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원국 전부가 참가해 모처럼 아시아의 평화와 단합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불구하고 선수단을 파견한 나라들이 더러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쟁의 포연이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이번 행사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 그리고 지난해 9.11테러 이후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등 몇 나라의 대표단을 연속기획으로 인터뷰할 예정입니다....<편집자 주>

▲ 팔레스타인 선수단 '압달 하메드 가넴' 단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직까지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 팔레스타인. 제14회 아시안게임 개회식 때 세계인들은 깜짝 놀랐다. 팔레스타인 선수단이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의 대형 사진을 들고 입장한 것이다. 메달을 따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의 건재함을 알리는 게 목적이라는 사람들.

팔레스타인은 이번 대회에 9개 종목에 걸쳐 50명(임원 15명, 선수 35명)이 참가했다. 축구와 육상, 복싱 등에 출전했지만, 9일 현재까지 '노메달'이다. 그래도 임원들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반응이다. 메달을 따기보다 그들이 건재함을 세계에 알렸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

아직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 팔레스타인. 아시안게임의 열기가 한창 높은 속에도 지중해 동해안에 자리잡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총성이 울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 선수는 대회 기간 동안 동생을 잃기도 했다. 바로 축구에 출전한 요세프 선수로, 이스라엘의 아파치 헬기에서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팔레스타인 선수들을 돕는 사람들

부산시와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가 만든 ‘팔레스타인 스포터즈’는 여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부산시여성의용소방대를 비롯해 늘빛교회,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포스코건설, 센텀시티(주), 부산시 센텀시티 개발담당과 등이 맡고 있다. 이들은 선수단이 입국할 때 환영식부터 매 경기 때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가서 응원을 하고 있다.

9일 저녁 가넴 단장을 비롯한 선수단 대표와 서포터즈 대표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서포터즈에서 처음으로 만찬을 연 것이다.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없기에 특별한 방에서 할 수도 잇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알린다는 의미에서 1층 뷔페식당에서 자연스럽게 만찬이 열렸다.

팔레스타인 선수들을 돕는 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기념품을 전달했다. 서포터즈는 팬티와 양말 각 100쪽씩, 월드컵 때 입었던 붉은 티셔츠 10벌, 아시안게임 로고가 새겨진 옷 50벌 등을 전달했다. 팔레스타인 선수단은 남자들도 전통적으로 목에 걸고 다니는 스카프를 선물로 건넸다.

팔레스타인 서포터즈를 이끌고 있는 유숙영(62) 단장은 “고국이 전쟁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이 밝지 않다. 말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 있을 동안 최대한 편리하게 있도록,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윤성효
요세프 선수는 그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임원과 다른 선수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임원들이 그 선수가 충격을 받을까 싶어 말을 하지 않았고, 선수촌에 머무는 동안에도 인터넷을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요세프 선수는 예선 경기 전패를 기록한 축구선수들과 함께 9일 낮 김해공항을 출국했다.

팔레스타인의 스포츠는 체계적이지 못하다. 축구팀을 보면 그 단면을 알 수 있다. 요르단 등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선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소집되는데, 한번도 '발'을 맞추기는커녕, 공항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부산으로 출발했을 정도다.

팔레스타인이 세계 스포츠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는다. 94년 북경,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이번이 아시안게임 출전 세 번째다. 88년 서울올림픽에는 참가하려고 했지만 선수는 올 수 없었고 다만 참관만 할 뿐이었다. 93년 IOC 회원국이 되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부터 출전했다.

팔레스타인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압달 하메드 가넴(Abdal Hamid GhaneM. 65)' 단장을 만났다. 9일 저녁 팔레스타인을 응원하고 있는 서포터즈 대표들이 마련한 만찬 자리에서다. 부산 해운대 메리어트호텔에서 자원봉사 통역자 우송만(25. 군인)씨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다.

배구와 축구선수 출신의 가넴 단장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면서, "고국에 돌아가면 공항 도착부터 출국까지 받은 감동을 그대로 이야기 할 것"이라며, 한국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메달보다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출전하게 되었다"면서 "그 목적은 달성했다"라고 말했다. 개막식 때 선수단이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사진을 들고 입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 팔레스타인 선수단이 29일 아세안게임 게회식 때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의 대형사진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공항 도착부터 출국까지 모두 말해 줄 것"

다음은 압달 하메드 가넴 단장과 나눈 대화다.

- 음식과 잠자리에 불편함은 없는지. 부산 생활은 마음에 드는지?
"전혀 불편함이 없다. 현실에 만족한다. 선수촌 뿐만 아니라 서포터즈들도 감사할 뿐이다."

-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는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몇 차례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그 나라 국민들이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항 입국 때부터 놀랬다."

- 오늘(9일) 현재까지 아직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는데, 만족하는가?
"만족한다. 그리고 우리도 반드시 메달을 딸 것이라고 기대한다. 남아 있는 종목 중에 복싱이 가장 유력하다. 분명히 메달을 딸 것이다. 메달을 따지 않더라도 아시안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 생각한다."

- 전쟁 중에 있는데도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목적이 있다면?
"사실 메달 따러 온 게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모이는 곳에서 팔레스타인도 함께 하고 싶었다.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아시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었다. 국제 무대에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목적도 있었다."

- 전쟁 중인 나라에서 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활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
"스포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예산이 많이 부족하다. 그 대신 팔레스타인 사업가들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고 있다."

- 아시안게임 개회식 입장 때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사진을 들고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는지, 무슨 의미인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선수 중에 몇 명이 하자고 했고, 순리대로 했을 뿐이다. 의미라면, 팔레스타인이 건재하다는 사실과 우리의 수반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스라엘로부터 점령 당하고 핍박을 받고 있다는 처지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 국내로 돌아가서 한국사람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
"공항 도착할 때부터 나갈 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환영식부터 응원까지 모두 다 말이다. 한국사람들은 사랑스럽고 동정심도 많다고 들려줄 것이다."

- 한국사람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인의 환대와 격려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팔레스타인)를 잊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 팔레스타인 서포터즈를 이끌고 있는 유숙영 단장(오른쪽)이 가넴 단장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2002-10-10 09:2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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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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