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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쟌느, 조금만 더 가까이 Jeanne a petits pas(감독 네갸 쟈바디 / 프랑스, 2005 / 15분)

▲ 쟌느, 조금만 더 가까이
70대 두 할아버지가 사는 부랑자 캠프에 쟌느라는 할머니가 나타난다. 두 할아버지는 쟌느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며 애를 쓴다.

그러나 쟌느는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해 오래도록 함께 살았었다고 이야기한다.

둘이 의지하며 살다가 한 여자의 출현으로 인해 경쟁하느라 애쓰는 할아버지들은 귀여웠다(?). 외로운 생활 속 할아버지들은 새로운 말동무가 필요했을 것이며, 또 여자 친구 역시 그리웠을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어서의 욕망과 욕정과 욕구가 하루 아침에 칼로 자르듯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늘 노인들은 여기가 아닌 저 멀리 다른 나라에 사는 다른 인종들로 생각하곤 한다.

#2. 단풍잎 Red and Yellow Leaves(감독 오점균 / 한국, 1999 / 25분)

홀로된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 간절히 원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망설이며 머뭇거린다.

같이 단풍 구경을 가기로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한 망설임으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기다리다 지쳐 코를 골며 벤치에서 잠든 할아버지.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안는다.

2002년 4월 "33회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 1060, 까놓고 말해요"의 노년 섹션에서 상영된 영화였다. 당시 <오마이뉴스> '유경의 녹색 노년 - 영화 속의 노년(27)'에 소개한 적이 있다.

모처럼의 영화제 실버 영화 섹션에서 1999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자니, 중년과 노년에 이른 배우들의 눈부신 활동이 화제를 모으는 상업 영화의 상황이 단편영화, 독립영화에는 아무 영양가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아야 했다. 아쉬워라...

#3. 체리의 시간 Le Temps des Cerises(감독 쟝 쥴리앙 쉐비에 / 프랑스, 2005 / 15분)

예전에 사회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와 한 번도 집회나 시위에 참석해 본 적 없는 할머니가 만난다.

두 사람은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호텔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몸을 나눈다. 그것도 감추고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드러내고 소통하며.

'(성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 할머니가 물으면 '보여줄 만한지 모르겠다'면서도 할아버지는 보여준다. 15년 동안이나 섹스를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은 세는 것조차 잊었다고 답한다.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노년의 욕망은 절절하고 적나라하다.

#4. 네버랜드 The So Gloomy Fairy Tale 'Never Land'(감독 박한 / 한국, 2006 / 15분 20초)

동화책 속의 세상과 현실을 가늠할 수 없는 할머니. 할머니는 할머니의 세상에서 행복할지라도 가족들은 할머니가 위태롭고 불안하다.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더 이상 늙지 않는 곳, 추해지지 않는 곳'으로 같이 떠나자더니 먼저 가버린다. 결국 할머니도 그 길을 따른다...

어느 누구도 나이를 먹지 않고, 늘 행복한 피터팬의 섬 '네버랜드'.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죽음으로 찾아가는 나라.

나이 듦과 늙음은 추한 것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늙고 병들어 구석에 몰리게 되면 죽음만이 해결일까.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미리 알아서 찾아 나서는 것만이 길일까.

솔직히 죽음준비교육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좋은 죽음, 밝은 죽음, 보람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을 수도 없이 이야기 하며 나누고 있는 처지에 모처럼 만난 노년 영화를 통해 '잘못된' 노년의 죽음을 보는 것이 영 편편치 않았다.

#5. 베아트리스 Bea (감독 로뮈알드 베뇽 / 프랑스, 2005 / 28분)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야하는 베아트리스 할머니에게 말벗 도우미 청년 브누아가 찾아온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브누아에게 베아트리스는 온몸으로 안겨오고,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낸다.

할머니의 다가듦에 청년이 끌려들어간 것이지만, 그 순간만은 청년의 진실이 보여 그나마 안심. 아침에 깨어난 청년의 표정과 달리 베아트리스는 상큼하고 깔끔하게 인사를 남기고 외출한다.

#6. 아쉬웠지만 반가웠던 '실버 멜로 섹션'!

영화는 주로 몸의 이야기였다. 물론 '실버 멜로'라고 해서 낭만적이고 달콤한 연애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몸을, 몸의 욕망과 몸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일 낮 시간의 관객 대부분은 20대로 보이는 남녀였다. 그들이 영화를 보며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한다. "눈 버렸어!"

젊은이들이 늙은 몸을 보며 '눈을 버렸다'해도 노년의 몸이 여전히 갖고 있는 외로움과 욕망과 사랑과 절정을 확인하는 일은 소중하다.

늘어진 젖가슴, 주름진 몸, 휘어진 다리,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자신 없어하는 몸의 일부분까지, 그 모두는 여전히 서로를 원하며 나누고 싶어하고 한탄하며 깊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어쩌면 노년의 몸이 지닌 욕정이먀말로 포장되지 않은 순수한 열망이며 내던짐일 수 있다. 세월이 흐트러뜨린 몸을 내보이며 끌어안을 수 있음이야말로 껍데기를 벗어던진 진정한 모습이기에.

어쨌든 영화에서 노년을 만나는 일 자체는 늘 반갑다. 비록 그것이 노년에 대한 단순한 이해와 왜곡된 시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해도 말이다.

* 제5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 / 2006. 6.29-7.4 / CGV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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