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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바닷가 외딴 마을에서 혼자 손자 손녀를 맡아 기르는 가난한 할머니. 학교 다니는 손자야 이제 좀 컸다 해도 엄마 젖을 채 떼지 못한 갓난아기인 손녀는 제대로 얻어먹질 못해 등에 혹이 달리고 말았다. 왕진 온 의사는 골연화증이라며 잘 먹이라고 했지만 하루 종일 개펄에 파묻혀 일해 봤자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며느리는 오래 전 손자 '난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 몇 년만에 나타난 며느리가 포대기에 싸안고 온 아기가 손녀 '옥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빠 노릇에, 맘껏 놀지도 못하고 아기를 업고 다녀야 하는 개구쟁이 난나의 불평과 투정도 만만치 않다.

하루하루 겨우 이어나가는 생활이 팍팍해,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이 더 답답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겹쳐서 오거나 이어서 오는 법. 그나마 겨우 지탱하던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몸져눕고 만다.

작은 아들(아이들의 삼촌)의 주선으로 대처로 이사를 나오게 된 세 식구. 그러나 늘 미덥지 못했던 아들은 가게 세 얻을 돈을 잃게 되고, 몸을 추스른 할머니는 겨우 노점을 연다. 몸이 성치 않은 옥이를 잠시 이모할머니에게 보내자 난나도 옥이의 빈 자리를 알게 되고, 할머니는 생선을 팔고 난나는 신문을 돌리며 열심히 돈을 벌어 옥이를 데려온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노점이 무자비한 철거반원들의 손에 다 날아가 버린다.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잡혀간 경찰서 앞에 가서 매일 항의를 하던 할머니는 결국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다.

영화는 '난나'와 '옥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병신'이라고 동생을 창피해 하고 구박하는 난나, 그래도 그저 오빠만 따라다니는 옥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마음, 옥이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다가도 막상 곁에 없으면 그리워하는 난나, 선생님에게서 엄마를 느끼는 애틋함, 진짜 엄마인 줄 잘못 알고 빵집 아줌마에게 옥이를 무조건 데려다 주는 난나.

어린 '옥이'의 눈물에 같이 훌쩍이는 것은 쿨하지 못하고 촌스러워서가 아니라 우리들 살아가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이다. 몸이 건강하고, 배를 곯지는 않는다 해도 누구나 가진 결핍과 등에 진 짐을 '옥이'가 등의 혹으로, 그 착한 마음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 '난나'에게 틈만 나면 말씀하신다. 언제까지나 내가 곁에 있을 줄 아느냐, 나까지 죽고 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씀에 '난나'는 묵묵부답이다. 그 아이의 등에 얹힌 짐 역시 지나치게 무겁다. 그것을 훤히 다 알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

영화를 보면서 문득 도시에 살면서 의식주 걱정 없이 좀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할머니들 생각이 났다. 그분들께 좋은 할머니 되기를 조목조목 알려드리고 있는 나의 모습도 돌아보았다.

'좋은 할머니 되기'라는 제목의 글에 '만나자! 눈을 맞추자! 귀 기울이자! 웃어주자! 칭찬하자! 며느리, 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자!'고 썼던 것을 기억해내곤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손자 손녀의 고픈 배를 채워주지 못해 가슴 아픈 할머니,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달라지지 않는 삶, 자신이 세상 떠나면 단둘이 남아 살아가야 할 아이들 생각에 할머니는 눈인들 제대로 감으실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으로 아무리 배불리 먹고 잘 산다 해도 할머니랑, 오빠랑 사는 게 제일 좋다는 '옥이'의 사랑을 간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점심 굶는 오빠를 위해 '옥이'가 싸온 도시락 속에 들어 있던 찔레꽃만큼이나 꿈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지리 궁상스럽고 남루한 영화 속 삶에 가슴이 너무 무거우셨을까 싶어 옆에 앉아 영화를 보신 친정어머니께 여쭤보니, 우리 사는 이야기랑 동떨어진 것이 아니니 울며 웃으며 잘 봤다고 하신다. 이런 영화를 자꾸 보면 나도 좀 착해지려나….

덧붙이는 글 | (초승달과 밤배, 한국, 2005년 8월 25일 개봉 / 감독 : 장길수 / 출연 : 한예린, 이요섭, 강부자, 기주봉, 장서희, 양미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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