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의 오른발 끝에서 터진 번개같은 슈팅이 브라질의 월드컵 3연속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후반 3분, 특유의 발돌림 동작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른발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일품이었고 바로 이어진 토킥은 수비수들이 접근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탈락한 호마리우의 특기가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브라질에게는 추가 득점 기회가 많았지만 득점 단독 선두로 올라간 호나우두를 따라잡기 위한 히바우두의 안간힘 이외에는 더 이상 예리한 맛을 보여주지 못했다.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를 결승전까지 잠시 접어두고 이제 우리의 3,4위전 상대, '터키'를 가까이에서 보자.

미드필더의 위력적인 움직임을 무력화시키자

월드컵 개막 전까지도 터키 축구하면 으레 최전방 공격수 하칸 수쿠르를 떠올릴 정도였지만 상대 중앙 수비수들의 집중 마크에 단 한 점의 득점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다.

그나마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움직임이 조금 나아져 후반 35분, 측면에서 넘어온 볼을 수비를 등지고 180도 돌아서며 위력적인 오른발 발리 슈팅을 구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슈팅이 명실공히 터키의 스트라이커라고 하는 이 선수가 90분 경기를 통해 날린 유일한 슈팅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조금이나마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정작 주의해야 할 선수들은 주로 미드필드에 포진되어 있다.

8번 투가이 - 10번 바스튀르크 - 18번 에르군 펜베 - 21번 엠레 벨로조글루 - 22번 우미트 다발라

이처럼 터키의 미드필더들은 숫적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며 경기를 펼친다. 이중 8번 투가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미드필더진에서는 가장 뒤로 물러나 플레이하며 간혹 측면 공격에 가담한다. 상대방 공격형 미드필더를 저지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도 한다.

18번 펜베와 22번 다발라는 좌우 측면 공격의 활로를 연다. 이전 경기까지 활발한 오른쪽 공격을 보였던 다발라는 이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왼쪽 미드필더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방어하느라 이렇다할 공격 가담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오른발 감아올리기가 위력적인 선수다.

문제는 10번 바스튀르크와 21번 엠레 벨로조글루 선수다. 독일 레버쿠젠팀에서 뛰고 있는 바스튀르크는 적어도 후반전 중반까지는 지칠 줄 모르는 기동력을 자랑한다. 터키 공격 상황이면 그의 움직임은 마치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듯 나머지 미드필더, 공격수들과 연계되어 빠르게 전개된다.

특히, 그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얻어낸 18개의 프리킥(반칙당한 횟수) 중 8개를 혼자서 얻어냈다. 그만큼 드리블 의존도가 높은 것이다. 강한 압박이 필요한 선수다.

엠레 벨로조글루 선수는 브라질과의 경기 전반전 초반 15분까지 브라질 미드필더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활약이 두드러졌다. 결과적으로 터키도 킬러가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그의 왼발에서 연결되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는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전반 15분이 지나며 브라질의 미드필더 끌레베르손에게 집중적인 마크를 받으며 움직임이 현저하게 둔화되었지만 '터키의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어쩌다가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후반전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인 일한 만시즈 선수와 후반 17분 교체되었지만 그의 세련된 왼발 패싱 능력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하산 사슈'와 골키퍼 '루스투'

그는 미드필더는 아니지만 미드필더보다 더 부지런하게 활약하는 공격수다. 하칸 수쿠르와 짝을 이루어 다니는 듯하다가 때로는 뒤로 물러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드리블은 브라질 선수들의 그것처럼 부드럽지는 않지만 빠르고 효율적이다. 뒷걸음질치는 수비수들은 그의 빠른 드리블에 넘어지거나 쉽게 돌파를 허용한다. 상대 오프사이드 함정을 허물 줄 아는 넓은 시야와 강력한 오른발 감아차기 실력도 갖추고 있다. 특히, 왼쪽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에는 낮고 빠르게 휘어지는 감아차기로 골문 앞에서 위협적인 상황을 자주 연출한다.

대개의 경기가 그랬듯이 후반전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 위해 일한 만시즈 선수가 투입될 경우 하산 사슈는 밑으로 조금 내려와 미드필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수쿠르가 빠질 경우에는 만시즈 선수와 함께 투톱 위치에서 날카롭게 공격을 이끈다.

