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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2 한-일 월드컵대회의 분위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포스트월드컵' 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월드컵 백서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월드컵경기장 시설활용방안 등을 통한 정부의 '포스트 월드컵' 대책이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보여주었던 국민들의 단합과 열정은 어느 정도 반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정부 차원에서 어떤 분위기와 붐을 조성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 국민들 스스로도 전국을 온통 붉은 물결로 수놓을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었다. 약속도 없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모두들 스스로 좋아서 만사를 제쳐놓고 가족 등과 함께 응원장소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월드컵에 대한 이같은 열정과 사랑을 정치와 다른 분야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태도는 냉담하다.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를 그렇게 외치면서 한국을 응원한 상당수 국민들은 6-13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원들이 부르짖은 '~당' '필승 ~후보'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 한 시민은 "선거에 관심이 없느냐"는 질문에 "쓰레기를 재활용해 새로 뽑는 것과 같은 선거를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정치의 목적은 집권에 있다. 집권당은 자신들의 정당-정치이념대로 한 방향으로 국민들을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상당수 국민들은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가 썩을대로 썩어 더 이상 부패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뭘 기대하느냐"면서 아예 정치적 무관심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치도 싫다. 지지할 마땅한 후보도 없고 투표도 싫다. 나는 나대로 산다. 내가 즐길 것 즐기고...' 이같이 정치에서 등을 돌린 국민은 정치 논리대로 움직이는 경제와 사회에 무관심하게 되고 이기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투표율이 가장 낮은 신세대들에게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떠난 나'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남성들로부터 소외됐던 여성들이 이번 월드컵 응원 대열에 끼여 '필승 코리아'를 외치면서 환호하는 것도 사회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스크린 아래 몰려든 응원 인파 속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부한다. '나'란 존재가 똑같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한목소리로 외치는 무리들 속에서 명백히 확인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한결같이 기원하는 한마음 한뜻을 지닌 수백만명의 응원인파는 또다른 내가 확대된 공동체인 만큼 더 이상 나는 군중 속에서 고독하지 않고 소외돼 있지 않다. 여기에는 종교적 이념이나 가치관이 전혀 지배하지 않는다. 민주당, 한나라당이 필요없다. 붉은 옷을 입은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하나가 됐다.

역사상 이런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도 신화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온 국민들 스스로 전국을 하나로 붉게 물들인 응원도 신화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응원을 주도한 W세대(월드컵세대)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벽을 허물었다. '나는 나다' '나는 내 멋대로 하고,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로 대변되는 신세대, X세대를 걱정하는 기성세대도 많았다. 앞으로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이 나라,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같은 걱정은 이번 월드컵대회를 통해 탄생된 W세대로 해소돼 가고 있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버금가는 제왕적 권위로 정치를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머리에 두르고 패션화시키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러나 '국민의 정부'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태극기는 내가 입은 옷같이 일상화됐다.

관공서나 학교 등의 게양대에서 '하늘높이 아름답게' 펄럭이던 태극기가 '땅으로' 내려왔다. 태극문양을 이용한 각종 패션이나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화면 등에 태극기를 나타내거거나 자동차에 소형 태극기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태극기의 고정관념이 이번 월드컵대회로 하루아침에 깨어졌다.

문제는 월드컵 이후다. 온 국민들에게 그토록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했던 월드컵같은 신화가 언제 다시 만들어질까 하면서 또다른 신화를 기대하는 공허한 국민들의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러나 태극전사들이 기록한 이번 월드컵대회 4강 신화는 앞으로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무너뜨리기 힘든 만큼 오래도록 국민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월드컵 후유증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2006년 월드컵대회에서 또다른 신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우리는 태극전사를 계속 응원해야 한다. 포스트월드컵도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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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금언처럼 삶의 현장 속 다양한 팩트가 인간의 이상과 공동선(共同善)으로 승화되는 나의 뉴스(OH M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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