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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태연'(가명)씨. 갑작스런 인사에 적잖이 놀랐을 겁니다. 어쩌면 제가 누군지도 모르기에, 그 당황스러움이 더욱 클 것 같습니다. 제 소개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지난 10월 23일, 당신이 분노했던 현장에서 뜨거운 '외침'을 목격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너무 경황이 없었고, 충격도 컸기에 그 흔한 이름도 묻지 못했네요. 그렇기에, 그냥 '태연'이라는 가칭을 붙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사실, 인사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당신에게 이런 편지 글을 쓰는 것이 사실 조금 쑥스럽습니다. 그래도 11월의 마지막에, 이렇게 낯간지러운 편지를 쓰는 이유는 11월 23일 당시 '태연'씨의 외침이 너무 또렷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당신에게 감사 인사를 보냅니다.

젊음의 분노, 당신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지난 11월 22일 기억하시죠? 그날 국회에서 FTA 비준안이 야당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돼 많은 이들이 분노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소위, 의석수만 믿고 국민을 무시하는 여당의 행태는 젊은 제게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를 더욱 당황케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23일, 대전의 한 대학에서 박근혜 의원의 특강이 열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한 다음날,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가 버젓하게 지성의 총체인 대학에서 특강을 한다는 그 '용기'가 놀라웠습니다. 분명 많은 젊은이들의 분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요. 박근혜 의원의 특강이 열리던 날, 분노했던 젊음의 수는 너무 초라했습니다. 불과 10~2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죠. 아마,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초대를 한 것이기에, 반대하는 젊음의 수가 적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수백 명에 달하는 관람객 틈에서, 불과 십수 명의 젊음은 약하고 무디어 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촛불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태연'씨를 봤습니다. 연한 촛불 속, 강한 들불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국민 건강 팔아먹는 의료 민영화 절대 반대!'

피켓을 들고, 조금은 수줍게(?) 시위를 하는 한의대생들 사이로, 누구보다 크게 목이터져라 분노를 표하는 당신. 저 같으면, 수많은 카메라에 지레 겁먹을텐데 당당한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젊음의 분노를 목격하는 순간이었기에, 제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젊음의 불씨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희망을 발견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태연'씨, 스테판 에셀이 봤다면 웃었을 것입니다

특강을 위해 입장하는 박근혜 의원
 특강을 위해 입장하는 박근혜 의원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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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의 시위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을지 모릅니다. '태연'씨와 동료들의 반대 시위는 불과 십수 명에 불과했지만, 박근혜 의원의 특강을 들으며 박수를 치는 관객은 수백 명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태연'씨의 분노와는 달리, 또다른 세계가 강연장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죠. 그렇게 '내 마음속의 사진'이란 주제로, 특강을 이어간 박근혜 의원, 능숙한 사회자는 학생들의 추천을 제일 많이 받은 질문들을 박근혜 의원에게 던졌지요. 그 중, 한 질문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의원님, 조카 은OO씨를 자주 만나나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그 질문을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젊은이의 질문이라곤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우리 대학을 부실 대학에서 빼주세요'라는 질문에도 한 숨이 나왔지만, 이것은 애교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질문, '의원님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은 적잖은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대권에 도전해 펼칠 미래상하고도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장내에 모인 젊은이들은 차기 대권주자의 말을 훈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보며,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태연'씨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자신이 믿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원천이 '세상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미소를 잃지 않는 박근혜 의원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사회자에 아랑곳없이 'FTA 반대 질문'을 이어가는 한의대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분노를 발견한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혹 스테판 에셀씨의 <분노하라>를 기억하나요? 90살이 훌쩍 넘은 노투사는 짧은 책의 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깁니다.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라고,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중)

태연씨, 당신의 분노를 스테판 에셀이 봤다면, 분명 껄껄 웃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면,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면 편한 미래가 보장됐을 당신들이, 취업난으로 도서관에만 박혀있어도 모자랄 젊은이들이 세상을 향한 분노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냅니다.

잃지 마세요 그 분노, 기억하세요, 2012년 4월 11일

FTA 반대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
 FTA 반대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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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씨, 지금은 너무나 적은 수의 분노이기에, 때로는 힘들고 고달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FTA 반대'에, 잃어야 할 것도 많기에 쉽지 않은 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은날의 그 분노를 부디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힘이 들때면 생각하세요. 많은 젊은이들이 '태연'씨와 같은 분노를 갖는다는 것을,

서울은 이미 뜨겁습니다. 서울 시장 선거때의 젊은 층의 놀라운 투표 열기가 이를 반영합니다. 젊은층의 열기는 작은 기적을 일궈냈지요.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듯 보입니다. 지난 11월 30일에도 서울은 FTA 반대의 '분노'를 외치는 열기로 뜨거웠다고 합니다.

의식의 변화, 분노의 일반화. 서울에 사는, 제 친구들도 요즘 변화고 있습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먼저 정치에 관해 궁금증을 던집니다.

안타깝게, 아직 대전에는 그 열기가 전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구는 어떤가요? 부산은 여전히 차가운가요? 공고한 세상이지만 '태연'씨와 같은 젊은이들의 분노가 꺼지지 않는다면, 대전에도, 대구에도, 어쩌면 부산에도 뜨거운 분노가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태연'씨, 젊음을 부끄럽지 않게 한 태연씨와 친구들의 외침 덕분에, 그동안 무덤덤했던 저도 조금씩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릇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갖습니다. 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2012년 4월 11일까지, 더 나아가 2012년 12월 19일까지 이 신념을 간직할 생각입니다. 

'태연'씨. 분노를 잃지 않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태연'씨도 용기 잃지 마세요. 저는 젊은 당신의 분노에서 희망을 봅니다.


태그:#FTA 반대,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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