드리블을 할 경우 지나치게 가운데만 고집하여 스스로 고립되기도 하지만 빠르고 예리한 그의 움직임은 경계 대상 1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험 지역 바깥에서 철저한 압박 수비로 승부를 내야 한다.

이운재, 올리버 칸, 카시야스, 부폰 등의 쟁쟁한 골키퍼들의 명성에 가려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터키의 골문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루스투 렉베르 골키퍼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날 브라질과의 경기까지 총 4실점을 기록했지만 대부분의 골이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것이었다. 호나우두의 재치 있는 토킥도 루스투의 손끝을 스치고 오른쪽 그물 하단으로 아슬아슬하게 성공된 것만 봐도 그렇다.

루스투의 활약은 특히 전반전에 빛났다. 히바우두, 호나우두, 에디우손의 파상적인 공격을 몸을 날려가며 다 막아냈다. 거의 골과 다름없는 상황이 전반전에만 다섯 차례 발생했지만 루스투의 동물적인 감각은 브라질의 애간장을 태우게 할 만했다.

전후반 통틀어 브라질의 문전 유효 슈팅 숫자는 모두 11개. 이중 호나우두의 골을 제외하고 10개를 막아낸 것이다. 이 10개의 슈팅 중 8개 정도는 골이라고 여겨도 될 정도로 결정적인 선방이었다. 루스투가 없었다면 터키가 이만큼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역 방어에 치중하는 터키 수비수들

터키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은 대체로 기동력이 훌륭하다. 후반 종반까지 지친 기색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최대 약점은 지역 방어에 있다고 본다. 특히, 중앙 수비를 맡는 3번 뷜렌트 코르크마즈 선수와 5번 알파이 오잘란 선수는 위험 지역에서조차 상대방 공격수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 두면서 움직인다.

물론 비교적 위치 선정이 좋았고 골키퍼의 선방이 있었기에 브라질에게 1점밖에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공격수들이라면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수비 대형인 것이다.

또한 터키 공격이 중간에 차단당했을 때 뒷걸음질치는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의 간격이 비교적 넓어 빠른 공간 패스로 공략하면 한국의 공격력으로 충분히 득점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미트 다발라를 중심으로 공격 가담 비중이 높은 오른쪽에는 상대의 역습에 자주 허점을 드러내었다. 한국팀의 설기현, 이영표 선수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 공간을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2002년 3월 27일을 기억하시나요?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유럽에서 전지 훈련을 하던 한국 대표팀은 지난 3월 27일 독일 보쿰에서 터키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가진 바 있다. 0:0 무승부로 끝난 경기였지만 한국팀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던 경기라고 기억한다.

대한축구협회(KFA)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이 경기에서 골키퍼에 이운재 대신 김병지가 뛴 것을 제외하고는 현행 주전 선수들이 모두 출장했었고. 터키도 중심 선수들이 선발 또는 교체 선수로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었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에서 뛴 선수들을 중심으로 보면, 골키퍼는 루스투가 아닌 레크베르(후반 교체 카드킥)였으며, 3번 뷜렌트- 4번 아키엘(이상DF) / 8번 투가이 케리모글루- 10번 바스튀르크 - 21번 엠레 벨로조글루 - 22번 우미트 다발라(이상 MF) / 9번 하칸 수쿠르- 11번 하산 사슈- 17번 일한 만시즈(이상 FW) 등이 선발 또는 교체로 출전했다.

특히, 후반전 25분 이후 한국은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며 터키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는 경기를 했다. 몇 차례 실점 위기도 있었지만 김병지의 멋진 선방이 인상적이었다.

3월 경기에 비해 현재의 터키의 전력은 많이 향상되었다. 짜임새가 더욱 좋아졌다. 하지만 우리도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다. 아마도 그 경기를 봤던 몇몇 보쿰 시민들은 터키 이상으로 한국팀의 성장에 놀랐을 것이다. 더구나 독일에게 당당히 맞섰던 한국팀을 보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결승전에 비해 3,4위전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친 주전 선수들을 대신해서 그 동안 벤치를 지켰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대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다면 그 동안 주로 출전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나와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이운재 선수에게 야신상을 받게 해 보자. 욕심 같지만, 브라질이 칸에게 두 골 이상을 뽑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3,4위전에서 스웨덴은 불가리아를 상대로 네 골을 터뜨리며 4:0 완승을 거두었다. 축구 역사와 기록을 또 한 번 갈아치워보자. 우리가 그 중심에 서자.
2002-06-27 00:3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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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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