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봄 전남대 사회학과 수학여행 중 경주 박물관 앞에서 봉산탈춤 기본 춤사위를 선보이는 김선출(전남문화재단 대표)
김선출 제공
당시 강습에 참여했던 김선출(전남문화재단 대표)에 따르면 "광주YMCA가 기획한 탈춤강습 프로그램은 2일간 YMCA 무진관에서 열렸고, 봉산탈춤 전수 조교가 내려와 봉산탈춤 기본기를 가르친 것"이 전부였다.
탈춤강습에 모인 사람은 윤만식을 비롯해 김선출(전남문화재단 대표), 김윤기(전 광주문화재단 대표), 조길예(전 전남대 독문과 교수), 윤성석(전남대 정외과 교수) 등이었다. 이들은 'Y가면극회'라는 임시 모임을 조직하게 된다.
윤만식은 "당시 광주 YMCA 김호준 사무총장이 탈춤을 배울 수 있게 공간을 빌려줘야 하는데, 그냥 이 무대를 빌려줄 순 없고 돈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대여료를 받을 수도 없다 보니, 하나의 써클(동아리)을 만든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무총장이 학생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덕분에 배려를 받게 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Y가면극회'는 1977년 12월 겨울 서울에서 강사들을 초청해 탈춤강습을 열게 된다. 이때 탈춤을 가르치러 왔던 사람이 서울대 문화패에서 활동하던 채희완(부산대 교수), 유인택(예술의 전당 대표), 그리고 홍익대에서 활동했던 김봉준(화가) 등 3인이었다.
이들 세 사람이 광주까지 원정 와서 탈춤을 지도한 것은 놀이패 한두레 덕분이었다. 한두레는 1974년 서울대, 이화여대 탈춤반 출신들을 주축으로 '민족문화연구모임 한두레'로 출범한 대표적인 마당극 단체로 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윤만식은 구술채록집에서 "당시 75학번이었던 조길예(전 전남대 독문과 교수)의 남자친구가 서울대 재학 중이던 최권행(서울대 교수. 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이었고, 서울대 한두레하고 가까웠기에 자연스럽게 소개를 했다"며 "한두레에서 활동하던 채희완에게 '광주도 전남대학교에 문화팀이 필요하다, 형님이 좀 내려가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 강사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최권행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사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에 대해 김선출은 "최권행은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한 서울대 제적생으로 한마당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황석영(소설가)과 친분이 있었다"며 "황석영의 소개로 한두레가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임시단체인 Y가면극회를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운 채희완, 유인택을 금남로 YMCA 건물 내 Y다방에서 처음 맞이했다"고 기억했다.
김봉준(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은 <프레시안>(2021. 9.17)에 기고한 글에서 "1970년대 중반 대학탈춤반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고려대, 서울여대, 한양대, 숙명여대 등에서 생겼고, 탈춤 풍물의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 먼저 배운 것은 전수해 주며 지내고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대학 탈춤반에서 이어지던 교류가 광주로 넓혀진 것이었다.
유인택(예술의 전당 대표)은 "당시 마당극패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서울대 춤패에서 활동하던 채희완이 '조교가 필요하니 같이 가자'고 제안해 광주로 간 것이었다"며 "대학 3학년 때였다"고 말했다. 이어 "3개월 동안 한 번 내려가면 10일 정도 머무르다 올라오는 식으로 탈춤과 풍물, 탈 제작을 가르쳤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