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열일곱 번째로 <자전거 도둑>의 민용근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제1회 부산영화제 당시 사진.

제1회 부산영화제 당시 사진.ⓒ 민용근 제공


첫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비 50만원에 상영시간 9분. 낡은 캐논 스쿠픽 카메라와 16mm 흑백 필름. 연기라곤 해본 적 없는 친누나와 예비 매형, 촬영 전날 잡아놓은 바퀴벌레를 캐스팅해 만든 <주말>이라는 제목의 단편영화였다. 영화가 완성되고 얼마 뒤,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가 새로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그 곳에 출품했다가 덜컥 상영이 결정됐다.

덕분에 대학 2년생이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호텔에서 잠도 자보고, 아이디카드란 것도 받아봤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던 첫 영화의 첫 상영 날. 내 영화가 남포동 아카데미 극장에서 일반 관객들 앞에 처음 상영될 때, 나는 떨림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숨을 뱉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오줌보는 폭발할 것만 같았고, 뒤통수가 따갑고 간질거리는, 좌석 밑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이 부끄럽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상영 뒤 이어진 남포동 간이 무대에서의 관객과의 대화, 해가 진 뒤 이어진 거리의 술자리. 모든 것이 첫 경험이었던 내게 영화제의 매 순간들은 신기하고 행복하기만 했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 싹을 틔우던 해에, 나 또한 영화라는 신세계에 첫 발을 디뎠다. 1996년 가을의 일이다.

그 후 10년 간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군대에 가고, 방송 다큐를 하고, 회사를 다니느라 영화와 떨어져 살았다. '내가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도둑소년>이라는 단편을 만들었고, 운 좋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10년 만이었다.

그 사이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근거지가 바뀐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무언가를 시작한 친구 같은 느낌은 여전했다. 다만 이제는 훌쩍 커버린 그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주고 있었다. 다시 영화를 시작하기로 했던 다짐은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 후 <혜화,동>이라는 첫 장편영화를 만들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감사하게도 비전 부문 감독상까지 받게 되었다. 함께 첫 발을 내딛었던 친구가 이제는 더욱 크게 자라 내게 그늘을 선사하고 용기를 주고 열매까지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만든 인권 옴니버스 영화와 두 편의 단편 모두 첫 상영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영화를 처음 시작했던 1996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가 영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건 비단 내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제를 통해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추억들 모두 내가 영화제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나는 그 큰 나무 아래서 나의 영화와 나의 삶을 가꾸어왔다. 그리고 그건 나 같은 영화인들 뿐 아니라 영화제를 경험한 수많은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소년일 수 없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혜화,동> 상영 직후 배우들과. 유연석, 유다인(왼쪽부터), 그리고 민용근 감독.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혜화,동> 상영 직후 배우들과. 유연석, 유다인(왼쪽부터), 그리고 민용근 감독.ⓒ 민용근 제공


그런데 언제까지나 크고 단단한 나무처럼 우뚝 서 있을 것만 같던 영화제가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을 앞세워 영화제에 '정치적 개입'을 하려는 이들 때문이다. 최소한의 문화적 소양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부산국제영화제에 가해지고 있는 모든 압력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나는 영화제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선물을 받기만 했던 소년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영화제를 사랑하는 이들 모두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나무가 길어올린 영양분을 먹고 자라난 열매일지 모른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리라 믿었던 그 나무가 흔들리고 쓰러진다면, 그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도 같은 운명일 수밖에 없다. 나무와 열매가 따로 일 수 없기에 우리는 영화제를 지켜야 한다. 아니, 지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작심하고 영화제를 망치려는 듯, 영화제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 장황하게 써놓은 나와 영화제에 얽힌 이야기는 비단 나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 부산국제영화제 안에는 20여 년간 수천수만 개의 위와 같은 인연과 추억들이 녹아있다는 것. 그러므로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한 영화 행사가 아니라 그 수많은 인연과 추억들이 녹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 당신들이 가하고 있는 압력은 그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에 톱을 대겠다면, 우리는 나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것. 그래서 이 소중한 나무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것. 이 말을 나는 분명히 해야겠다.
                                                    
민용근 감독은 누구?

1976년생인 민용근 감독. 부산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그의 첫 단편영화 <주말>(1996)이 바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첫 장편 <혜화,동>(2010)으로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의 초청을 받았다. 당시 그는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옴니버스 인권 영화 <어떤 시선>(2012)과 단편 <자전거 도둑>(2014) 등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⑩ 김대환] 많이 아픈 부산국제영화제야, 내가 너무 미안해

[⑪ 김진도] 부산 뒷골목, 노숙자 같은 남자가 세계적 거장이었다
[⑫ 김진황] BIFF에 대한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⑬ 서은영] 자부산심 : 우리는 부산을 가졌다는 자부심
[⑭ 김태용] 해외영화인들이 계속 묻는다 "BIFF는 괜찮아요?"
[⑮ 홍석재] 영화제는 꿈! 꿈은 결코 당신 마음대로 꿀 수 없다

[⑯ 정윤석] 서병수 시장님, 성수대교 참사 유가족이 제게 묻더군요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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