 밴쿠버에 왔죠."

오전 8시 30분. 학원 등굣길에서 나경엽(25)씨가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필리핀과 비교해 캐나다는 학원에서만 영어 실력을 쌓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에 온전히 맞춰주는 필리핀 학원과는 달리 이곳은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특정인에게 맞춰주지 않는 환경에서 서로 완전하지 않은 영어를 쓰죠. '거리에 영어를 쓰는 현지인이 저렇게 많은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학원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는 현재 토플반을 수강 중이다. 나씨는 "토플 점수가 필요하진 않지만, ESL과정(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들어보니 다소 느슨한 느낌 때문에 토플을 듣고 있다"며 "토플은 말하기·듣기·쓰기·읽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학연수생들의 점심은 대부분 간단한 도시락 또는 샌드위치다.
▲ 연수생들의 점심 어학연수생들의 점심은 대부분 간단한 도시락 또는 샌드위치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나씨의 어학연수 비용을 정리해봤다. 한화로 환산(1CAD당 한화 약 1100원)하면 약 250만 원이다.
 나씨의 어학연수 비용을 정리해봤다. 한화로 환산(1CAD당 한화 약 1100원)하면 약 250만 원이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오전 11시 45분, 학원 점심시간.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싸준 햄과 치즈뿐인 샌드위치를 입속에 넣는다. 한창 식욕이 왕성할 나이인 나씨에겐 턱없이 배고픈 점심이다. 오후 2시가 되면 정규수업이 끝난다. 그러나 파워 프로그램(방과 후 강의)을 신청한 나씨는 오후 4시가 돼서야 학원 밖으로 나온다. 대부분 학원과 집만 오가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오후 5시. 저녁을 먹은 후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과제를 하면 하루가 끝나죠. 연수 초반에는 외국인 친구들과 돌아다니기 바빴죠. 그런데 한국·일본을 제외한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체류기간이 짧더라고요. 친구를 떠나보내고 또 만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러한 과정이 다소 피곤하게 느껴졌어요.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 외국 친구들은 공부와 경험 중 여행을 포함한 경험에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나는) 큰돈을 들여왔고 돌아가면 바로 취업 준비해야 하는 입장인데…. 놀러 다니다 보면 마음이 편하진 않죠."

"자격증을 따기 위한 어학연수가 돼서 서글프다"

김씨가 다니는 학원 전체 수강생 중 80% 이상이 한국인이다.
 김씨가 다니는 학원 전체 수강생 중 80% 이상이 한국인이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오전 11시 50분, 24살인 김은주씨의 테솔 디플로마(수료증의 일종) 수업이 막 시작됐다. 김씨가 다니는 학원의 ESL과정은 4반(Basic3, Intermediate 1, 2, 3)과 5개의 디플로마 과정(TESOL, 통번역, Teaching Knowledge Test, Business, Power Speak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시절, 일문학과 아동복지학을 전공한 김씨는 지금 어린이 테솔 과정을 듣고 있다. 그가 굳이 어린이 테솔 과정을 듣는 이유는 "똑같은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영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자격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우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하는 지역 소재 리조트에 취업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이내 실망감을 맛봐야 했다.

"부대시설 수영장 안내데스크에 배치됐어요. 원하는 곳이 아니었죠. 의아했어요. 졸업학점도 괜찮았고 일본어에 대한 자신이 있었거든요."

김씨의 JPT(일본어 능력 시험) 점수는 750점이다. 그런데, 원하는 곳에 배치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공인영어 성적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됐다. 김씨는 "사회에 나와 보니 제 2외국어(일본어)만으로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은주씨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습을 위해 준비한 자료들.
▲ TESOL 실습자료 김은주씨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습을 위해 준비한 자료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김씨는 출국 전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의 6개월치 수강료(디플로마 과정 포함)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6개월 과정에 약 400만 원이에요. 밴쿠버에서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고 들었어요. 나름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했었는데 한국인 비율이 80%가 넘더라고요. 국내에서 회화학원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허탈하게 웃던 그는 학원에 남은 기간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이러한 부분에 대한 언급(수강신청 후 환불 불가) 후 김씨가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꼼꼼하지 못했던 그의 잘못이었다.

