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은 정지된 사진들을 흘려보내며 영화를 시작한다. 여기에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진들의 이야기를 되짚어낸다. 옛날의 사진과, 추억을 더듬으며 시작하는 <조제>는 시작부터 이미 슬픈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가 들을 이야기는 이미 끝나있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뇌성마비에 걸려서 걷지 못하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산책을 좋아하지만, 그런 손녀가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할머니에 이끌려서 유모차에 탄 채 인적이 드문 새벽에 거리를 돌아다닌다.

조제는 본명이 구미코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 나온 주인공의 이름인 '조제(Josee)'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휠체어에 담요를 덮고 숨은 채로 식칼을 품고 다니면서, 호신용으로 중국제 토카레프를 사고 싶어하는 조제는 폐쇄적이고 차가운 매우 인상적인 캐릭터이다.

사랑 없이 섹스만을 즐기는 츠네오는 점점 조제에게 이끌리게 되지만, 조제는 츠네오의 호감을 장애인에게 던지는 동정으로 여기게 되고, 츠네오를 거부한다. 그러나 조제의 할머니가 죽은 후, 조제는 다시 찾아온 츠네오를 결국 의지하게 된다.

걸을 수 없기에 주방에서 방바닥으로 다이빙을 하고, 학교를 갈 수 없기에, 길에서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조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장애인이다. 그녀는 단지 쓰레기를 내다버리기 위해 옆집의 변태에게 가슴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조제를 잊지 못하던 츠네오가 돌아온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 장면
ⓒ Pi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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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그들의 사랑도 처음에는 매우 아름다웠다. 츠네오는 조제와 함께 동물원에 가고, 조제는 호랑이를 보며 매우 무서워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조제는 점점 많은 것을 츠네오에게 의지하게 된다. 유모차가 고장나자 조제는 츠네오의 등에 업혀서 다니게 되고, 점점 어린애 같은 투정을 부리게 된다.

카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정해지는 길로만 가는 츠네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남자일 것이다. 하지만 조제에 대한 츠네오의 사랑은 단지 서로의 애정만으로는 넘기 힘든 것이었다. 고향의 부모님에게 조제를 인사시키려고 데려가던 츠네오는 결국 되돌아가게 된다. 완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츠네오에게 조제와의 관계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깊고 깊은 바다에서 나는 헤엄쳐 나왔어. 빛도 소리도 바람도 없는, 정적만이 있는 곳이야. 지금은 그 때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너가 떠나면 난 조개껍질처럼 바다 깊은 곳에서 데굴데굴 구르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아"

1년간 사랑을 나누었지만, 조제 역시 이별을 언제나 준비하고 있었다. 츠네오와 함께 간 모텔에서 조제는 무덤덤하게 이별을 예감하고, 홀로 설 준비를 한다.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여자가 있다.
하지만 조제와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두 번 다시 조제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뒤, 결국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게 된다.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며 바로 새로운 애인과 함께 돌아선다. 그렇지만 그 직후 그는 조제를 생각하며 크게 울음을 터트린다. 그들의 사랑은 끝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츠네오가 떠난 뒤 조제는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는다. 평생 츠네오에게 업혀다닐 것이라고 하던 조제는 이제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홀로 시장을 본다. 그리고 예전의 주방에서 조제는 묵묵히 생선을 구워서 먹는다. 그녀의 홀로서기는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조제>는 잔잔한 내용속에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담아낸다. 만남과 사랑, 이별의 준비와 헤어짐까지를 무덤덤하면서 서글픈 시선으로 차분하게 지켜본다.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별의 경험이 있다면, 츠네오와 조제의 마지막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조제>는 부천 영화제에서 상영 후, 많은 관객을 울렸다.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라고 하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아련한 사랑의 기억 하나 정도는 남겨놓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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