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우드(Bollywood)란 용어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대적할만큼 큰 영화시장이 있는 인도 영화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9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유독 인도에서만은 5%도 채 안 되는 저조한 점유율을 보인다.

이 통계에서 짐작 가능하듯이 인도의 영화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다. 영화 중간 중간에 뮤지컬처럼 인도풍의 음악과 춤이 화려하게 곁들여지는 '맛살라 영화'라는 형식이 인도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인도 영화는 천편일률적인 느낌은 있지만,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부천영화제에서는 지난 2003년 '발리우드 특별전'을 통해 <데브다스> <나는 테러리스트를 사랑했다> <라간> <까삐꾸씨 까삐깜>과 같은 정통 발리우드 영화의 흥행 성공작들을 상영했고,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지난해와 같은 정통 발리우드 영화(맛살라 영화)는 없는 대신, 다소 독특한 발리우드 영화 <비루만디>가 초청되어 왔다.

<비루만디>는 인도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이긴 하지만, 지난해에 본 발리우드 특별전의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를 지양하고, 분명한 주제 의식을 갖추었다는 점과, 춤과 노래를 과다하게 집어넣지 않은 대신, 쉽게 예상하지 못한 잔인한 장면들을 집어넣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비루만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처럼 한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설명을 하게 되는 이중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조차 모호한 <라쇼몽>과 달리 <비루만디>의 구조는 치밀하지 않다.

사형수들을 취재하는 여기자의 모습을 통해, 사형제도의 무의미함을 고발하려는 것이 <비루만디>의 주제이고, 두번째 진술에서 밝혀지는 영화의 진실은 단지 주인공인 비루만디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고, 결국 죄가 없는 사람이 사형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16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에, 춤과 노래도 그다지 등장하지 않지만, <비루만디>는 영화 상영 내내 관객의 폭소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감독과 주연을 겸한 카말 하산의 재치있는 연기와 비루만디를 둘러싼 죽고 죽이는 음모가 긴 상영시간동안에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비루만디>의 한 장면
ⓒ PiFan

하지만 음모와 복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 장면들로 인해 사형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주제 의식이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상당히 흐려지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몇몇 관객은 카말 하산 감독에게 영화의 주제가 사형제도의 철폐가 아니라 당한 만큼 복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것에 대해 카말 하산 감독은 인도에는 표현이 강한 영화가 별로 없어서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시도한 경우 자체가 드물었기에 팔과 목이 잘려나가고, 낫으로 사람을 찌르는 하드고어적인 장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인도영화는 남녀간의 키스조차도 검열에서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기에 <비루만디>가 보여준 장면들은, 인도영화에서 미처 기대하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이긴 하다.

카말 하산 감독은 맛살라 영화라는 표현을 쓴 한 관객의 질문에 대해 '되도록이면 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부득이하게 우리끼리 칭할 때도 맛살라라는 말 대신에 좋은 영화를 만들자, 라고 한다'고 대답하여, 발리우드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는 맛살라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살짝 드러냈다.

주제의식을 완벽하게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주제와 획기적인 잔인한 표현이 어울러진 <비루만디>는 지난해에 상영된 맛살라 영화가 발리우드의 전부라고 알았던 관객에게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물론 1년에도 수천편이 제작된다는 인도의 영화계에서 <비루만디>가 어떠한 의미를 지닐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3년처럼 별도의 특별전이 마련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두 편의 인도영화 <비루만디>와 <라구 로미오>가 모두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평균 세시간에 이르는 긴 상영시간과 문화적 이질감으로 인해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된 인도 영화는 <춤추는 무뚜>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부천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인도영화에 보내는 성원을 감안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에서도 정통 발리우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