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고 있지만, 월드컵의 흥분을 고국에서 못지 않게 즐겼다. 아니 다른 민족들 사이에 살기 때문에 더더욱 큰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이 있었고, 이방인이지만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을 즐겼다.

아제르바이잔, 대개의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기종목 역시 축구이다. 공 하나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우리도 어렸을 적 했던 돌 두 개를 놓아 골문을 만들어 하는 소위 '찜뽕 축구'을 골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우리집 아파트 입구를 골문 삼아 매일 축구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1층에 사는 우리는 심사가 편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월드컵이 개막되고 서서히 경기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이곳 현지인들의 가장 활발한 화두는 역시 축구가 되었다. 한국의 연승 장면을 보면서 주위 사람들의 축하와 함께 당당히 세워져가고 높아져가는 국민적 자긍심을 듬뿍 누릴 수 있었다.

더욱이 터키가 한국과 같이 4강에 오르자 비록 자국민은 아니지만 형제국 터키와 전 터키 민족의 축제가 되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인파와 축하 세리모니의 경적 속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우리도 한국 경기가 있을 때마다 위성을 통해 보여주는 극장에서 현장감을 가능한대로 느끼며 20여명 되는 한국인이 모여 목청을 높이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유럽의 강호들의 차례로 제압할 때마다 유럽의 축구를 좋아하는 이곳의 축구 팬들의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심판의 비호라거나 운 좋게 이겼다는 소리를 들을 때, 슈팅수, 문전 슈팅수, 슈팅 허용율, 코너킥 등 공격 축구의 통계를 들여 보여주며 결코 덤으로 얻은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들에 목청을 높이곤 했다. 아직도 8강의 통계를 보면 한국의 3위 자리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터키 팀의 활동에 대해서도 물론 한국만큼의 통계적 수치는 미치지 못하지만 4강 신화의 역사적 기록에 흥분하기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할 것이다. 이곳 텔레비전 해설자의 해설을 통해서도 전체 중앙아시아(우즈벡, 카쟉, 키르키즈, 투르크멘, 아제르 바이잔, 위그르 등)과 터키에 걸쳐 살고 있는 2억3천만 터키 족의 열화같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때에는 더 나아가 12억 이슬람을 대표하는 팀으로까지 그들의 농축된 열망을 표현하기까지 한다.

터키의 첫 경기였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주심이었던 한국인 심판에 대한 불만도 팽배했지만, 이 일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어 터키 팬 클럽에 많은 사람이 가입하고 일본에까지 건너가 펼쳐진 한국인의 터키에 대한 열띤 응원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줄곧 심판에 대한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터키팀을 응원하며 동지애를 쌓았다.

남미와 유럽 축구에 밀려서 외곽을 맴돌아야 했던 월드컵 국제대회에서 한국과 터키가 당당하게 4강안에 들어 간 것은 크게는 아시아인들과 중동 혹은 회교권 사람들의 기쁨을 대신 해주는 큰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터키도 유럽 예선리그를 통해서 올라온 팀이긴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끼어서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입장에서라면 그 기쁨이 더더욱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터키, 이제 3 - 4위전을 남겨 두고 우리의 흥분된 마음들을 약간은 추스리면서 몇가지 소원이 마음에 떠오른다. 한국전쟁에 피를 흘린 그야 말로 혈맹적인 관계도 있지만, 역사를 거스려 올라가면 돌궐족와 한 민족은 가까운 혈통적 형제 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중화 문화의 중심에선 서융과 동이라는 오랑캐족으로 변방에서 설움을 겪어왔고, 현대 문명에서는 서구 문화의 주변에서 동병상린의 처지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월드컵 대회 조차 서구인들에 의해 시작된 서구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일치된 마음을 갖고 때로는 응어리진 부분을 풀고, 때로는 자긍심을 가지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최고 최대화시킬 수 있는 기회란 없는 것이다.

한국 독일전에선 한국을, 터키-브라질전에서는 터키를 응원하면서 현대 문화의 잣대로 볼 때 먼 나라였지만, 뿌리를 공유한 형제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강에 있을 때까지만도 그 이전에 이웃 아저씨의 농담처럼 결승전에서 터키와 한국이 나란히 서는 것을 꿈 꿀 수 있었다. 이젠 현실로 돌아와서, 3-4위전의 마지막 경기를 한-터키 족의 끈끈한 우정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 당당히 싸우고, 반칙없는 경기를 보여주자
. 불가피한 반칙으로 넘어져 있는 상대방의 선수를 일으켜 세워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 홈 구장이지만 팀을 가리지 않고 잘하는 선수를 향해 마음껏 박수와 찬사를 보내 주자.
. 승패가 나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존경의 인사를 하자.(터키 문화 권에서는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동성간에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준다).

한국-터키의 아름다운 축제의 마당을 기대해 본다.
2002-06-27 05:3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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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는 현지에 8년간 살아오고 있으면서 언어학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타 문화 속에 살면서 일어나는 문화적 차이, 이 민족속에 살아 있는 민속적 지혜, 민담, 설화, 기타 재미 있고 유익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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