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에 출연한 변희봉.
ⓒ 영화홈페이지
괴물한테 딸을 잃은 아버지가 아니라, 괴물한테 딸을 잃은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버지는 한강에서 매점을 하며 삼남매를 홀로 길렀다. 큰아들은 젖을 제대로 못 먹은 탓인지 어딘가 한 구석이 조금 모자라 동생들한테까지도 마구 무시당하는 처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방귀 냄새만으로도 기분 상태를 알 수 있고, 틈틈이 졸기 일쑤인데다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잠을 잘 자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오냐"고 구박을 하지만 아들은 사이사이 잠을 자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감싼다.

컵라면 판 돈으로 4년제 대학 뒷바라지를 한 둘째 아들은 현재 백수. 큰아들 대신 손녀 학교 학부모 참관수업에 가면서도 술을 마시고 갈 정도이다.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한지 늘 욕설이 먼저 나간다.

여기에 양궁 선수인 딸이 하나 있고, 큰아들이 낳은 중학생 손녀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금쪽같은 손녀를 데려갔단다. 딸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그만 괴물에게 딸을 잃은 큰아들은 넋이 나갔고, 다른 자식들과 함께 아버지도 애통절통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때 들려온 손녀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식.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아버지는 결연히 떨치고 일어나 자식들과 함께 손녀를 찾아 나선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아버지는 주름진 얼굴과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다.

손녀를 찾다 지쳐 식구들이 모두 매점에 몰래(괴물의 출현으로 한강은 출입이 통제되었기에) 숨어든다. 매점에 들어서자마자 자식들이 이리 저리 널브러져 누울 때에도 아버지는 식구수대로 컵라면을 챙긴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자식 잃은 부모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는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그러니 '네 형, 네 오빠에게 아이 손을 놓쳤느니 어쩌니 절대로 뭐라 하지 말라'는 아버지.

내 친정 아버지도 다섯 달 전 금쪽같은 외손녀를 잃으셨다. 아버지는 그 아프고 힘든 시간을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시는 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아버지 안부를 물으며 쉽게 말한다. "그래도 그 아이 부모만 하겠어" "나이 들면 감정도 다 무뎌지니까 괜찮으실 거야"

딸을 잃고 넋이 나간 아들을 보며 옆에서 애면글면하는 영화 속 아버지를 보며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식 가슴 속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곱씹고 또 곱씹었을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식만 생각하며 이리 달리고 저리 뛴다. 법이 어떻고, 절차가 어떻고 아무 상관이 없다. 내 자식이 아프고 나도 아파 무조건 나섰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 내 자식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기에 내 몸 하나라도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바칠 뿐이다.

나는 영화 <괴물>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그 아픔을 읽었다. 영화 <괴물>은 내게 자식을 잃은 자식으로 인해 아픈 아버지를 보게 해주었고, 내 아버지의 아픔을 좀 더 들여다보고 그 상처에 다가서게 만들어주었다. 잊지 못하리라….

(괴물 The Host , 2006 / 감독 : 봉준호 / 출연 :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 등)
2006-08-02 18:5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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