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제목만 보고 처음에는 그렇고 그런 미국식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과 연애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원제를 보니 'The Cemetery Club'. '묘지 모임' 혹은 '공동묘지 클럽'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은 60세를 막 넘긴 에스더, 루실, 도리스 세 여자다. 남편들까지도 무척 친해서 세 쌍의 부부가 재미있게 지냈는데, 남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자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1년 전 심장마비로 갑자기 남편을 잃은 에스더는 아직 그 충격과 슬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고,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루실은 늘 새로운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고 있다. 언제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 도리스는 루실을 비웃으며 그저 남편 생각만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한 달에 한 번 셋이 같이 묘지를 방문해 남편의 묘소를 둘러보는데, 도리스는 늘 남편의 묘비 앞에서 중얼중얼하며 보고를 한다. 산 사람에게 하듯이 손자 사진도 들어서 보여주고, 자식들은 흩어져 있고 혼자 지내려니 힘들다는 고백도 한다. 어느 날 이들은 아내의 묘소를 찾아온 전직 경찰이자 현직 택시 기사인 벤과 마주치게 되고, 이 만남이 실마리가 되어 벤과 에스더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에스더는 열 여덟에 만난 남편과 결혼해 39년을 살다 사별했고, 벤은 늦은 결혼으로 7년을 아내와 함께 살다가 사별한 것. 두 사람은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겹치고 에스더의 친구들까지 끼어들면서 관계가 끝나고 만다. 세 여자도 번갈아 싸우고 화해하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도리스가 죽게 되고, 고통과 고민의 긴 시간을 보낸 끝에 홀로 사는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에스더 앞에 벤이 다시 나타나 청혼을 한다…. 나이 든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연애 이야기를 넘어서는 것은 다름 아닌 먼저 세상 떠난 남편들에 대한 세 여자의 각기 다른 생각과 태도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이다. 완고한 도리스는 그동안의 부부생활이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더 가지고 싶은 것도, 얻고 싶은 것도 없다며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사람이다. 그러니 대화 상대는 늘 무덤에 누운 남편뿐이고, 할 일이라고는 남편 묘지에 돋아난 풀을 뽑는 일뿐이다.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루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의 외도로 상처받은 루실, 35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충분히 사랑 받지 못했기에 남자를 찾아다니고 밝히는 것으로 보였으나 루실은 고백한다. 단지 남들에게 잘 지내는 척했던 것뿐이라고, 단 한 번도 남자를 실제 사귄 적이 없노라고. 혼자 사는 법을 익혀야 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한창 같이 살아야 할 때에 혼자가 됐다며 새로 시작한 사랑에 가슴 떨려 하는 에스더. 그러나 다시 찾아온 사랑은 에스더에게 행복과 함께 고통을 안겨준다. 에스더와 벤을 보며 나이 들어 시작한 사랑 또한 젊은 시절의 사랑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두근거리는 가슴, 떨리는 손, 부끄러움, 망설임, 행복, 긴장, 안고 싶은 마음 모두가 똑같다. 호텔을 찾아 들어간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누는 대화. '나는 제왕 절개한 수술 자국이 있어요' '나는 총알 구멍이 있는 걸요' '나는 담낭 수술도 했어요' 나이 들어 쭈글쭈글해진 몸을 서로 나눈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어렵기에 그 어떤 거짓도 끼어들 틈이 없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 대화야말로 얼마나 진지한지. 젊은 시절 사랑의 상처는 치유할 수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의 심장은 뼈 같아서 금가기 쉽다고 충고하는 친구에게 에스더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일이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어렵다고 답한다. 벤과 헤어지고 힘들어 할 때 에스더에게 새 힘을 불어 넣어준 사람은 다른 아닌 외손녀였다. "할머니가 저한테 '두려워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컵에 물이 반쯤 남았을 때 누군가는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다고 말한다지 않던가. 나이도 마찬가지여서 인생 다 살았다며 의욕도 노력도 일찌감치 앞당겨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인생 하루를 살더라도 열심히 정성껏 살겠다 결심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 떠난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 소중한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다시 걸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같이 무덤에 들어가 누울 수 없는 산 사람만의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주어진 생명의 시간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에스더에게 벤은 운전을 가르쳐 준다. 에스더는 스스로 차를 몰아 벤에게도 가고 친구 도리스가 아플 때 달려가기도 한다. 사별이라는 같은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자리와 갈 길을 정하는 것 역시 스스로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 떠난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 아닐까. '공동묘지 클럽(The Cemetery Club)'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선택으로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선 에스더, 이제는 혼자 사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에스더, 할머니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젊긴 하지만 아무튼 참 예쁘고 멋진 할머니이다. 길을 나선 사람만이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생의 온갖 경치를 누릴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영화 속 대사처럼 나이가 자랑스러워지는 것은 아닐지.

덧붙이는 글 (황혼의 로맨스 The Cemetery Club / 미국, 1993 / 감독 : 빌 듀크 / 출연 : 엘렌 버스틴, 올림피아 듀카키스, 다이안 래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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