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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기간동안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했지만, 두세번 길을 가르쳐 준 것 외에는 생각보다 외국인을 만날 기회는 적었다. 2년전 무작정 떠난 4개월간의 배낭여행에서 이름모를 낮선 외국인들에게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때문이었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한국과 터키의 3, 4 위전이 열리던 날이었다. 대구 시민회관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오페라를 구경하려고 티켓을 사서 오는 길에 웬 외국인이 축구 골키퍼 복장을 하고 대형지도앞에서 서성거리고 있길래, 월드컵기간중 마지막으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라 여겨 다가갔다. "나오노리"라는 일본인으로 축구광이어서 3,4위전을 보려고 1박2일 일정으로 막 대구에 도착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표를 찾으려고 하길래, 전화로 여기 저기 알아보았는데, 안내센터에서는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서 티켓을 받으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게 하려구 버스타기 쉬운 곳까지 데려다 주려고 차에 태웠다. 서툰 영어로 소개도 하고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나오노리가 자기에게 티켓2장이 더 있다고(구매과정에서 실수가 있어서) 같이 구경하는게 어떠나고 하는 것이다. 오페라 공연 티켓을 보면서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했는데, 평생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도 있다는 나오노리의 말에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을 많이 막혔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김밥까지 사서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벌써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축제분위기가 한창이다. 티켓 3장중에 2장은 가지고 있고 인터넷으로 예매한 한 장만 발권받으면 된다. 그래서 서둘러 매표소로 갔는데, 웬 걸 수십명의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게 아닌가! 경기가 10분뒤면 시작인데 늦으면 어쩌나 하는 맘으로 이리 저리 물어보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단다. 인터넷예매는 국내 판매분이 아니라서 국내 매표소에서는 발권이 안되고 오직 한 군데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고, 담당자는 3시간전에 와서 발권받지 않았다고 기다려서 표를 받으라고만 한다.

다른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뻔히 경기장을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나의 답답한 마음과 달리 나오노리는 표 두장을 주면서 자기가 기다렸다가 표를 받아서 갈테니 내 친구랑 먼저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한다. 그럴수는 없다고, 우리는 안봐도 되지만, 너는 이 경기하나 보려구 비행기타고 멀리 왔는데 어서 들어가라고 잡아 끌어도 안 들어간다고 우겼다. 결국 세명 다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나오노리가 소형 액정TV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전에 많은 골이 터졌지만 그저 밖에서 함성만 들으면서 답답함을 삼켜야 했다.

결국 표를 손에 쥐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니 벌써 전반전이 다 끝났다. 그나마 후반전이라도 볼 수 있게 되서 다행이지만, 나오노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지만 시간도 그렇고 표값도 비싸서 경기장에 올 생각은 꿈에도 못했는데, 경기장에 와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았다. 그것도 1등석에서 한국의 경기를 볼줄이야. 그 감격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터키선수와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경기장을 도는 모습이 너무 감명깊었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오노리를 우리집에 초대했다. 일부러 대구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새벽이 넘어서야 집에 왔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다시 일본으로 가야 했기에 나는 내 방을 내어주었다.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함께 먹고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은 친절이 낯선 외국인과 친구가 되게 하였고 꿈에 그리던 경기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내 마음이 더 기쁜 것은 나오노리의 마음속에 한국사람에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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