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분 드러나 있습니다. “정말이요? 연세가 그렇게 많이 드신 분들이 서로 좋아해 연애 감정을 느끼고, 거기다가 같이 잠까지 잘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노년의 사랑과 성(性)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반응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어쩔 수 없는 끼어들기, 남이 하면 새치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갖다 대는 잣대가 이렇듯 다른데, 잣대의 차이가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아마도 노년의 사랑과 성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은 아름다움, 노년의 사랑은 노추(老醜), 나의 섹스는 열정, 노년의 섹스는 주책없음에 이르고 보면 나이가 들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기본 감정과 욕구마저 무시되고 백안시되는 우리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포스터
영화 <마더>의 주인공인 엄마 메이는 60대 후반. 남편과 둘이 살다가 아들과 딸이 살고 있는 큰 도시 런던으로 온다. 성공한 아들과 며느리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아들 하나를 기르며 홀로 지내는 딸은 사는 게 그리 편편치 않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갑작스레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엄마 메이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주인 잃은 남편의 슬리퍼만 덩그마니 남아있는 집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시 아들네로 돌아오고 만다. 할 일도, 갈 곳도 별로 없는 할머니 메이. 그나마 외손자 보는 일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딸 폴라는 오빠의 친구이며 목수인 대런과 사귀고 있고, 대런은 폴라의 오빠인 친구네 온실 공사를 맡아서 하고 있는 중이다. 식구들 다 나간 빈집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메이와 대런. 딸의 짝으로는 마땅치 않다고 여겨왔던 대런의 숨겨진 이해심과 부드러움에 점점 빠져드는 메이. 결국 메이는 대런 앞에서 옷을 벗는다. ‘다시는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을 줄 알았다’는 메이는 대런을 향한 사랑과 성적 즐거움에 빠져들면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인생을 경험한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들 기르고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기억들 위에 전혀 다른 색깔이 덧칠해 지는 것이다. 젊은 대런은 나이 들면 두려움도 없고, 어려운 일도 잘 넘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메이와 하룻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 또 다른 남자인 할아버지는 ‘나이가 드니 어린애처럼 두렵다’며 ‘세상이 스쳐지나가는 듯하다’고 털어놓는다. 자신만 놔두고 스쳐지나가 버리는 세상에서 노인들 앞에 남겨지는 것은 소외와 고독뿐이다. 메이의 사랑과 열정은 결국 자식들 앞에 다 헤집어져 속살을 드러내고 대런도 고개를 돌리고 만다. 고향으로 돌아온 메이는 이제 혼자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사실 메이는 진심으로 대런과 떠나고 싶어 했었다…. 60대 후반, 그것도 여성.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기면서, 그저 그렇게만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 속에는 가득 차있다. 어머니, 할머니로만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메이는 그것을 다 버리고 주름지고 늘어진 몸으로 남자를 안는다. 더 이상 쳐다볼 사람도 만져줄 사람도 없다고 믿었던 늙은 몸이 느끼는 즐거움을 피하지 않고 누리며 기꺼이 행복해한다. 비록 그 상대가 딸의 애인일지라도. 영화 속에서 옷을 벗은 엄마가 맨 몸을 드러내고 행복에 겨워 신음할 때 내 마음은 두 가지였다.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과 주름진 몸을 거리낌 없이 내보일 수 있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늘어진 뱃살과 옆으로 삐져나온 허릿살이 절정을 느끼며 떨릴 때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욕망과 욕정은 오히려 더 진하고 깊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이 든 몸을 내던지게 하는 사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노년의 사랑과 성에 대한 태도는 다 다르다. 마지막까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몸의 욕망을 벗어나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선택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나는 나의 눈을 ‘딸의 애인을 탐낸 엄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노년의 사랑과 몸에 맞추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엄마 메이와 딸 폴라의 관계이다. 한 남자를 가운데 놓기 전부터 삐걱대고 어긋나던 두 사람 사이에는 어려서부터 엄마의 믿음과 칭찬 없이 자란 딸의 상처가 있다. 그것이 엄마의 성격으로 인한 것이었든, 아니면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의 영향이었든지 간에 딸에게는 깊고 커다란 상처로 남아 어른이 된 지금의 생활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하며 만든 영화는 이렇게 우리에게 노년, 여성, 엄마와 딸 등등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도전으로 다가온다.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니?”하고 묻는 엄마들에게 지금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마더 The Mother, 2003 / 감독 : 로저 미셸 / 출연 : 앤 레이드, 다니엘 크레이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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