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 목표는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이죠. 사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있던 해에도 역시 제 1목표는 금메달이 아닌 여자친구였으니까요.”(웃음)

올림픽을 두 번이나 재패했던 레슬링 영웅 심권호(30, 주택공사) 코치는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지만 언제나 좋은 여자친구 만드는 것엔 실패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작년 은퇴 뒤 주택공사 코치로 활동하던 중 이번 아시안 게임엔 방송 해설가로 깜짝 등장해 재치 있고 솔직한 해설을 선보이며 KBS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 해설위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 심권호 코치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차 있다
ⓒ 스포츠피플 김진석
<스플>기자는 육상 높이뛰기 이진택 선수의 경기가 있었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심권호 코치를 만날 수 있었다. 온 몸이 장난기로 가득차 있던 심 코치는 ‘방송 잘 봤다’는 기자의 말에 "쑥스럽네요" 라면서 "재밌게 보셨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 해설은 50점 밑... 하지만 70점까지 높일 것"

"얼마 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 아시안 게임에 해설가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끊었어요."(웃음)

하지만 전화를 끊은 뒤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제야 걱정이 들었단다. 일단 국내 선수들은 함께 지내던 후배들이라 걱정이 없었고, 외국 선수들도 풍부한 국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젠 방송할 때 존칭을 써야 하는지 반말을 해야 하는지 걱정됐어요. 결국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내 식대로 해야지 했어요.”

결국 그는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해설’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가 무게 잡으면 어디 아프냐고들 해요. 평소 하는 대로 하면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그의 해설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감정적일 때가 많았다. 우리 선수가 극적으로 우승할 땐 괴성을 지르며 울고 있었고, 가끔 ‘심판놈’등 방송에 맞지 않은 말을 툭툭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빠떼루 아저씨’와의 차별작전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로 말을 더듬고 헤매기도 했지만 선수들이 기술을 걸어야 할 때 등을 정확하게 지적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는 이번 해설에 대해 그리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번 해설 성적은 50점이하였다고 봐요.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토대로 어떤 상황에서 보다 적합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연습을 한다면 70점정도 이상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해설은 적당히 실수도 하고 그래야 보는 재미있다고 봐요. 그래서 70점 정도면 해설로서는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하나부터 일곱까지 가르치는 친구 같은 코치

ⓒ 스포츠피플 김진석
심 코치는 이번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들이 연습할 때 상대가 돼주는 등 함께 하면서 절대 그들에게 잘못된 점을 직접 지적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였던 그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가르쳐왔던 코치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 선수들이 없는 자리에서 코치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설가 이전에 지도자였던 심 코치의 코칭 스타일은 어떨까?

“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선수와 형, 동생처럼 혹은 친구처럼 지내려고 합니다. 하다못해 여자문제까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를 유지하고 싶어요.”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기존 지도자들은 너무 강압적으로 가르치려는 경향이 심했죠. 운동은 즐겁게 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적어도 저는 코치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그랬지만 벽이 너무 높았어요. 그래서 더욱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그는 선수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일 땐 그날 연습을 쉬라고 말한다. 무리하게 하다 다치면 오히려 오랫동안 쉬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차라리 하루 여자친구를 만나든지 하면서 쉰 뒤 다음날 더 즐겁게 운동하면 된다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심 코치는 선수들에게 하나부터 일곱까지만 가르친다.

“지금까지 지도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치려고 했어요. ‘이거 해!’라고 말하면 ‘네’하고 시킨 것을 반복해야만 했죠. 저는 하나에서 일곱까지만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응용해 열까지는 선수 자신이 나름대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한 기술을 왜 사용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그를 잘 따르는 선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다고 한다.

“말을 안 듣는다고 미워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선수에게 세 번의 기회만 줍니다. 기술 습득에 있어서도 다른 생활에서도. 결국 필요하다고 느끼면 자신이 바꾸는 거니까요.”

제자가 시합에서 질 때 가장 안타깝다는 그는 자신이 가르친 기술을 사용해 경기에서 이길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심 코치는 더 이상 선수가 아닌 코치의 모습이었다.

“가장 많이 장난치고 제일 많이 맞았다”

▲ 선수로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코치의 길로 나선 심권호 코치
ⓒ 스포츠 피플 김진석
그가 이처럼 코치로서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방대두 감독(전 대표팀 감독)과의 만남 때문. 방 감독은 자유형 유망주였던 심 코치를 그레코로망형으로 전환케 한 장본인이다. 또 올림픽 2연패 신화를 함께 만들었던 감독. 방 감독이 심 코치를 믿고 기다려줬기에 지금의 그가 있었다고.

“방 감독님은 천방지축인 제 스타일을 아셨어요. 그래서 엄할 땐 엄하셨고 제가 장난칠 땐 또 잘 받아주셨죠. 결국 그런 방 감독님 스타일을 지금 지도자 생활하는데 나름대로 응용하고 있어요.”

방 감독에게 그랬던 것처럼 심 코치는 선수 땐 어렵기만 했던 지도자에게도 장난을 쳤다고 한다.

“저는 감독, 코치님께 제일 많이 맞기도 했고 제일 장난도 많이 쳤어요. 재밌잖아요.”

▲ `나 원래 이렇게 웃긴 놈이다`.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는 심권호 코치의 얼굴 표정
ⓒ 스포츠 피플 김진석
이는 스스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또한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는 뜻. 심 코치는 언제나 웃었지만 자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기술은 고집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즐거움과 고집을 가지고 이기는 맛을 경험하고서 더욱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심 코치는 중 3 시절 전국체전에서 첫 우승을 했을 때,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땄을 때, 그리고 첫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바로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런 그에게도 고통의 순간이 있었다. 바로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올림픽에서 그의 체급이었던 48kg급이 없어졌던 것.

그 당시 “레슬링 해서 뭐하나 싶었다”는 심 코치. 하지만 친구들과의 끊임 없는 대화와 연습은 그를 정상에 머물 수 있게 했다.

“밤새 친구들과 술 먹고 머리가 띵한 채 아침에 일어나 나도 모르게 레슬링 연습장으로 향하고 있더라고요.”

결국 자신도 모르게 연습장을 향했을 정도로 연습 벌레였던 심 코치는 54kg으로 체급을 올리고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인 이진택 선수가 경기에 임할 땐 인터뷰를 하다가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 했던 심 코치는 이 선수가 우승을 확정짓자 여느 관중들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기분이 좋았는지 사진 찍어달라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포즈를 취해주는 심 선수. 한 학생이 “왜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지으세요? 넘 웃겨요”라고 말하자 심 코치는 “나 원래 이렇게 웃긴 놈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레슬링을 시작했어요.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메달 땄을 때만 반짝 인기를 얻는게 서운했지만,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니까 그런 느낌도 사라졌었죠. 이 모든 것은 내가 즐겁게 운동을 했으니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제 레슬링은 어떻게 보면 웃음과 고집스러움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 스타 선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스포츠 매니지먼트사 `Je` 식구들과 함께 이진택(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 스포츠피플 김진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 실려 있습니다.

2002-10-13 14:3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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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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