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생회장을 하면 1000만 원을 드립니다. 많은 교육대학이 연말이면 학생회장을 모시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그 와중에 10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학생회장을 하면 1000만 원을 드립니다. 많은 교육대학이 연말이면 학생회장을 모시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그 와중에 10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700만 원! 아무도 없나요?"
"800만 원!…"
"900만 원에 과제 무임승차, 실습학교 우선 지정권까지 얹습니다."

"네. 그럼 아무개 학우가 과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일까. 경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마지막 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이 대학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 내용은 서울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A교육대학교(교대)에서 10월 초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매년 10월경 전국 교육대학교 과학생회장 선출시기가 되면 상당수 교대에서 밤마다 마주치는 광경이기도 하다.

300만~1000만 원 걸려있는 교육대학교 과학생회장 자리

교육대학교 과학생회장은 보통 3학년이 맡는다. 과학생회장 선출은 내년에 3학년이 되는 올해 2학년 학생들이 모여 선출한다. 일반대학교에서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학생회장을 맡지만 교육대학교는 과학생회장 기피가 심해 아무도 회장을 맡지 않으려다 보니 누군가 회장으로 뽑힐 때까지 무기한 토론에 들어간다.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회장을 지원하면 훈훈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회장 선출은 대개 밤늦은 시간에 시작하는데 오후 9시나 10시에 시작한 선출이 날을 새고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날을 새고도 못 뽑으면 다음 저녁에 다시 모인다. 다시 날을 새고도 못 뽑으면 다음에 또 모인다. 이런 방식으로 누군가 회장으로 나올 때까지 토론이 계속된다. 처음 선출을 시작할 때 좋게 끝나기를 기대했던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밤을 새는 상황이 지속되면 단지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이때부터 과학생회장직에 조건이 붙기 시작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붙는 조건들로 조별 과제 무임승차, 교생실습학교 우선 지정권 그리고 돈이 있다. 기타 조건으로 회장이 연애할 때까지 무한 제공되는 소개팅이나 학생들이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다짐 등이 있지만, 이는 큰 사항이 아니다. 회장직에 붙는 조건들 중에서 조별 과제 무임승차와 교생실습학교 우선 지정권에는 다들 큰 이견이 없다. 가장 큰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 게 돈 문제이다.

교육대학마다, 학과마다 차이는 보이지만 적게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가까운 금액이 조건으로 붙는다. 이 돈은 소위 '과장 지원금', '학회장 지원금'으로 불리며 해당 과 2학년 학생들이 갹출해서 부담한다. 한 과 인원이 30명인 과에서 900만 원을 과장 지원금으로 책정했다면, 900만 원을 회장을 뺀 나머지 인원으로 등분한다. 한 사람 당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 가량을 내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한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가 대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37만 9000원의 용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이 한 달 동안 쓰는 돈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과장 지원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 미비한 수준이지만 부회장 지원금과 집행부 지원금을 더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할 액수는 증가한다. 학생들은 지원금을 어떻게 생각할까.

"할 수만 있다면 더 싼 값에 '용병'을 사오고 싶다"

지원금 관련 글에 달린 리플들. 회장 지원금을 두고 학생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지원금 관련 글에 달린 리플들. 회장 지원금을 두고 학생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 강유진

관련사진보기


A교대에 다니는 박아무개 학생에게 과장 지원금에 대해 묻자 "회장 선출이 끝난 뒤 다른 과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주고 회장을 시켰나 싶었다"면서 "할 수만 있다면 더 싼 값에 '용병'을 사오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박아무개 학생은 "처음부터 회장을 이렇게 경매하듯이 선출하진 않았을 텐데 돈을 주고 회장을 뽑는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궁금하고, 학교에선 지원금 문제에 개입할 생각이 없는 건지도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B교대에 다니는 김아무개 학생은 "지원금이 500만 원인 과도 있고 900만 원인 과도 있는데 회장이 하는 말이나 활동에 돈이 매겨지는 기분이다"라며 "ㄱ과 회장이 활동하는 데 활동비로 500만 원을 받았고 ㄴ과 회장님은 900만 원을 받았는데 ㄱ과 회장님이 ㄴ회장님보다 많은 활동을 할까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C교대 총학생회장은 "처음에는 회장 하는 일이 힘드니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5만 원 정도 모아서 좋은 마음으로 줬던 게 지금은 회장 지원금이 없으면 과 회장을 뽑기 어려울 정도까지 왔다"면서 "지원금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 과회장들도 문제가 있겠지만, 교대 임용 시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시간을 빼앗기는) 회장직에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된 상황이 문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종의 피해보상금" - "바람직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 있어"

반면에 회장 지원금을 교육대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반대와 교육대를 무조건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대다수 학생들의 의견도 "할 일이 많은 교대인데 아무도 회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많은 금액으로라도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에 무게가 실렸다.

D교대 총학생회장은 "일반대학교에서 과회장을 하면 입사할 때 경력으로 쳐주는 게 있지 않으냐"면서 "교대는 모든 사람이 임용고시를 치니까 회장을 해도 메리트가 없어서 사람들이 피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D교대 회장은 "과장 지원금을 일종의 피해보상금이라고 생각한다"며 "회장이 많은 시간을 학교 활동에 소모하는 동안 일반 학생들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지원금이 시간 대비 금액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교대 총학생회장은 "아무래도 일반대 과회장과 달리 교육대 과회장은 매년 임용 TO(정원)투쟁과 교육투쟁이 있어서 자신의 성향에 안 맞는 일도 해야 하니까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사람들이 자꾸 안 하려고 하다 보니 보상으로 과장 지원금이 생긴 것 같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 도중 만난 A교대에 다니고 있는 이아무개 학생은 "회장 선출 당시 지원금을 주는 것에 반대했다"며 "하지만 돈을 안 받고 하더라도 회장 활동을 하는 1년이란 시간이 당사자에게는 분명히 많은 것을 남기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더라"고 말했다.

11월 말에서 12월 초는 현재 과회장과 집행부가 후배들에게 과학생회를 넘겨주는 시기이다. 졸업 후 가장 순수한 시기의 인간과 만날 예정인 교대생들이라면 조금은 이상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현재 한 대학당 1~2학과, 서울교대는 절반 정도의 학과가 지원금을 받지 않고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학교 졸업자 대부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지망하는 교육대학교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만일 당신이 담임하는 반 학생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반장 선거를 진행하면 당신은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하겠는가.

교육대학 과학생회장 선출 천태만상
#1. A교대 한 과에서 과학생회장 지원금으로 1년에 1200만 원이 채택되었고 학생 개인 부담금은 40만 원 선에서 결정되었다. 이후에 학생 한 명이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해당 학생 부모님께서 선출된 과학생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져 물어 1200만 원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2. F교대에서 1년에 5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바라고 과회장에 출마한 학생이 있었다. 그가 빨리 출마하자 지원금이 300만 원 선에서 결정되었고 그게 성에 차지 않았던 학생은 3일 뒤에 과 회장직을 사퇴했다. 이후에 다시 선출 토의를 거쳐 결정된 금액이 600만 원이었는데 그만두겠다던 학생이 재출마했다가 이에 학생들이 반발하자 물러났다.


태그:#교육대학교, #과장지원금, #학회장지원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