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홍콩 영화는 자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일대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통했다. 그러나 홍콩 영화는 한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 그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모방하는 영화들을 졸속으로 만들면서 1990년대 들어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오우삼, 주윤발, 성룡처럼 1980년대 이후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감독과 배우들은 쇠락해가는 홍콩을 떠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홍콩 영화의 영광은 아득히 먼 시절의 이야기가 된 듯했다.

▲ <몽콕의 하룻밤> 영화 속 장면
이런 가운데 나타난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 3부작은 홍콩 영화에 여전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그리고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몽콕의 하룻밤>은 그동안 홍콩 영화에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노련한 솜씨를 보여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홍콩 영화에는 '삼합회'가 등장하고, 킬러가 등장하며 사랑과 복수가 있다. 이는 좋게 말하면 오우삼에 의해 완성된 '홍콩 느와르' 장르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반면 대부분의 홍콩 영화가 몇몇 성공작을 따라가는데 급급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홍콩 영화에 가장 필요한 것은 탄탄한 스토리이다. 이는 이미 <무간도> 3부작이 거둔 흥행 성공으로 증명되었다.

<열화전차>, <색정남녀> 등을 만든 이동승 감독이 부천영화제 출품한 <몽콕의 하룻밤>은 홍콩 영화의 상투적인 비난을 충분히 피해갈 자격이 있는 영화이다.

영화 초반부만을 훑어본다면, 조직간의 암투와 그 사이에 고용된 킬러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킬러 로이(오언조)는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는 잔인한 살인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찍고, 나는 쏘고>에 등장하는 킬러처럼 극도로 희화한 킬러도 아니다. 킬러지만 사람을 쏘아본 적도 없고, 홍콩에 온 목적은 단 하나, 사랑하던 고향의 연인을 찾기 위해서인 남자. 옛날 <첩혈쌍웅>이나 <영웅본색>에서 보이던 주윤발을 많이 닮은 그런 남자이다.

<몽콕의 하룻밤>은 복수도, 원한도 다루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적인 재미는 화려한 총격전이 아니라, 홍콩의 최대 혼잡가인 몽콕에서 킬러를 찾기 위해 경찰이 펴는 포위망이 주는 긴장감이다.

여기에 돈을 벌기 위해 본토(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창녀 단단(장백지)이 로이를 도우면서 이야기는 점점 힘을 받는다. 복수와 살인 대신, 힘겨운 삶을 이야기하는 킬러와 창녀의 캐릭터는 낯설긴 하지만,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들의 곁에 있는 조연들의 이야기 역시 탄탄하다. 살인청부를 하는 로이의 고향선배는 돈에 환장한 욕심쟁이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고향에 대한 죄책감에 깊이 시달리고 있으며, 죽음이 항상 가까이 있기에 신중해지는 형사들의 이야기도, 마음이 연약한 킬러 로이의 이야기와 겹쳐지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화려한 총격전 대신에 홍콩의 사회적 문제와 인간군상들의 아픔을 찬찬히 끄집어낸 <몽콕의 하룻밤>은 <무간도> 이후 새롭게 등장할 홍콩 영화의 한 갈래일 수도 있다. 과거처럼 형식과 액션 장면만을 모방하던 홍콩 영화에서 벗어나 이러한 깊이있는 모방을 보여준다면 홍콩 영화의 발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004-07-17 12:4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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