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서른 번째로 영화 <콩나물>의 윤가은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2013년 <콩나물> 상영 당시 배우 수안이와 드림팀스탭들과함께. 좌측부터 백현오 촬영감독, 이준일 조명감독, 황슬기 조감독, 나, 꼬마 배우 수안이, 수안이어머님, 김세훈 PD)

2013년 <콩나물> 상영 당시 배우 수안이와 드림팀스탭들과함께. 좌측부터 백현오 촬영감독, 이준일 조명감독, 황슬기 조감독, 나, 꼬마 배우 수안이, 수안이어머님, 김세훈 PD)ⓒ 윤가은 제공


앞서 감독님들께서 부산영화제를 향해 쓰신 절절한 연서들을 읽고 있자니, 과연 저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막 장편을 만들어 아직 공개도 안한 초짜 감독이, 과연 선배 감독님들처럼 강력한 목소리로 용기 내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떤 특별한 경험을 나누어야 그처럼 묵직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사실 저도 2013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아 <콩나물>이란 단편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초청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기쁨, 상영 당시의 흥분과 감동을 다 털어놓자면 아마 몇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거예요.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직 심장이 쿵쾅쿵쾅 뛰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고민 많던 시절에 어떻게든 용기 내어 진심을 다해 만든 영화였기에, 그런 제 마음을 알아봐준 부산에 더욱 깊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요. 어쩜 당시의 감상을 소상히 밝히며 부산영화제에 대한 저의 애정을 고백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겐 이미 그 때의 감동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특별했던 부산에서의 추억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를 만들기 훨씬 이전, 그저 축제를 즐기고자 부산을 찾았던 영화팬 시절엔 더더욱 그랬구요. 그래서 저는 오늘 영화인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영화팬으로, 보통의 시민으로 참여해온 부산영화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큰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축제

 영화 <콩나물>의 한 장면.

영화 <콩나물>의 한 장면.ⓒ 윤가은 제공


축제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난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매해 영화제 라인업이 공개되는 날이면, 우리는 몇박 몇일의 여행 계획을 짤지 고민하며 별 헤는 밤을 보냈습니다. 외국의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가 방문할 조짐이 보이면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구요.

공식 상영스케줄이 나오면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던 때보다 더 치열하게 시간표를 짰습니다. 그렇게 예매전쟁을 치르고 나면, 그간 겪었던 미친 수고와 노력들은 서로간에 마치 무용담처럼 회자되었지요. 아직도 예매 당일의 일화들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부지런 떨며 일찍 나왔는데 이미 예매장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멘붕이 왔던 일, 어떤 좌석에 앉을까 3초 망설이는 사이 벌써 표가 매진되었던 일 등은 사건 축에도 끼지 못했지만요.

영화제가 시작되는 주의 주말은, 부산으로 가는 교통편을 구하느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평소 영화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까지 부산 거리를 배회하다 만날 정도로 모두가 부산으로 몰리기도 했구요. 어떤 해엔 제가 탔던 기차 한 칸이 영화제를 방문하는 팬들로 가득차기도 했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외국인 관광객이 도대체 부산에서 무슨 영화를 하길래 이 난리냐 물었던 게 생각납니다. 그 순간, 저를 비롯해 사방에서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 다가와 각자의 이유를 신나게 설명을 해대는 바람에 오히려 관광객을 혼란에 빠트렸던 것도요.

그리고 우리는 1년 동안 비축해온 체력을 부산에 다 쏟아붓는 심정으로 영화제 기간 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고, 수많은 영화인들을 만났습니다. 하루에 서너 작품을 몰아 보는 기염을 토하며.

체력의 한계를 열정과 의지로 갱신하는 모습을 서로가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극장 앞에 서서 대충 끼니를 때우기도 했는데요. 저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서서 먹을 자리를 찾는 것 자체를 애를 먹는 기이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요.

우리가 왜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부산에 달려들었냐고요? 부산영화제가 우리들에게 영혼과 인생을 흔들어 놓을만한 놀라운 작품들을 선사해 주었으니까요.

우리는 왜?

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다함께 하나의 영화에 숨죽여 집중하면서 함께 웃고, 울컥하고, 감격하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으신가요? 그토록 멋진 작품을 직접 만든 감독과 배우들을 마주했을 때 그 감동이 점점 확장되는 신비로운 체험은요? 새로운 작품이 가슴 속에 깊이 들어와 팍팍했던 일상이 조금은 살아볼만한 것으로 느껴지는 기적의 순간은, 만나본 적 있으신가요?

20년동안 매해 가을, 저는 그리고 우리들은 그렇게 부산에서 수천, 수만 번의 기적을 직접 경험했고, 그래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부산영화제가 끝없는 고민과 노력 속에서, 전세계 구석구석 숨어있는 보석같은 영화들을 기어코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상황과 검열에 흔들리지 않고, 용기 내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영화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우리가 단순히 영화와 영화제를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바로, 전세계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이 부산영화제에 엄청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일지도요.

저는 지금 '우디네(Udine)'라는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극동영화제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시골 마을이 한국 영화들에 보내는 강렬한 애정과 관심에 매일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개막식 날, 사브리나 바라세티(Sabrina Baracetti) 집행위원장은 12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소식으로 첫 인사를 전했습니다. 정치적 외압으로 처한 현재의 어려움을 개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잃지 않고 힘있게 전진하는 부산영화제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우리들과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계속 기적의 순간들을 선사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인이기 이전에 영화팬으로서, 부산을 사랑하는 서울 시민으로서, 그토록 아름답고 특별한 부산의 순간들을 매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축제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온 힘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윤가은 감독은 누구?
 윤가은 감독.

1982년생인 윤가은 감독은 단편 <손님>(2011)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 다른 단편 <콩나물>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한국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 작품으로 윤 감독은 제64회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경쟁 단편영화 부문에 초청돼 수정곰 최우수 단편상을 받았다.

이후 그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가제)이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2016년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에 초청됐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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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민용근]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를 기어코 베려 한다면
[18 김동명] 거짓말 같은... 결단코, 부산국제영화제
[19 이용승] 정치야, 축제에서 꺼져주면 안될까?
[20 김진열] 평범한 시민들이 BIFF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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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용조] 서 시장님, 전 자격 없는 영화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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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유빈] 내게 부산영화제는 직장이었다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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