최근 디플로마를 취득한 김씨는 12월에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다시 필리핀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제주에는 관련 학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울로 가야 하는데, 생활비를 포함해 계산했을 때 서울과 필리핀 연수비용이 별반 차이가 없더라는 것. 결국 자격증은 땄지만, 김씨의 얼굴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격증을 위한 어학연수라는 느낌이 들어 서글프다"라며 "배우는 것들 되게 많은데…, 점수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수치로 나타내야 하지 않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귀국 직후 공인영어시험에 응시할 계획이다. 단기간에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졸업하고 뭐했냐고 물을 텐데 '공인영어에 전념했습니다'라고 할 순 없잖아요.(웃음) 게다가 여자 나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요.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을 구했고, 어학연수 다녀왔다고 주변의 눈은 높아져 있을 텐데 부담되죠."


'외국인과 소통'하고 싶었던 청년, 벽을 느끼다

식탁에는 참치 통조림과 콩나물 국이 전부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대부분 이렇게 저녁을 해결한다.
 식탁에는 참치 통조림과 콩나물 국이 전부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대부분 이렇게 저녁을 해결한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오후 7시, 저녁을 먹는 정윤구(24·가명)씨 식탁에는 반찬이라곤 콩나물국과 참치 통조림이 전부였다. 나씨와 김씨처럼 어학연수를 위해 캐나다로 온 정씨는 홈스테이를 나와 한국인 여자 1명, 남자 2명과 쉐어(공유)를 하는 집에서 살고 있다.

"홈스테이 비용(한달기준 750CAD, 한화 약 80만 원)이면 충분히 먹고 싶은 것 먹고 좀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그는 거실 쉐어비로 한 달 400CAD를 지불한다. 식비는 애초에 200~300CAD 대를 예상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외식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생활 패턴도 망가졌다. 정씨는 "잠들 시간에 이야기하다가 시계를 보면 종종 새벽 3시다"라며 "한국인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왜 이렇게 재밌는지... 홈스테이에서 나온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외국인과 말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몇 살이야, 어디에서 왔어…에서 한발자국 더 나가고 싶었죠.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고 싶었어요."

정씨가 캐나다에 온 목적은 외국인과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문화차이'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었다고 한다.

"두 걸음 다가가면 한걸음 다가오는 느낌이에요. 6월에 온 후 첫 3개월은 열정을 가지고 살았어요.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한국어학과 교수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죠.(웃음) 외국인과는 서로의 발음과 정서를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이러한 과정 속에 끝까지 내 옆에 있는 외국인은 많지 않아요. 토익이나 테솔 같은 자격증 준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여기까지 와서 저걸 해야 하나 싶다가도 오죽하면 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나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토익 책을 들고 도서관에 몇 번 가기도 했는데 그러다 말았어요.(웃음)"

커텐은 거실과 방 거주자의 사생활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커텐은 거실과 방 거주자의 사생활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 장은수

관련사진보기


귀국을 한 달 앞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는 정씨의 노트북에는 한국 TV 프로그램이 가득했다.

"반복된 패턴에 딱히 흥미를 유발하는 일도 없어요. 날씨도 추워지고, 비도 자주 와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어학연수 전에는 예쁜 해수욕장이라든지 화려한 파티가 떠올랐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희망을 키우러 바다를 건넌 청춘들이 마주한 것은 '환상속의 그대'가 아닌 한국의 치열한 현실이었다. 지난 3분기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유학연수 지급액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환율상승에도 13억5500만 달러를 기록했고, 토익·토플 등 외국어 시험 응시료로 잡히는 교육서비스 지출액은 3분기에 5770만 달러에 이르렀다.


태그:#어학연수, #밴쿠버, #어학연수 르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